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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미국도 대통령과 여당이 싸운 적이 있지만 …

손병권
중앙대 교수·정치학
여권의 당·청 갈등이 여당 내 계파 갈등으로 폭발하는가 싶더니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사퇴로 잠시 잠잠해진 듯하다. 이번 국회법 개정 파동처럼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에 대해 선명한 입장 표명을 공개적으로 강하게 요구한 사례는 흔치 않아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와 관련해 과연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과 여당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돼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화남의 귤이 화북에서는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쓰는 ‘여당’이라는 말은 엄밀히 볼 때 대통령제의 원형인 미국에서는 ‘의회 내 대통령 소속 정당’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는 행정부와 의회를 통합시키는 여당이라는 개념이 미국에서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평적인 권력 분립의 대통령제 헌법 원리가 정당 중심의 위계적인 통합성에 우선하는 것이 적어도 건국 당시 미국 정치의 골격이었다. 따라서 미국의 경우 여당을 통해 의회와 본원적으로 연결된 내각으로서의 ‘정부(government)’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한 구성요소로서 ‘행정부(administration)’가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오바마 정부’ 대신 ‘오바마 행정부’라고 부르고 ‘집권 여당인 민주당’ 대신 대통령과 정당의 명칭을 공유하는 ‘의회 민주당’이라고 부른다. 요컨대 미국의 경우 정부는 의회와 대통령이 함께 구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동일한 대통령제 정부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한국의 당·청 관계를 그대로 미국의 대통령 소속 정당과 백악관의 관계로 등치시킬 수는 없다. 비록 정당을 공유하지만 별개로 존재하는 의회 내 대통령 정당과 백악관 사이에는 일정한 차별과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의회와 의회 정당의 자율성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1930년대 이래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이 공존해 온 미국 민주당의 사례를 중심으로 대통령과 의회 내 대통령 정당 간의 갈등과 협력 관계를 살펴보자.



 뉴딜을 통해 대공황을 극복한 루스벨트 대통령은 민주당이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으로 양분되는 단초를 제공한 정치인이다. 그 발단은 의회에 대한 그의 지나친 간섭에 있었다. 36년 60%의 광범위한 국민적 지지를 통해 재선에 성공한 루스벨트는 연방대법원이 일부 뉴딜 개혁법률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리자 진보 성향 대법원 판사를 추가적으로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의회에 요구했다. 향후 새로운 법률이 위헌의 우려 없이 바로 정책으로 전환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의회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대통령에 대해 의원들이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같은 민주당 소속의 뱅크헤드 하원 의장과 섬너스 법사위원장은 대통령의 협력 요구를 초헌법적인 발상으로 보고 거절했다. 그 결과 대통령의 야심은 좌절됐고 이후 민주당은 친(親)루스벨트 성향의 북부 진보세력과 반(反)루스벨트 성향의 남부 보수세력으로 양분되기 시작했다.



 한편 이와 상반된 사례도 적지 않다. 박빙의 접전 끝에 60년 대선에서 힘겹게 승리한 케네디 대통령은 진보적인 선거 공약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당시 의회 다수당인 민주당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했다. 그러나 민주당 내 남부 보수세력은 공화당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개혁법안의 통과는 불투명했다. 이때 케네디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도와준 원내지도자가 남부 텍사스주 출신 하원 의장인 레이번이었다. 레이번은 당내 보수 성향의 상임위원장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케네디 개혁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레이번은 민권운동의 확산 등 60년대 진보주의 시대의 등장을 예견하고 민주당의 활로는 진보적 어젠다를 포용하는 데 있다고 믿었다. 레이번의 협력이 없었다면 케네디 대통령의 개혁적인 노력이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두 가지 사례는 대통령이 높은 국민적 지지를 확보하고 있어도 권력 분립을 무시하고 정당 통합성을 앞세워 의회에 지나치게 개입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고, 반대로 미약한 국민적 지지와 당내 기반에서 출발한 대통령이라도 의회의 권한을 인정할 경우 의회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음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미국과는 엄연히 다른 한국 정치의 토양에서 여당은 권력 분립과 함께 당·청 관계의 통합성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고민이 있다. 이러한 고민에 직면한 여당에 대해 대통령은 정당의 위계적 통합성을 강하게 요구했고,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원내 자율적 어젠다 설정 권한을 주장하다가 마침내 낙마했다. 어지러운 국회의 상황을 볼 때 3김 시대 당시 당내 질서를 유지한 제왕적 총재에 대한 일말의 향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외의 비난과 질타, 혼돈 속에서도 한국의 정당정치는 자율적 정책 능력의 확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개인적 공과를 떠나 인위적인 원내대표의 퇴장을 통해 여당의 질서가 ‘회복’된 것을 반길 수만은 없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손병권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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