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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촌도 문화재, 보존을” vs “태릉 복원이 우선, 철거를”

“선수촌도 문화재, 보존을” vs “태릉 복원이 우선, 철거를”



서울 미래유산 ① 태릉선수촌 논란

“저기 왼쪽에 보이는 은행나무 세 그루는 삼십 년이 넘었고요. 맞은편 살구나무는 십 년 정도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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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 양궁장 발사대에서 박성현(32) 전북도청 양궁팀 감독이 말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박 감독의 손끝은 과녁 왼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곳엔 국가대표 선수들 사이에서 ‘궁사(弓師) 나무’로 불리는 은행나무 세 그루가 1m 간격으로 나란히 서 있었다. 박 감독은 “저 나무가 없었다면 금메달도 없었다”며 “선수촌 선배들이 산바람 막는다고 심어 놓은 나무들”이라고 설명했다.



 양궁은 바람과 무게가 지배하는 스포츠다. 화살 한 개의 무게는 240~450g. 선수들은 화살 깃(0.04g)을 직접 만들 정도로 0.01g에도 민감하다. 연습장에 불어오는 바람의 세기에도 예민하다. 베이징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주현정(33) 전 국가대표 선수는 “바람이 세면 나무를 심었고 약하면 가지를 쳐내며 선배들이 가꿔온 곳이 바로 태릉양궁장”이라고 말했다.



 내년이면 개촌(開村) 반세기를 맞는 태릉선수촌을 놓고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문화재 복원과 현대 체육 문화재 보존이라는 두 가치가 맞서고 있는 것이다. 토지 소유자인 문화재청은 태릉과 강릉 복원을 이유로 선수촌 철거를 주장하고 있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 왕릉(총 40기)인 태릉·강릉 복원이 태릉선수촌 유지보다 우선이라는 판단이다.



 이에 대해 선수촌 운영을 맡고 있는 대한체육회는 태릉선수촌을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체육회는 이달 초 서울시에 태릉선수촌 문화재 등록신청서를 냈다. 대한체육회 오승훈 훈련기획팀장은 “태릉선수촌은 대한민국 체육의 메카이자 스포츠의 요람”이라고 강조했다.



태릉선수촌 출신 전 국가대표들이 ‘궁사(弓師) 나무’로 불리는 선수촌 양궁장 은행나무 밑에 모였다. 왼쪽부터 박성현(양궁), 이에리사 의원(탁구), 장미란(역도), 이규혁(빙상), 주현정(양궁). [신인섭 기자]
 태릉선수촌은 1966년 문을 열었다. 64년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이 고전하는 모습을 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서울 외곽 태릉·강릉 부지에 설립됐다. 불암산을 끼고 있어 공기가 좋다는 게 이유였다.



현재 태릉·강릉(166만㎡) 중 18%를 태릉선수촌(31만㎡)이 차지하고 있다. 2000년대 초 조선 왕릉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추진되고 진천선수촌 신설이 확정되면서 태릉선수촌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시 대한체육회는 정부가 3000억원을 들여 충북 진천군에 진천선수촌을 조성하겠다고 약속하자 태릉선수촌을 포기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태릉선수촌장을 지낸 이에리사 새누리당 의원은 “체육인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새로운 선수촌을 만들어주겠다는 말에 덜컥 받아버린 게 대한체육회의 원죄”라며 “체육회가 태릉선수촌의 문화재적 가치를 판단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가 문화재 등록신청서를 제출하면서 기존 입장을 스스로 뒤집은 셈이 됐다.



 문화재청과 체육계가 맞서자 문화체육관광부는 관계 기관 협의를 진행했다. 결론은 국제스케이트장·실내빙상장·크로스컨트리 코스 등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준비를 위한 시설은 올림픽 전까지 존치시키되 나머지 시설은 단계적으로 철거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울시가 지난 2월 태릉선수촌을 미래유산으로 지정하면서 선수촌 보존 목소리에 다시 힘이 실리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태릉·강릉 복원도 중요하지만 현대 스포츠 문화를 상징하는 태릉선수촌의 일부라도 남기자는 게 시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부 건물을 체육박물관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철거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문화재청 조선왕릉관리소 윤태정 사무관은 “유네스코 권고사항 이행을 전제로 단계적으로 왕릉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세계유산 등재 당시 국가 차원에서 왕릉 복원을 약속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철거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섣불리 결정하기보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영일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태릉선수촌이 있었기에 한국이 스포츠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며 “선수촌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월계관, 승리관 등 일부 건물에 대한 철거를 미루고 왕릉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창모 경기대 건축대학원 교수는 “한번 철거하면 다시는 복원할 수 없다는 조선총독부의 경험을 기억해야 한다”며 “충분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이에 장경희 한서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유네스코와의 왕릉 복원 약속을 쉽게 무시해서는 안 된다. 선수촌 설립 전인 50년 전 왕릉의 모습에서 복원 계획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추진 중인 예비문화재 도입을 담은 문화재보호법 개정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은 “예비문화재 제도가 도입되면 태릉선수촌과 같은 상징성을 지닌 현대건축물도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존의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다”고 말했다.



글=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서울시 미래유산=서울을 대표하는 특색 있는 건물과 기념물, 주요 인물·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장소와 생활사 등 유·무형의 것들을 미래유산으로 지정하고 있다. 법으로 보호받는 등록문화재는 제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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