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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비극 겪은 유로존 “2025년엔 경제통화동맹 격상”

11일(현지시간) 그리스 의회에서 개혁안 표결이 진행되자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오른쪽)가 야니스 드라가사키스 부총리(가운데), 유클리드 차칼로토스 재무장관과 문건을 살펴보고 있다. [신화통신]
화폐는 국가 주권의 상징이면서 그 나라의 힘을 표출한다. 세계 각국은 미국의 달러나 유로화를 결제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만큼 미국이나 단일 화폐 유로를 쓰는 유로존 19개 회원국의 경제력이 크다. 그런데 유로의 경우 달러와 크게 다르다. 역사상 첫 국가 없는 화폐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보면 화폐는 전쟁이나 혁명 등 큰 정치적 변동 후에 도입됐다. 그러나 유로는 19개 국가의 공동 화폐다. 1999년 1월 1일 국제무대에 데뷔했을 때 독일과 프랑스, 베네룩스 3국 등 11개 회원국이 자국 화폐를 폐기하고 유로를 도입했다. 유럽연합(EU) 28개 회원국은 유로를 채택하기 위한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단일 화폐를 도입할 수 있다. 유로존이 계속 확대된 이유다. 유로화는 90년 밀물처럼 빠르게 전개된 독일 통일 과정에서 협상의 산물로 나왔다. 경제적 동기보다 정치적 이유가 더 크게 작용해 국가 없는 화폐가 도입됐다.

베를린 장벽 무너지며 유럽 통합 가속
1871년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독일을 통일한 후 ‘독일 문제’는 유럽정치, 그리고 국제정치의 난제였다. 유럽 대륙 중앙에 위치한 최강대국이자 구조적 요인 때문에 제1, 제2차 세계대전의 업보를 안게 된 독일을 어떤 틀이 제어할 수 있느냐는 문제였다. 평화 교란자로서 독일 문제를 해결한 것은 2차 대전 후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초강대국으로 등장한 미국이 ‘유럽 세력’이 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전의 고립정책에서 탈피해 서유럽 대륙에 30만 명에 이르는 군을 주둔시켰고, 독일을 제어할 수 있는 방안으로 유럽 통합을 적극 지지했다. 유럽 국가 체제의 불안요소였던 독일을 역외 세력인 미국이 체제 관리자로 참여해 제어하게 됐다. 프랑스도 이전의 대독일 보복정책에서 탈피해 독일(당시 서독)을 동등한 파트너로 대우하면서 라인강의 이웃 나라와 함께 국가 주권을 유럽 기구에 이양하는 초국가적 방향의 통합을 주도했다.

그런데 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해결됐다고 생각했던 독일 문제가 다시 급부상했다. 서독은 2차 대전 후 국토가 분단된 상황에서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유럽 통합에 적극적이었고 다자주의 외교정책을 실행해 왔다. 통일 후 더 강대해질 독일이 유럽 통합의 틀을 깨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유럽 각국에서 커졌다. 이런 배경에서 유로화 출범이 합의됐다. 당시 서독의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는 통일 독일이 계속 ‘유럽의 틀’ 안에서 유럽 통합에 적극적일 것임을 프랑스에 납득시켰다. 이를 입증하는 증표가 마르크화의 포기였다.

‘단일 시장엔 단일 화폐’ 논리로 유로 탄생
독일 마르크화는 유럽통화체제(European Monetary System)에서 기축통화 역할을 했다. 가장 강력한 외교정책 수단의 하나였던 마르크화를 독일이 포기해 유로화가 등장할 수 있었다. 당시 EU 회원국들이 경제력이나 경제 운용의 철학(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중시하는 독일, 중앙은행을 경제정책의 수단으로 활용해온 프랑스)이 매우 상이한 가운데 통일 후 패권국가가 될 우려가 있는 독일 견제라는 정치적 목적이 크게 작용해 유로화가 나왔다.

이런 배경에서 출범했기에 유로화 데뷔를 전후해 많은 비판이 제기됐다. 미 하버드대 경제학자 마틴 펠드스타인(Martin Feldstein)의 맹렬한 비판이 자주 인용된다. 그는 유로화 도입이 “경제 여건을 무시한 성급한 결정이고 독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동기로 이뤄졌다”며 이는 “유로존 회원국 내의 갈등, 나아가 유로존과 미국 간의 갈등을 야기할 것”이라 내다봤다. 2010년 유로존 위기가 발발하면서 그의 비판은 상당히 적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펠드스타인은 유럽 통합의 변증법적인 과정을 경시하고 있다. 통합이 하나의 완벽한 마스터플랜에 따라 이루어진 게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면서 결함을 수정하고 발전했기 때문이다.

유럽 통합 과정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으로 유럽 경제는 침체됐고 통합도 정체됐다. 68년 계획보다 2년 먼저 관세동맹을 완성했던 당시 유럽경제공동체(EEC)는 이런 위기 앞에서 상당기간 무기력했다. 회원국들이 힘을 합쳐 유럽적 차원에서 공동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각자도생에 매달렸다. 이런 유럽동맥경화증을 치료한 계기가 바로 92년 단일 시장 완성 계획이었다. 회원국들이 경기침체 때 쌓아 올렸던 각종 비관세장벽을 제거해 상품과 서비스, 노동과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하나의 시장을 그때까지 완성하자는 것이었다. 87년 7월 비준된 단일 유럽의정서는 이를 구체화했고 EEC는 이를 지켰다.

이때부터 제기된 것이 ‘단일 시장에는 단일 화폐’가 필요하다는 경제적 논리였다. 하지만 위에서 지적한 대로 단일 화폐는 단순한 경제적 필요성이 아니라 독일 제어라는 정치적 동기가 더 크게 작용해 경제학자들이 예측한 것보다 아주 이른 시일 안에 탄생했다. 그러니 당연히 태생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재정 통합이 미미한 통화동맹이라는 게 유로의 태생적 한계다. 개별 국가의 고유 권한인 통화정책은 유럽중앙은행(ECB)이라는 초국가적 기구에 이양됐지만 조세와 재정 지출 등의 재정정책은 유로존 회원국이 권한을 행사해 왔다. 유럽 차원에서는 회원국의 재정정책에 대해 느슨한 감독만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유로존 내 불균형(Euro zone imbalance) 조정 메커니즘이 없다. 99년 유로화 도입 후 독일과 네덜란드 등은 경제 체질을 개선해 구조적으로 경상수지 흑자국의 위치를 유지해 왔고 그리스와 포르투갈 등의 PIGS 국가는 구조적인 적자국이었다.

은행동맹에서 재정동맹으로 발전
이런 유로존 경제 불균형은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도산으로 본격화된 글로벌 경제위기의 와중에 더 커졌다. 자본이 그리스를 떠났고 무역 의존도가 채 20%도 되지 않는 그리스의 경상수지 적자는 커졌다. 시장이 자동 조정 기능을 수행해 이런 불균형을 시정하리라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는 2010년 유로존 경제위기 발발 이후 헛된 바람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독일을 비롯한 유로존 회원국들은 유로존 경제위기를 계기로 이런 여러 가지 결함을 단계적으로 수정해 왔다. 위기가 바로 통합을 앞당기는 방아쇠가 됐다.

유로존 위기는 은행 감독과 정리 등의 국가 핵심 권한을 유럽 차원으로 이양하게 했다. 이런 게 은행동맹(banking union)의 골자다. 99년 유로화 출범 이후 가장 큰 폭의 주권 양도다. 2011년 우리나라의 지방 저축은행 정리에서 보듯이 은행 감독과 정리는 회원국에서 처리할 때에도 정치적 민감성 때문에 쉽지 않다. 자산 규모가 300억 유로 이상의 금융기관은 유로존 단일감독기구의 직접적인 감독을 받는다. 유로존 회원국 금융기관의 정리도 단일 정리기구가 맡게 됐다. 유로존은 아울러 5000억 유로 규모의 상설 구제금융 기구인 유럽안정메커니즘(ESM)도 구축했다.

올 상반기 그리스의 구제금융 연장 협상이 난항을 겪고 그렉시트 가능성이 점차 커지면서 유로존은 은행동맹에서 몇 걸음 더 나아가 경제통화동맹을 완성하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지난달 22일 EU의 5개 기구 의장(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 유럽의회, 유럽중앙은행, 유로화 회원국의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 EU 회원국 수반 회의인 유럽이사회 상임의장)은 늦어도 2025년까지 유로체제의 미비점을 수정해 경제통화동맹을 완성하자는 공동 보고서를 발표했다.

유로존 위기 와중에 비슷한 보고서가 나왔지만 이번은 5개 기구 의장이 합의했고, 이게 유럽이사회의 정식 의제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3단계로 이루어진 이 계획은 마지막 단계에서 유로존의 재무부 설립을 제안했다. 이를 위해서는 추가로 조약 개정이 필요하고 제한적인 유로본드의 발행도 가능할 수 있다. 은행동맹에서 빠져 있던 유로존의 공동예금 보장도 여기에 들어 있다.

EEC는 ‘1992년 계획’으로 70년대 유럽 동맥경화증을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2025’가 하나의 매직 넘버가 될 수 있다. 그렉시트 여부와 관계없이 유로화의 실험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유럽 통합이 위기와 이를 극복하는 변증법적 과정을 겪어 왔기에 그리스 위기 하나만을 갖고 유로존의 붕괴(부분 혹은 전면적이든지)를 섣불리 예단해서는 안 된다. 국제무대에서 유럽의 영향력을 제고하고 미국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확보하겠다는 통합의 원래 목적은 계속해서 유효하다.



안병억 대구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 전 연합뉴스·YTN 기자. 영국 케임브리지대 국제정치학 박사(유럽통합 전공). 현 한국유럽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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