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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성지’ 양키스 구장 조명, 5년 된 한국기업이 접수

KMW의 LED 조명을 설치한 시애틀 매리너스의 홈구장 세이프코필드의 모습. 스포츠 전문 방송 루트스포츠가 시애틀과 LA 에인절스의 경기를 중계하는 장면. [사진 KMW]
KMW가 설치한 세이프코필드 조명탑.
‘더 스타디움(The Stadium)’.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팀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 ‘양키 스타디움’의 별칭이다. 구단 역사 114년 동안 무려 27차례나 월드시리즈를 제패한 스포츠 명가의 자존심이 홈구장 명칭에 한껏 배어 있다. 2009년 공사비 15억 달러(약 1조6400억원)를 들여 5만3000명 수용 규모로 재개장한 양키 스타디움은 미국에서 가장 값비싼 경기장이면서 동시에 ‘프로야구의 성지(聖地)’다.

양키 스타디움의 건설이나 개·보수 작업에 참여하는 일은 기업들엔 돈도 되지만 영광이다. 수많은 제조·시공 글로벌 기업들이 뉴욕 양키스의 파트너로 선정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야구장 핵심 시설인 조명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조명은 경기장 전체의 인상부터 선수들 경기력, 관중 몰입감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구단들은 신중하고 깐깐하게 파트너를 고른다.

양키 스타디움의 조명이 올 시즌 후 전면 교체된다. 조명시설을 손본 지 4년밖에 안 된 구장이 전격적으로 재투자를 하는 것이다. 이 새 조명사업의 파트너가 한국의 중견기업이다.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생산에 뛰어든 지 5년밖에 되지 않은 ㈜KMW다. 야구로 치면 신인 선수가 만루 홈런을 친 것과 같은 셈이다. KMW는 어떻게 양키 스타디움에 전격 입성했을까.

세이프코필드에 설치된 SUFA-X.
밝기 차 적고 깜박임 없어야 합격
KMW와 뉴욕 양키스 구단은 지난 5일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올해 말까지 양키 스타디움 조명 전체를 KMW의 1000W급 스포츠 LED 조명 SUFA-X로 교체하기로 합의했다. 소요되는 조명세트는 650개, 공사 규모는 197만5000달러(약 22억원)다.

액수가 큰 공사는 아니지만 이 계약이 주목받는 건 스포츠 조명 중에서도 특히 야구장 조명의 심사가 무척 까다로워서다. 미국프로야구(MLB) 사무국은 경기장 조명에 대한 기준이 엄격하다. 우선 경기장 내 어느 지점에서 측정해도 영역별 조도(밝기) 차이가 16.7%를 넘어서는 안 된다. 어두운 곳에선 수비수의 동공이 커지고 밝은 지점에선 동공이 작아진다. 경기장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는 수비수들에게 조명의 밝기가 들쭉날쭉하면 공의 속도감을 인지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그렇다고 경기장에 일정한 간격으로 조명을 배치만 하면 되는 것도 아니다. 포수 뒤쪽처럼 조명을 배치해선 안 되는 지역이 있다. 뜬공에 야수들의 눈이 부시기 때문이다. KMW 조명연구소장 한종주 전무는 “공이 작으면서 빠르게 오가는 종목일수록 더 높은 수준의 조명 기술이 필요하다”며 “가장 어려운 종목이 야구, 두 번째가 아이스하키, 축구는 상대적으로 쉬운 종목”이라고 설명했다.

야간에 장시간 진행되는 야구경기 특성상 연색성(색 표현력)도 자연광에 가까워야 한다. 연색성이 떨어지는 조명은 선수는 물론 관중의 눈에 피로감을 준다. 특히 빛 깜박임(플리커)이 없어야 한다. 투수가 던진 공이나 타구의 궤적을 느린 장면으로 자주 보여 주는 야구 중계 특성상 깜박임이 있으면 느린 장면이 전개될 때 화면 밝기가 달라질 수 있다.

MLB, 각 구단에 “KMW 조명 참고하라”
KMW는 5년간 600억원의 연구비를 투입해 이 같은 난제를 해결했다. 제품 품질에 자신이 붙은 지난해 4월 KMW는 메이저리그 입성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첫 단계로 시애틀에 5000만원을 들여 높이 12m짜리 세트장을 지었다. 조명을 빼곡히 설치한 뒤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시애틀 매리너스, 지역 방송국 등을 초청했다. 그러고는 세트에서 촬영한 화면을 초당 960프레임으로 나눠 재생해 보였다. 깜박임이 없다는 것을 시연한 것이다.

현재 야구 중계에서 주로 보여 주는 슬로 장면은 120프레임이다. 이를 8배 느리게 재생해도 깜박임이 없자 방송 관계자들 사이에 탄성이 터졌다. KMW의 조명은 연색성이 81%로 기존 조명 65%보다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구단 관계자들은 “공의 실밥까지 선명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세계적인 스포츠 조명 전문가이자 MLB 조명 심사관인 마이크 오엔은 “스포츠 조명에 많은 기업이 도전했지만 성공한 기업은 별로 없다. 이제야 MLB 메인스타디움에 쓸 제대로 된 조명이 등장했다”고 평가했다.

이후 지난해 말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이 홈구장 세이프코필드의 조명 교체를 의뢰해 왔다. 올 초 공사를 마치고 시즌이 열리자 세이프코필드 새 조명은 선수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원정 경기를 다녀간 선수들을 중심으로 “눈부심이 없고 경기하기에 편안하다”는 입소문이 났다.

마침내 MLB 사무국은 각 구단에 공문을 보냈다. “새 조명을 설치하려는 구단은 세이프코필드를 참고하라”는 내용이었다. 뉴욕 양키스 부사장이 시애틀 조명을 직접 와서 보고는 KMW에 상담을 의뢰해 왔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스포츠 경기장 조명은 메탈 할로이드 방식이 대부분이다. 필립스·오스람·GE·머스코 등 LED 조명 선도업체들이 이 시장에 도전을 했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다. LED가 차세대 스포츠 조명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비용이 적게 든다. 메탈 할로이드는 ‘불이 나간’ 램프를 수시로 갈아 끼워 줘야 하지만 LED는 내구성이 뛰어나다. 스포츠 조명은 1년에 600~1000시간가량 사용한다. LED 수명이 보통 5만 시간가량 되므로 한 번 설치하면 교체 없이 30년 가까이 사용할 수 있다.

LED 선도기업도 스포츠 조명 번번이 실패
경제적 이유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무엇보다 응원문화가 달라진다. 끝내기 홈런이 나왔을 때 경기장 구석구석의 조명이 춤을 추듯 빛을 내뿜는 서비스는 LED 조명으로만 연출이 가능하다. 경기 상황에 따라, 음악에 따라 색상까지 다양하게 활용해 조명을 이용한 응원 연출을 할 수 있다.

KMW는 독일 분데스리가 보르시아 구단의 홈구장도 교체를 진행했다. 보르시아의 팀 컬러가 초록색인 데 착안해 KMW는 보르시아 팀의 골이 터지면 경기장 전체가 거대한 초록빛 덩어리가 돼 번쩍이도록 연출해 구단 관계자들을 사로잡았다.

이 밖에 메탈 할로이드는 불이 꺼지면 완전히 밝아질 때까지 30분 이상 걸린다. 국내 야구장에 조명이 꺼지면 경기가 장시간 중단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LED에서는 이런 문제가 없다. 국내 경기장 가운데는 아직 LED 방식을 적용한 곳이 없다. 프로 구단들이 조명 재투자에 나설 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는 데다 팬 서비스에도 덜 민감하기 때문이다. 한종주 전무는 “조명을 손본 지 얼마 안 된 양키스가 전면 교체에 나선 것은 경제적 이유보다 팬 서비스 차원”이라며 “관람문화·응원문화 발달에 따라 스포츠 조명시장이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1991년 설립된 KMW는 통신장비 제조 전문기업이다. 관련 특허를 60건 이상 갖고 있다. 최근 정부가 700㎒대 주파수를 방송용과 통신용으로 나눠 배분할 수 있었던 것도 KMW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보유한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KMW가 LED 조명에 뛰어든 건 2001년. 통신장비와 LED 조명은 전혀 다른 영역으로 보이지만 기술적 유사성이 매우 높다.

LED 조명 제조의 핵심 기술은 세 가지다. 열을 빼내는 방열, 빛을 고루 퍼지게 하는 배광, 빛을 제어하는 기술이다. KMW는 이 기술들을 통신장비 제조 과정에서 고스란히 축적했다. 통신장비도 열을 식혀야 하고, 빛과 물리적 성질이 비슷한 전파를 고루 퍼지게 해야 하며, 켜거나 끄고 강약을 조정하는 제어기술이 중요하다. 유대익 대표는 “핵심 기술 축적부터 미주 판매까지 통신장비사업에서 구축한 노하우 덕분에 손쉽게 새 사업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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