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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눈으로, 음악은 몸으로 듣죠 … 사는 법 많이 달라요

이수연 작가는 “얼굴이 알려지는 게 부담스럽다”며 직접 그린 그림으로 얼굴의 반을 가렸다. 오른쪽은 ‘베스트도전’에 연재했던 ‘나는 귀머거리다’의 한 장면. 최정동 기자
입을 크게 벌려 또박또박 말하고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다양한 사람을 인터뷰했지만 시종일관 상대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화한 건 처음이었다. 카페를 가득 채운 소음이 거슬렸지만 상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역시 질문하는 기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대화에 집중했다.

10일 웹툰작가 이수연(27)씨를 만났을 때 이야기다. 우리의 대화가 이와 같았던 건 그가 소리를 보기 때문이다. 중증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이 작가는 구화(口話)를 사용한다. 상대방의 입술을 읽어 대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입술이 잘 보이도록 얼굴 정면을 보면서 적당한 속도로 정확하게 발음해야 그가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는 “구화라는 게 사람을 여러 번 만날수록 잘하게 돼요. 이 사람은 발음할 때 입 모양이 어떻게 되는지 외워야 하거든요”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자의 입술을 외웠고, 기자는 다소 어색한 그의 발음과 억양에 적응해야 했다.

소리 없는 삶을 짐작도 할 수 없는 사람과 자신의 몸에서 나는 소리도 듣지 못하는 사람. 두 사람이 소통에 익숙해지는 데엔 시간이 필요했다.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나는 귀머거리다’의 표지. 이수연 작가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자신을 소리 없는 공간인 우주의 우주인으로 표현했다.
口話로 대화, 배에 쌀가마 얹고 배워
‘나는 귀머거리다’.

‘라일라’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인 이수연 작가가 8월 초 네이버 웹툰 정식 연재를 앞두고 있는 작품이다. ‘대한민국에서 청각장애인이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설명대로 그가 겪은 장애의 불편, 사람들의 편견, 그로 인한 좌절과 극복을 소재로 다룬다. 가벼이 다룰 수 없고, 자칫 불편할 수도 있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작가는 귀여운 캐릭터를 통해 담담하고 유쾌하게 장애를 다룬다.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감동해 달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구화와 수화의 차이는 무엇인지,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서비스나 학습도우미 제도는 어떻게 운용되는지, 관련 정보도 주된 소재여서 “보건복지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호평도 받는다.

‘나는 귀머거리다’는 지난해 초 네이버 웹툰의 아마추어 리그 격인 ‘도전만화’에 첫선을 보였다.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장(場)이다. 호응을 얻으면 ‘베스트도전’으로 올라간다. 그중 또 인정받은 이들이 원고료를 받는 정식 연재 작가가 된다. 지난 10년간 도전한 14만 명 중 정식으로 선택된 이는 170명 남짓, 800대 1에 이르는 경쟁률이다. 이 작가는 불과 1년여 만에 선택받은 한 명이 된 것이다.

-장애인이라고 꼭 장애를 소재로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요.
“청각장애인을 여럿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저조차 청각장애인을 잘 몰랐더라고요. 귀가 안 들리면 말도 잘 못하는데 그러면 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워져요. 배우는 데 어려움도 많아서 글은 못 읽고 수화만 하는 사람이 꽤 있어요. 그런데 이런 건 잘 모르니까 필담(筆談)하면 된다고 생각하죠. 청각장애는 눈에 보이는 장애가 아니라 오해가 많아요. 이런 게 안타까워서 만화를 그리게 됐어요.”

-그래도 제목이 너무 직설적인데요.
“귀머거리는 순우리말이에요. 비하하려고 만들어진 게 아닌데 식민시대 때 나쁜 의미로 사용되면서 인식이 바뀌었어요. 귀머거리냐 청각장애인이냐, 어떤 단어를 사용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해요.”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그는 유치원부터 초·중·고 과정을 일반학교에서 마쳤다. 대학에선 동양화를 전공했다. 수화 대신 구화를 배운 덕이다.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된 부모들은 ‘어떤 길을 가게 할 것인가’ 고민하는데 구화는 비장애인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구화는 조금이라도 청력이 남아 있어야 배울 수 있다. 소리를 모르는 아이에게 소리를 가르치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웹툰에도 등장하는 이 작가 엄마의 구화 훈련은 혹독했다. 아이의 배에 쌀가마를 얹어 복식호흡을 가르쳤고, 입 앞에 휴지를 대어 주고 바람의 세기 차이를 통해 ㅁ·ㅂ·ㅍ 발음을 구분시켰다. 아이의 손을 자신의 입에 넣어 혀와 입술의 움직임을 익히게 했다.

-청각장애인은 거의 수화를 쓰는 줄 알았어요.
“청각장애인은 소리를 내는 것보다 손을 쓰는 게 쉬워요. 안 들릴수록 더욱 수화를 쓰고요.”

-전혀 들리지 않나요.
“청각장애인 중에도 제가 심한 편이에요. 엄마가 왜 구화를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예요. 의사도 전혀 안 들리는데 말을 하는 건 기적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덕에 이 작가는 어려움 없이 초등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뛰어노는 저학년 시절엔 친구들과의 차이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학년이 높아지면서 달라졌다.

-다르다는 걸 언제 처음 알았나요.
“5학년 때 선생님이 내 준 수학문제를 저는 풀고 친구는 못 풀었는데 ‘얘도 푸는데 왜 너희는 못 푸느냐’고 하시더라고요. 또 학년 올라가면 재잘재잘 말로 놀게 되잖아요. 애들이 갑자기 친해진 게 눈에 보일 때가 있는데 학교 마치고 전화로 수다를 떨어서 그렇더라고요. 부러웠어요. 그때도 카톡 같은 게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요.”

“장애인은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
뜻밖에도 이 작가의 취미는 음악 감상이다. 퀸과 레드 제플린의 열혈 팬이다. 소리를 듣는 대신 진동을 느낀다. 자신의 블로그에서 음악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 처음 음악을 들었을 때를 이렇게 표현했다.

‘볼륨을 최대로 높이고 스피커를 감싸 안았다. 격렬했다. 드럼을 잘 친다는 게 정확히 뭔지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사람의 심장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음악을 듣는다는 게 상상이 안 되네요.
“2011년께 듣기 시작했어요. 그전엔 관심도 없었어요. 저도 신기해요. 2월엔 퀸 공연에 다녀왔는데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공연장에선 음악이 크게 울리니까 진동만으로 어떤 노랜지 구분할 수 있어요. 진동의 세기·길이가 다 달라요. 드럼하고 보컬은 확실히 구분이 가고요.”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에 있는 콘서트 영상을 보여 줬다. 레드 제플린, 메탈리카, 퀸, 비틀스, 롤링스톤스…. 음량이 0으로 맞춰진 콘서트 영상을 보며 그가 말했다. “안 들려도 이해돼요. 영상만 봐도 느껴지는 게 있어요.”
정식 연재와 더불어 ‘나는 귀머거리다’는 단행본으로도 나올 예정이다. 아마추어 작가로는 화려한 프로 데뷔인 셈인데 그의 웹툰이 그만큼 많은 공감을 얻었다는 의미일 터다.

-독자들이 어떤 생각을 해 줬으면 하나요.
“저한테 ‘대표적인 청각장애인 모습이 아니다’ ‘장애인처럼 안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좋은 뜻이겠지만 그것도 편견이고 비하거든요.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 줬으면 좋겠어요.”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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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