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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휴보 아빠’ 오준호교수































지방출장 중에 예전 동료기자였던 후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뜬금 없이 오준호 교수의 ‘뒷담화’를 왜 쓰지 않냐고 다그쳤다.



“오준호 교수가 누구지?” 라고 물었다.

“있잖아요. 휴보의 아빠.”



‘휴보의 아빠‘라는 이야기에 대뜸 기억이 떠올랐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민망한 기억이 있다.



“그분에게 무슨 일 있어?”

“얼마 전 세계 재난 로봇 경진대회인 DARPA 로봇공학 챌린지(DRC)에서 우승했어요.

“아! 그래?”

“메르스 여파로 화제가 덜 부각된 것 같아요. 사실 올림픽 금메달 이상의 쾌거에요. 날고 기는 세계의 모든 로봇을 제치고 우승한 겁니다.”



몰랐었다. 온통 메르스에 신경을 곤두세운 탓에 쾌거를 모르고 지나친 게다.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사진파일을 뒤졌다.



[2011,01,10 휴보] 폴더를 찾았다.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전화로 기억을 떠올려줬던 그 후배와 당시 로봇의 현황에 대한 기획취재를 했었다.



대전 카이스트로 휴보를 만나러 가며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로봇 태권브이를 상상했었다.



하늘을 날지는 못할지언정 로봇의 늠름한 자태는 찍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연구실로 들어서면서부터 휴보를 찾고자 두리번거렸다.



안전거치대에 걸려 있었다. 기대했던 늠름한 모습과는 달리 옷걸이에 걸린 모양새였다.



로봇 태권브이를 상상했으니 첫인상은 당연 기대에 못 미쳤다.



일단 휴보부터 촬영하기로 했다. 오 교수와 팀원들은 휴보를 준비하고 난 조명을 세팅했다.



분주히 움직이다가 그만 휴보의 동력선을 밟았다. 그 순간 휴보가 주저앉아 버렸다.



누군가 ‘앗’이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마치 건물이 붕괴되 듯 그렇게 처참히 고꾸라져 버렸다.



낭패였다. 동력선을 밟으면서 동력이 끊겨버린 게다.



휴보는 동력이 끊어지면 혼자 서있지 못했다. 평상시 안전거치대에 걸려 있던 이유였다.



다시 세팅하는데 20여 분 이상 걸렸다. 안절부절 못했다.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수 년 간 고생하며 만들어 온 그들의 성과가 아닌가.



무지한 사진기자의 실수로 한순간에 그 노력의 결과물이 사라져버릴까 두려웠다.



그간 살아오면서 가장 길게 여겨진 20분이었다.



다행히 휴보는 다시 살아났다. 반갑게 손을 들어 인사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했다. 컴퓨터로 명령을 했다. 휴보가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네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휴보 아빠’ 오 교수와의 촬영이 이어졌다.



휴보의 아빠이니 업어라. 휴보와 같은 포즈를 취해 달라. 조금 전에 사고 친 것은 그새 잊고 갖가지 주문을 했다.



심지어 머리카락이 드문 오 교수의 머리를 휴보가 손으로 가려주는 모양새의 짓궂은 요구도 했다. 오 교수는 사고 친 기자의 요구를 다 들어주었다.



촬영 후, 오 교수가 내게 부탁을 했다. 함께 고생한 팀원들의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이었다. 혼자만 사진 찍은 일이 미안했던 게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이건 누구 한 사람의 성과물이 아니라 모두의 열정이 모여 이루어졌다'는 의미라 여겨졌다.



그렇게 취재가 끝난 후, 취재를 기획한 후배가 인사발령이 나버렸다.



이 취재는 휴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로봇의 현황을 전반적으로 취재하는 기획기사였다.



아직 더 취재해야 할 일이 남았는데 신문이 아닌 전혀 다른 분야로 발령이 나버렸다.



취재를 마무리하지 못할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사고까지 치며 취재한 일이 신문에 게재되지 못했다. 사실 동력선 밟은 일보다 더 죄송스러운 일이었다. 그 바쁜 사람들의 시간을 뺏고서 신문에 게재 못한 일, 두고두고 가슴에 맺힐 일이었다.



후배는 고백했다. 사죄의 편지와 함께 당시 찍은 사진을 보내줬노라고….



아마도 후배는 세계 재난 로봇 경진대회 우승의 쾌거를 듣고 누구보다 반가웠던 게다.



4년이 훌쩍 넘었고, 신문기자 일을 그만둔 상태에서도 신문에 게재되지 못한 그 일을 맘에 두고 있었던 게다.



그 후배가 직접 나서서 오 교수와의 통화를 주선했다. 내심 조마조마하며 통화를 했다.



“교수님 축하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며 4년 전의 일을 사과했다.



“괜찮습니다”라는 밝은 목소리에 용기를 얻어 동력선 사고 이야기를 꺼냈다.



담담하게 한 달에 한 번 꼴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우승한 휴보는 예전과 달리 동력선이 없던 거 같은데요?”



도둑이 제발 저린 심정이라 동력선이 없는 게 먼저 눈에 띄었다.



“이번 대회에 나간 휴보는 동력선, 송신선, 안전장치가 없이 무선으로 움직입니다.”



무엇보다 반가운 얘기였다. 앞으로 동력선을 밟을 사진기자는 더 이상 없을 게다.



그 후 4년, 휴보는 이만큼 왔다.



쟁쟁한 세계의 로봇과 견주는 것을 넘어 최고의 자리에 섰다.



휴보 아빠와 그 팀원들, 200만 달러의 상금을 로봇 연구비에 쓸 계획이라고 했다.



이 자리가 끝이 아니란 얘기다. 새로운 시작의 선언으로 들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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