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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왕세자, 슈워제네거 … 그들이 그곳서 옷 맞춘 까닭은

럭셔리 남성복의 대명사 에르메네질도 제냐(Ermenegildo Zegna)의 2016년 봄여름 컬렉션 패션쇼가 지난달 밀라노에서 열렸다.

럭셔리 남성복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탄생 현장

수석 디자이너 스테파노 필라티는 이번에도 물 흐르듯 몸을 편하게 감싸는 피트감, 재킷과 가방의 경계를 허무는 놀라운 디테일을 보여줬다.

더불어 알프스 산속 마을에 자리 잡은 모직공장 ‘라니피치오 제냐’도 공개했다. 브랜드 창립자가 1930년대부터 민둥산에 침엽수를 심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자연친화적 공정으로 울 원단을 만들어내 ‘자연 실험실’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제냐 패션쇼 밀라노 SS2016
섹시한 도시 남자로 만드는 제냐 패션의 매력
우주선의 긴 통로처럼 단순하지만 위압감이 느껴지는 밀라노 패션쇼장의 화이트홀에서 쇼를 기다리는 사람은 800명도 넘었다. 맞은 편에 브랜드의 CEO 질도 제냐(Gildo Zegna)와 이탈리아 ‘보그’ 편집장 카를라 소차니의 모습도 보였다.

눈부시게 밝은 빛과 함께 등장한 첫 번째 모델의 의상은 ‘맨 인 블랙’. 흐르는 듯한 팬츠, 여유롭고 넉넉해 보이는 올 블랙 수트와 코트가 세련된 남성의 개성을 보여줬다. 그 뒤로 다채로운 색상의 마드라스체크(격자무늬) 코트, 베이지와 회색 톤의 밝고 가벼운 여름용 코트와 수트가 등장했다.

봄여름 컬렉션이지만 제냐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더블 센추리 캐시미어 같은 울 소재를 실크나 면 등의 소재와 함께 사용했다. 울은 직조공정에서 섬유와 실 사이에 공기층이 형성되면서 열전도가 느려져 방한기능은 물론 단열기능도 갖추게 돼 여름에도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시킬 수 있다.

동일한 소재로 제작돼 옷의 한 부분으로 보이는 가방, 언밸런스로 재단된 재킷과 그에 부착된 가방처럼 생긴 큰 주머니, 지퍼로 잠근 점퍼의 아랫부분을 다시 단추로 모아 잠근 디테일은 모두 수석 디자이너 스테파노 필라티의 아이디어가 탄생시킨 패션코드로, 착용자를 섹시한 도시 남자로 만드는 마법을 발휘했다. 마지막 무대의 모든 의상과 액세서리는 올 화이트임에도 신발만은 엄격하게 블랙으로 매치시켜 품격을 유지했다.

패션쇼가 끝난 후 백 스테이지로 향했다. 쇼를 마친 반라의 멋진 모델들이 사방에 있어 어디에 눈을 둬야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모델들의전신사진이 빼곡히 붙은 벽을 보니 패션쇼에 들인 공이 새삼 느껴졌다. 2015/16 제냐 쿠튀르 광고모델 벤 노토버와 미국 프로농구 올스타 카르멜로 앤서니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제냐의 맞춤옷을 입어서인지 농구 선수가 할리우드 스타처럼 멋져 보였다. 그 역시 제냐의 마법에 걸린 것이다..

부카네베 호텔에서 내려다본 오아시 제냐
‘살아 있는 자연실험실’ 오아시 제냐
밀라노에서 북서쪽으로 약 120km, 마테호른과 밀라노의 중간지점에 있는 트리베로(Trivero) 마을은 주민이 6000명 밖에 안 되는 알프스 첫 자락의 산간마을이지만 제냐 덕분에 패션계에서 유명한 곳이 됐다. 알프스의 오아시스라는 의미로 브랜드가 추진하고 있는 환경보호 프로젝트 이름인 ‘오아시 제냐(Oasi Zegna)’는 이제는 제냐의 모직 공장이 있는 트리베로와 발레 델 체르보 지방을 연결하는 약100km²의 산간지명으로 더 유명하다.

브랜드 창립자 에르메네질도 제냐는 산업 발전이 환경에 기여해야 한다는 ‘그린 정신(Green Thought)’이 투철했다. 그는 1930년대 당시 주민들이 땔감으로 쓰기 위해 나무를 모조리 베어버려 민둥산이었던 루벨로 산에 50만 그루의 침엽수를 심었다. 또 26km에 달하는 길도 닦아 문명 사회로 향하는 문을 냈다. 또 공장 근로자와 지역 주민을 위해 제냐 센터를 설립하고 병원과 학교·수영장·스키장·주민센터 등의 부속 시설도 세워 복지를 증진시켰다. 두 번의 세계대전 기간에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보는 고아원도 운영했다고 한다. 이런 기여로 에르메네 질도는 43세이던 1935년에 산업훈장을, 6년 뒤인 41년에는 ‘몬테 루벨로의 백작’이라는 칭호를 얻게 됐다.

창립자의 그린 정신을 계승한 제냐의 후계자들은 93년부터 본격적으로 ‘오아시 제냐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환경과의 대화, 자연·산업·지역단체 간의 조화가 목적이다. 이 프로젝트 덕분에 멸종 위기의 동·식물들은 새 보금자리를 틀었고, 자연을 사랑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곳을 찾고 있다. 이제 활동 범위를 세계로 넓혀 AMREF 아프리카 의료 및 연구 재단의 ‘물과 건강’ 프로젝트, WWF 중국 지부의 팬더 이동 통로 프로젝트, 세인트 주드 어린이 연구 병원의 소아 백혈병 치료 및 연구를 함께하고 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과 함께 ‘제냐-마린스키 신인상’을 제정, 젊은 인재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1세기 동안 4세대에 걸쳐 계속되고 있는 산업발전 기여와 사회공헌은 2011년 제냐 가문에 또 한 번의 산업훈장 수상이라는 영예를 안겼다.

제냐 본사 안뜰에도 꽃디자인으로 장식되었다. 바닥을 가로지르는 철판은 예술과 음식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나뭇가지
최고 재단사·디자이너가 원하는 제냐의 옷감
트리베로에 도착해 모직공장 ‘라니피치오 제냐’를 둘러보기 전 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점심식사를 함께했다. 옆 테이블에는 2000년에 설립된 제냐 재단의 이사장인 안나 제냐도 식사 중이었다. 담당직원은 “제냐의 모든 임직원이 대부분 사내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고 귀띔했다.

라니피치오 제냐는 최고 품질의 양털을 원산지에서 직접 공급받아 자체적으로 실을 만들고 그 실로 직물을 짜는 곳이다. 실로 꼬기 전 상태의 울 덩어리들은 솜사탕처럼 폭신폭신했다. 드럼 통만하던 크기가 한 타래의 실로 줄어드는 과정도 흥미로웠다. 제냐는 원자재 구입부터 세척·빗질·방적·염색·색실꼬기·마무리 등 직조의 전 과정에 직접 관여한다. 제냐 원단을 전 세계 최고의 의상 디자이너와 재단사들이 선호하는 이유다.

수백 개의 실타래에서 나온 실이 마침내 천의 형태로 만들어지는 직조 파트는 규모도 대단했다. 품질관리 부서에서는 아직도 수백 년 전의 방식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매년 스페인에서 수입하는 마른 산토끼 꽃 열매를 이용해 불순물과 보풀을 일일이 손으로 천에서 떼어내는 작업이다. 첨단기술과 전통 수공업의 적절한 공생이다.

마지막으로 제냐 하우스를 방문했다. 큐레이터 마리아 루이사 프리자가 기획한 ‘꽃의 풍경. 패브릭. 꽃. 레시피’ 전시가 한창인 이곳은 ‘아비투스 제냐(habitus zegna)’, 말 그대로 주변 환경에 의해 형성된 제냐의 철학과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사용하던 모자와 의상, 할리우드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영국 찰스 왕세자를 위해 제작한 종이패턴, 80년대 이후 제냐 스타일 변천사를 10년 주기로 보여주는 쇼룸 등 105년 브랜드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2층 문서보관실은 제냐 하우스의 진수였다. 1910년부터 제작한 패브릭 샘플을 볼 수 있었다. 샘플 자료집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70년대 당시에도 샤넬, 디올, 기라로슈, 입생로랑, 발렌티노 등 명품 패션 디자이너들의 옷이 제냐의 옷감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주문 연도와 컬렉션 이름, 디자이너 브랜드 이름이 꼼꼼히 적혀있는 자료들은 제냐의 오늘과 미래를 이미 설명하고 있었다. ●


밀라노 글·사진 김성희 중앙SUNDAY S매거진 유럽통신원 sungheegioielli@gmail.com, 사진 에르메네질도 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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