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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직격 인터뷰] 박병주 대한보건협회장

박병주 대한보건협회장은 메르스 사태로 정부와 보건의료계가 국민을 위해 어떤 제도 개혁을 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첨단의료기술만 자랑하며 자만심에 빠졌던 우리에게 방역·공공의료를 비롯한 기본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아프게 알려줬다고 지적한다. 이는 한국 사회가 앞으로 해결해 나갈 시대의 과제가 됐다. [김경빈 기자]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이라도 제발 잘 고치자.” 박병주(60) 대한보건협회장의 말이다. 박 회장은 중동호흡기중후군(MERS·메르스)으로 우리 사회가 홍역을 한바탕 치르면서 우리 보건의료 체계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 건강을 더욱 증진할 수 있도록 제대로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 1월부터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대한보건협회는 민간 차원에서 국민 건강 증진과 삶의 질 개선을 연구하는 보건단체다. 박 회장은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 교수이기도 하다. 예방의학은 의학적·사회적·정책적 요인을 연구해 질병을 줄이고 국민 건강 증진을 도모하는 학문이다. 박 회장으로부터 국민 건강을 위한 쓴소리를 들어봤다.

메르스 당하고도 의료 개혁 안 할 건가


 
 



-해외 전염병인 중동호흡기중후군(MERS·메르스) 사태가 한바탕 휩쓰는 바람에 한국 사회는 일종의 보건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이런 전염병에 왜 이렇게 취약했던 것일까.

 “우리 사회의 역학적 변천사에서 그 근원을 짐작할 수 있다. 1970년대까지는 콜레라·장티푸스·이질 같은 전염병의 시대였다. 하지만 80년 가을 삼남 지역에서 콜레라 환자가 10만 명 이상 발생한 것을 마지막으로 대규모 전염병이 사라졌다. 경제 발전으로 식생활과 주거환경, 위생이 나아졌기 때문이다. 이후 급성전염병 시대에서 만성질환 시대로 넘어갔다. 보건의료의 주안점은 암·심장병·뇌혈관질환·당뇨 등 만성질환에 맞춰졌다. 문제는 그러면서 감염성 질환에 대한 관심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대학병원에서도 전염병을 전공하는 교수가 감소했다. 그러자 글로벌화의 영향으로 해외에서 유입되는 전염병에 허를 찔렸다.”

 -전염병에 방심하고 관련 분야에 투자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 메르스의 근원적인 원인이라는 이야기인가.

 “우리나라가 첨단 의료는 세계 최고로 나아가고 있으면서 기본 의료체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방심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징비록』 수준의 뼈아픈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

 -전염병에 대한 투자가 줄었다고 했는데 메르스 확산의 주요 통로가 된 응급실에 대해서도 비슷한 지적이 있다. 응급실에선 환자에게 추가 수가를 받지만 집중진료라 원가가 많이 들어 적자이기 때문에 투자를 별로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 의료체제하에서는 누구나 응급실에 갈 수 있다. 좋게 말하면 의료 접근성이 좋다고 하지만 사실은 잘못된 의료 환경을 유발한다. 수도권 응급실에 가면 그야말로 시장판이다. 환자 진료를 위한 공간이라고 볼 수가 없다. 바닥이나 복도에서도 대기하고 있고 보호자까지 온통 섞여 있다 보니 굉장히 밀집된 공간이 됐다. 이런 환경이라면 기침 한 번으로 전염병을 얼마든지 퍼뜨릴 수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환자를 분리시키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 응급의료 체계에서는 응급실 의사가 환자를 평가해 분류하는 단계를 거치게 돼 있다. 앞으로 이를 더욱 발전시켜 응급실 구조 자체를 감염성 환자와 비감염성 환자를 따로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감염성 질환이 의심되는 환자는 별도 1인 응급실로 보내 그곳에서 진료해야 한다. 그래야 응급실이 감염 통로가 되는 불상사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 지금 응급실은 이런 개념이 도입되지 않아 입구에 별도로 텐트를 쳐 환자를 분류하고 있다.”

 - 선진국의 경우는 어떤가.

 “응급실 입구에서 환자를 분류하는 것은 기본이다. 일본의 의료전달 체계를 보고 인상 깊었던 것이 병원 자체를 급성·아급성·만성 센터로 나눠 서로 다른 환자를 받게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환자 분류와 이송이 효율적으로 이뤄져 한꺼번에 뒤섞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 그런데 우리는 왜 응급실에서 전염병이 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응급실에서 전염병이 확산한 것은 투자의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의료 체계가 잘못된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유럽 등의 일반적인 주치의 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다. 유럽 등에선 동네의원 의사가 주치의를 맡아 지역 환자를 돌보다 중한 병을 얻으면 2차, 3차 기관으로 차례로 옮겨가는 형태다. 그런데 한국 의료체계는 응급실만 거치면 이런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상급병원에 입원할 수 있다. 그래서 응급실에서 환자들이 며칠씩 대기하다 보니 전염병 확산에 속수무책이 된 것이다. 이를 둘러싼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서울대병원은 원래 중증의 3차환자를 중심으로 진료하도록 설계됐다. 외래진료실이 별로 없고 입원실 중심이다. 감기 환자 등 경증 환자는 동네의원에서 치료하면 되지 여기까지 올 필요는 없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외래환자가 몰려들었다. 결국 많은 돈을 들여 개·보수 공사를 해 외래환자를 더 많이 보도록 했다. 한국의 의료전달체계가 얼마나 왜곡됐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어떻게 의료전달체계를 개선해야 할까.

 “우선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어떤지 볼 필요가 있다. 한국 의료는 미국처럼 자유방임 시장체제도 일부 있고 유럽처럼 사회주의 의료체제도 도입돼 있다. 의료는 완전한 시장체제가 이뤄지기 어렵다. 서비스 공급자인 의료인은 의학지식과 정보가 있지만 소비자인 환자, 즉 일반 국민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정보 비대칭성 때문에 보건의료는 자유시장 논리만으로 가동될 수 없다. 그래서 시장 논리를 넘어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공공 의료가 필요하다. 미국은 시장 논리만 강조하다 보니 의료비가 급등하고 국민이 제대로 혜택을 받지 못해 지금 힘든 개혁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 의료는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이 함께 발전할 필요가 있는데 그동안 공공 부문이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 지금 보면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시·도 의료원과 보건소가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매우 제한적이다. 이런 공공의료기관이 방역을 비롯한 공공성 있는 활동을 담당해야 한다.”

 - 공공의료를 어떻게 확충해야 할까.

 “현실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공공의료는 10%대이고 민간의료가 90%에 육박한다. 이에 따라 민간의료기관이 할 일과 공공의료기관이 할 일을 제대로 역할 분담하는 게 중요하다. 국립중앙의료원과 시·도 의료원을 비롯한 공공의료기관에 투자를 해서 번듯한 병원으로 만들어 지역 환자가 찾도록 하는 일이 급선무다. 그런 다음 이들 공공의료기관이 시·도와 보건소를 관리할 수 있도록 공공의료 네트워크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메르스 같은 사태가 다시 터져도 일사불란하게 국민의 안전을 지키면서 이른 시일 안에 박멸이 가능하다. 방역과 같이 돈이 되지 않는 부분은 민간이 맡으려고 하지 않아 공공의료 부문이 맡아야 하는데 취약한 게 현실이다. 제2, 제3의 메르스를 막으려면 공공의료 부문을 빠르게 확충하는 게 답이다.”

 - 유럽 같은 의료복지 선진국의 경우는 어떤가.

 “유럽에선 의료서비스를 공공재로 본다. 많은 투자가 필요한 종합병원은 개인이 차릴 수 없게 한 나라도 적지 않다. 게다가 철저히 동네 의사를 개인의 담당의사로 지명하는 주치의 제도를 쓰기 때문에 의사의 판단으로만 1차, 2차, 3차 의료기관으로 갈 수 있다. 개인이 더 큰 병원에 가고 싶다고 마음대로 갈 수 없다. 이 때문에 큰 병원에 환자가 몰리지도 않고 응급실에서 입원을 대기하는 환자도 별로 없다. 단점은 있다. 규칙대로만 하다 보니 융통성이 없어 급한 사람이 제때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점은 조금씩 보완되고 있다. 우리나라 실정에 맞춰 지혜롭게 주치의 제도 도입을 고민해야 한다. 무절제한 대학병원·대형병원 선호를 완화하려면 무엇보다 현재 전문과별로 나뉜 의료체계를 개인주치의를 바탕으로 하는 지역사회 중심 의료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병 중심의 의료를 환자 중심으로 바꾼 획기적인 제도다. 동네의원의 의사가 한 환자를 오랫동안 보면서 간단한 질환은 현장에서 고치고 심한 질환은 큰 병원으로 보낸다. 이를 활용하면 괜히 큰 병원을 찾아가 응급실에서 병실이 날 때까지 며칠씩 새우잠을 잘 필요가 없다. 그렇게 되면 응급실이 전염병 전파 공간이 되는 일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 따라서 메르스 사태에서 드러난 응급실 과밀화의 문제점이 개선될 수 있다.”

 -메르스 사태가 끝나가고 있다. 예방의학자로서 이번 사태를 지켜본 소감은.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한 가지 속담이 생각났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이다. 사건이 터진 다음에야 허겁지겁 뒷마무리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는 사건이 터진 다음에 허겁지겁 뒷마무리하는 잘못된 습관이 있다. 다양한 문제점을 염두에 두고 사후 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않으면 오히려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것은 소를 잃은 것보다 더 나쁘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2010년 신종플루, 지금은 메르스가 터졌다. 6년마다 이런 일이 반복돼 왔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이번 사태에 대한 반성과 대안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철저한 보건의료 제도 개혁이 이뤄져야 국민 건강을 지킬 수 있다. 미봉책은 반복적인 비극을 부를 뿐이다.”

 - 제도 문제도 있고 대응·정책 문제도 있는데 이번 메르스 사태 초기에 보건복지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보건과 복지를 분리해 정책 집중도와 전문성을 높이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며 안타까웠던 것은 전문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복지행정에 대한 인식이 높다. 관련된 일이 많기 때문이다. 한국은 노인인구 급증, 만성질환 등 보건정책 과제가 무수히 많다. 게다가 보건 분야는 이해관계가 있는 직종이 굉장히 다양하고 폭넓다. 정말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는 보건의료를 구축하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보건의료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일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전문가를 책임자로 앉히고 경청하는 자세를 보인다. 전문가를 인정하고 소신껏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보건행정 분야는 단순한 행정 논리로 결정되는 것보다는 전문성 입장에서 의사결정이 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올해 주요 보건정책의 하나가 올 초 정부에서 담뱃값을 두 배 수준으로 올린 것이다. 그런데 세수만 늘었을 뿐 담배 판매는 다시 이전의 90% 이상 수준으로 높아졌다는 보도가 나왔다. 금연운동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고 세수에만 눈독을 들여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담뱃값 인상은 모든 선진국에서 금연에 가장 효과가 좋은 정책으로 인정받아왔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늦었지만 참여하게 된 것이다. 금연정책에서 잊어서는 안 되는 점이 담배는 중독성이 지극히 강하다는 사실이다. 원포인트 정책으로 KO승을 거둘 것으로 기대해선 곤란하다. 담배는 중독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넘어서는 효과적인 정책을 끈질기게 펼쳐야 한다. 담배와 금연정책 중 질긴 쪽이 이기는 것이다.”

글=채인택 논설위원
사진=김경빈 기자

[인터뷰 후기] 보건의료, 국민에 봉사해야

박 회장과의 인터뷰는 여러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메르스 사태가 터지기 전인 지난 3월 처음 만나 금연을 비롯한 보건의료 문제를 주제로 대화했다. 당시만 해도 “보건의료 선진국으로서 중동 지역에 대한 의료시스템은 물론 의학, 보건학 교육시스템을 전파해야 한다”고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달 29일 서울대 의대에서 열린 대한보건협회 이사회에서 만났을 때는 대화의 주제가 확 바뀌었다. 여러 의사, 보건의료인과 함께 메르스로 신음하는 한국 보건 현실을 개탄하며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첨단의료 자랑만 하고 기본 의료는 방치했다. 메르스 사태는 이러한 방심의 결과”라고 개탄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9일 조인스 인터넷 생방송으로 ‘직격인터뷰’를 했으며 이후 여러 차례 통화하며 내용을 보충하고 다듬었다. “보건의료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뛰는 일이 내 직업”이라는 박 회장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박병주 협회장은 …

1955년생. 80년 서울대 의대 졸업. 84년 서울대 대학원 의학박사(예방의학). 88년~현재 서울대 의대 교수(예방의학). 2008년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주임교수. 2010년 서울대 병원 의학협력센터 센터장. 2012~2015년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 초대 원장. 2015년 1월~현재 대한보건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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