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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파 본질은 배신 … 승자 독식 황홀함 찾아 철 되면 이동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한국 정치의 오늘이 안타깝다. 따지고 보면 한국 정치의 특징 중 하나인 계파정치의 꼬인 실타래가 빚은 당연한 결과다.

 냉정히 생각해 보건대 이 땅에 정당은 없었다. 정당처럼 보이는 그건 단지 계파를 덮고 감싸는 외피일 뿐이다. 계파는 당을 주무르며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들을 배출하는 젖줄로 작동한다. 선거 때마다 정치인들은 계파를 급조하거나 서둘러 없앴고, 갈아탔다가 되돌아오길 반복해 왔다. 이 점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서로의 거울이다. 대통령 말 한마디로 집권당 원내대표가 물러나고, ‘계파는 없다’면서도 제 사람 쓰기 바쁜 야당 대표의 모습은 ‘알아서 기기’와 ‘함부로 정치’의 원형이다.

생각과 출신 공간 중시하는 ‘파벌’
‘계파’의 원형은 파벌(派閥)이다. 생각을 함께하는 ‘파’와 출신 공간을 중시하는 ‘벌’이 모여 죽을 때까지 한 사람만 섬기겠다는 특이한 집단 개념은 조선의 사색(四色)당파를 기원으로 삼는다. 하지만 현대 한국 정치에서 계파는 엉큼하고 은근하며 나아가 요행까지 바라는 사람들의 정치적 본능에서 출발했다.

 해방 공간부터 계파 간 다툼은 있었지만 본격적 파쟁의 꼴을 갖춘 건 제2공화국 이후 ‘3김’ 정치에서다. 민주당이 신파와 구파로 나뉘자 청년 김대중과 김영삼은 계파정치를 제대로 학습하며 평생 숙적이 됐다. 박정희의 그늘 아래 기를 못 펴던 김종필마저 양 김과 대권을 향한 경쟁구도를 갖춘다. 한국에서 직업으로 정치를 하려면 어떻게든 세 사람 눈에 들어야 했고, 자기 계파의 보스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선 나머지 김씨들은 떨어져 나가야만 했다.

지난 2일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태호 최고위원이 유승민 원내대표의 퇴진을 재차 거론하자 김무성 대표가 회의장을 나가고 있다. [중앙포토]
 이념의 좌우 편향과 당내의 실질적 영향력 혹은 성별이나 당력, 지역 변수를 고려할 수도 있지만 계파를 움직이는 힘은 역시 보스의 존재감이다. 정책이나 철학보다는 오직 사람만 보고 움직인 게 해방 후 한국 계파정치의 일관된 공통점이다. 제2공화국의 민주당을 이은 신민당에서 김대중과 김영삼은 그들의 선후배 세대와 복잡한 인연으로 얽힌다. 신민당은 양일동·고흥문 등이 이끄는 유진산 직계와 김영삼·이철승이 나선 범주류계, 그리고 김대중과 정일형이 맡았던 비주류계와 함께 김홍일의 중도계로 고난의 세월을 시작한다. 하지만 계파의 멤버들이 은연중 힘을 길러 당내 새로운 보스들이 되면서 갈등의 싹을 키운다. 당의 상징적 중심이었던 유진산이 죽자 신민당은 김영삼이 이끄는 당이 된다.

 그러나 신민당은 김영삼 혼자 완전 장악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당의 3세대 지도자들로 김영삼 말고도 김대중과 이철승·김재광·이기택·신도환 등이 계파의 세포분열을 재촉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신민당은 김영삼을 추종하는 세력과 김대중 계파로 쪼개진다. 이기택계와 잔류파도 있었지만 그들의 세는 미미했다. 1987년 김영삼이 끝내 통일민주당을 만들어 자기 계파의 확장을 꾀하자 김대중은 평화민주당을 세워 양 김이 본격적으로 대결하기 시작했다. 3당 합당으로 여권으로 들어간 김영삼이 92년 대권을 잡고, 김대중이 정계은퇴를 선언하자 민주당 계파는 이기택·김상현·정대철과 중도파로 다시 분열한다. 95년 6 · 27 지방선거 후 민주당은 범동교동계와 비동교동계로 다시 갈라진다.

 여권의 경우 97년 3월만 하더라도 신한국당 계파는 이회창과 박찬종·이한동·김덕룡·김윤환·최형우와 김영삼 직계로 어지러이 나뉘어 있었다. 결국 그들은 김수한 등 17인 중진모임과 최형우·김덕룡·범민주계로 헤쳐 모인다.

 야권의 범동교동계는 2001년 6월 권노갑과 한광옥, 새천년민주당 중도파와 한화갑계로 다시 분열한다. 이듬해 16대 대선 직전 민주당의 역학구도는 친노와 반노로 나뉜다. 김원기 등이 이끄는 친노그룹과 김원길 등 탈당을 불사하겠다며 나선 신당 추진파, 김영배와 한광옥이 이끄는 당대당 합당 추진파와 이인제의 반노그룹 간 대결은 아직 국민이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전후, 동교동계는 다시 가신그룹과 비서그룹, 범동교동계로 갈리고 신주류는 서명파와 신중파로 나뉜다. 17대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계파는 또 어떤가. 노무현 직계와 정동영계·김근태계·천정배계·신기남계·개혁당계로 다시 갈라진 그들의 모습 또한 생생하다.

철새 정치인이 그린 우리 정치 자화상
보스 한 사람만 바라보며 충성의 의지를 불태운 진짜 이유는 승자 독식의 황홀함 때문이다. 하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불안한 보스 곁에서 의심 많고 성질 급한 철새 정치인들의 계파 갈아타기는 우리 정치사의 슬픈 자화상이다. 노태우와 김영삼·김종필의 3당 합당과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당을 박차고 열린우리당을 만들어 나가며 들끓던 광풍은 잊지 말아야 할 집단 계파 이동의 민낯이다.

 이합집산의 문화는 이제 숨 고르기에 들어간 형국이다. 철새가 앉을 자리가 비좁아진 건 그나마 한국 정치 발전의 징표다. 표로 후려치는 유권자들의 매가 처방전이었다. 하지만 명분만 그럴듯하면 언제든 배반과 변절의 역사를 반복할 태세의 집단이 이 땅의 계파 정치인들이다. 단순히 계파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갈아타고 배반하며 거침없이 되돌아오니 문제다. 유권자는 봉이고 정당은 계파 가리개로 더없이 훌륭하며 가능하면 언제든 만들고 없앨 수 있다는 사고가 먹혀드니 한층 덧없는 정치일 따름이다.

 계파정치의 폐해를 뛰어넘을 대안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영국의 ‘내각정부론’에 눈길이 간다. 영국의 계파는 민주주의를 망치는 악마가 아니라 도리어 정책과 연계해 특정인과 특정 정당의 독주를 견제하는 ‘파수꾼’ 역할을 한다. 집권당의 특정 계파가 총리를 배출하더라도 그는 다른 계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영국 총리가 독재자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유권자가 계파 정치 악순환 막아야
우리는 어떤가. 한번 보스가 되면 당을 자신의 사유물로 인식하는 이 땅에서 상대 계파의 엄혹한 관찰과 감시를 받아들이는 일이 가능할까. 그런 상황에서 차기 공천 가능성을 단숨에 날릴 각오를 한 채 정면 도전을 감행하는 의원들을 기대할 수 있을까.

 정치가 중요한 가업(家業)이며 계파는 그 자체로 존치돼야 할 목적 가치로까지 받아들여지는 일본의 경우는 우리에게 늘 패러독스다. 전후 일본 정치에서 파벌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내각 말기인 50년대, 전쟁 전 정치인의 공직 추방을 해제할 때 시작됐다. 집권 자민당 파벌들은 각기 별도의 사무실에다 직원까지 두고 독립 회계로 운영됐지만 금권정치와 정치 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94년 파벌 해소에 합의했지만 파벌은 여전히 건재하고 재생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파벌을 만든 사람이 사라져도 파벌은 죽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이 정치를 주무르는 건 우리와 같지만 파벌은 정치하는 사람들을 끝없이 만들고 바꾸어 가며 자금 문제까지 해결한다. 일본의 파벌정치가 정치의 재생산과 인재의 재생산 통로로 긍정적 역할을 하는 부분이다.

 한국 정치에서 계파의 본질은 배신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제 갓 집권당 원내대표를 그만둔 유승민에게 야권 신당을 구상한다는 천정배가 영입 가능성을 언급하는 건 또 뭘까. 그를 진작부터 그처럼 좋아했던 걸까, 아니면 지금만 한 기회가 없기 때문일까. 그렇다 하더라도 계파정치의 폐해를 온몸으로 겪은 천 의원이 할 말은 아니다. 국민은 계파의 수장과 추종자들이 내뱉는 이런 노련한 수사에 허구한 날 휩쓸릴 뿐이다. 몇 달 지나면 곧 또 총선과 대선 정국이 다가온다. 결국 유권자의 표로 응징할 수밖에 없다.



박종성 1953년생.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서울대 정치학 박사. 현 서원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정치는 파벌을 낳고 파벌은 정치를 배반한다』 『형벌을 그리다』 『패션과 권력』 등 단행본 25권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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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