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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살 입맛 여든 간다 … 단맛 짠맛 길들기 전 채소와 친해지게 하세요



회사원 김기훈(34·서울 마포구)씨는 딸 지연이(6)를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딸의 앞니(젖니) 8개에 충치가 생기는 바람에 또래 아이들보다 이가 빨리 빠졌다. 그런 탓에 치과에서 어른도 참기 힘들다는 신경 치료를 받는 모습도 여러 번 지켜봐야 했다. 김씨는 “두 살 무렵부터 초콜릿·사탕·아이스크림 같은 단 음식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지연이를 돌보던 할머니는 손주가 짜증을 내거나 울면 달래기 위해 단 음식을 줬고 맞벌이인 김씨 부부도 먹는 것에 관한 한 딸이 원하는 대로 해줬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지연이는 아이스크림을 하루에 2~3개씩 먹을 정도로 단맛에 빠져들었다.

[건강한 목요일] 입맛도 ‘조기 교육’



 올해 세 살인 대경이는 컵라면 매니어다. 지난해 컵라면을 한번 먹었다가 특유의 짭짤한 맛에 중독됐다고 한다. 이젠 집이 떠나갈 듯 울다가도 라면 끓여준다고 하면 젓가락을 챙겨 부엌 앞에 서 있을 정도다. 아빠 노영진(31·부산 사하구)씨는 “어릴 때부터 짠맛에 적응되다 보니 걱정인데 애가 워낙 좋아해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아이들이 단맛과 짠맛에 일찍부터 길들여지고 있다. 초콜릿이나 음료수 같은 단맛 중심의 가공식품과 라면이나 햄버거 등 나트륨 과다 식품이 아이들을 에워싸고 있는 탓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가공식품을 통한 하루 당분 섭취량을 조사해보니 3~5세, 12~18세가 적정 기준 이상을 섭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한 맛이 아니면 가까이 하지 않으려는 ‘미각 중독’ 현상이 유아부터 청소년기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강재헌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소아 비만의 90%는 맛있고 자극적인 음식에 빠진 미각 중독 때문인데 최근 이런 환자가 많이 늘었다. 미각 중독이 지속되면 성인이 됐을 때도 비만은 물론 고혈압·당뇨병 등 합병증이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6~18세 소아·청소년의 비만율은 1998년 8.5%에서 10여 년 만에 10%대를 훌쩍 넘겼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단맛과 짠맛에 길들여지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미각이 형성되는 시기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미각 형성 시기는 태어나서부터 7세 즈음까지인데 이 시기에 다양한 음식을 경험하면서 느낀 맛이 기억으로 바뀌어 뇌에 장기간 저장된다. 나이가 들면서 입맛이 바뀔 수 있지만 미각의 문이 일차적으로 닫히는 때다. 문제는 이 시기에 자극적인 단맛과 짠맛만 경험하면 혀가 혹사당해 미각이 단순해지고 둔해지는 것이다. 어른이 돼서도 다양한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박민수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개인차가 있지만 제일 중독성 강한 맛이 바로 단맛과 짠맛이다. 두 가지 맛에 반복 노출되면 역치가 높아져 더 자극적인 음식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기 미각 교육이 중요하다=아이가 미각 중독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가정에서부터 음식을 덜 짜고 덜 달게 해야 한다. 젖을 떼고 이유식을 먹일 때부터 ‘맛 없는’ 채소를 넣은 음식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게 기본이다. 이를 위해 채소는 드레싱 등으로 양념하지 않고 꾸준히 먹이는 게 중요하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미각 교육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아주 어릴 때 자극적인 맛에 적응되면 7세 전에 교육하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부모가 자녀와 함께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대표적인 교육 방식이다. 음식 조리 과정을 옆에서 보고 채소와 고기 등 식재료를 직접 만지면서 ‘오감’으로 맛을 경험하게 된다. 알고 먹는 것도 하나의 교육이다. 아이가 먹는 게 어떤 음식인지 몸에 도움이 되는 건지 자연스럽게 알려주면 맛을 느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음식을 꼭꼭 씹어먹으면 침이 충분히 나와 미각을 활성화하고 먹는 양이 줄어드는 효과도 거둔다. 다만 억지로 음식을 먹이거나 먹지 못하게 하는 건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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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은 또 “아이를 바꾸려면 부모부터 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요즘 아이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부모 세대의 입맛부터 고쳐야 아이들이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것이다. 일상화된 외식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10세 미만 아동의 87%가 주 5회 이상 외식을 한다는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2013년)도 있다. 요리치료사 권명숙씨는 “부모들에 대한 미각 교육도 애들과 똑같다. 본인들이 먹기 싫어도 건강한 밥상으로 함께 식사해야 아이들의 입맛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박경희 한림대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감자탕·추어탕처럼 어른들이 먹는 음식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주면 미각 형성을 방해한다. 아이들은 어른을 따라가게 되는 만큼 환경을 올바로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용어조차 생소한 국내와 달리 외국은 어릴 때부터 미각 교육에 익숙하다. 프랑스는 맛을 종류별로 체험하게 하고 음식에 관한 지식을 가르치면서 관심을 유도한다. 유럽에선 ‘로컬 푸드’나 ‘슬로 푸드’를 강조하는 교육법이 일반적이다. 미국은 유치원부터 식생활 지도를 하면서 텃밭에서 농작물을 직접 기르게 하는 등 체험을 강조한다. 박경희 교수는 “미국에 갔을 때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이들이 학교에 챙겨온 간식이었다. 한국에선 질색할 브로콜리와 콩을 챙겨와서 맛있게 먹는 걸 보니 과자를 손에서 놓지 않는 국내 현실과 비교됐다”고 말했다. 체계적이고 독자적인 교육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됐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한국은 아직 선진국의 미각 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수입해오는 수준이다. 음식에 대한 이해·철학을 바탕으로 우리 식생활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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