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송용선의 인터스텔라] 안개 속으로 사라진 태초의 빛 우주기원 밝힐 빅뱅 흔적 못 찾아

137억 년 전 초기 우주의 배경 복사를 보여주는 그림. 색깔 차이는 미세한 온도 차이를 나타낸다.
21세기로 넘어가는 1999년 관측 우주론을 전공하고 싶었던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국내의 대학은 없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세계의 유수한 모든 대학에서 빠르게 우주론 그룹을 결성하고 있었지만, 아직 국내 학계에서는 그런 움직임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두려운 마음으로 스승을 찾아 외국으로 떠난 것이 15년 전이었다.

내가 우주론 공부를 시작한 1999년은 기존의 우주 표준모형이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논쟁이 시작된 해이기도 했다. 그 새로운 가능성은 1999년 우주 가속팽창의 발견에 의해서 열리게 되었다. 이 우주 가속팽창의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솔 펄머터 교수의 세미나를 들었던 것도 같은 해였다. 아직 기존의 우주 표준모형이 무엇인지도 배우기 전에 이제 기존의 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생각을 해야 한다는 강의부터 접한 세대가 된 것이다. 모든 학습은 검증된 것만을 최소한으로 남겨둔 채 알고 있지 못한 것은 분리하며 진행됐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빅뱅(Big Bang) 우주론에 사실 빅뱅이 없다.

인간에게 주어진 우주가 유한하고 인간이 관측할 수 있는 우주의 지평선이 있다고 지난 글에 밝혔다. 그렇다면 빅뱅의 신호가 인간의 우주 지평선 너머에 있을 경우에는 인간은 영원히 우주의 기원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바닷가에서 수평선을 바라본다고 가정하자. 그 수평선에 있는 배가 내게 빛으로 신호를 보낸다. 그런데 빛이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있으므로 난 항상 과거만을 관측할 수 있다. 만일 수평선까지의 거리가 멀어진다면 난 현재로부터 더 멀리 떨어진 과거를 관측하게 된다. 만일 인간에게 주어진 우주의 지평선이 우주의 기원을 볼 수 없을 만큼 짧다면 인간은 영원히 우주의 기원을 알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다행히도 인간에게 주어진 유한한 우주는 충분히 커서 그 태초의 신호를 받을 수 있다.

1920년대 후반 빅뱅 우주론 등장
그런데 아직 그 누구도 빅뱅을 보았다고 증언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가 빅뱅을 볼 수 없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1920년대 후반은 우주팽창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었다. 허블이 발견한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반론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한 팽창이 과거에도 지속되어 모든 우주가 하나의 점으로 수렴하는 순간을 의미하는 빅뱅이 있었을 것이라는 이론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40년대 대부분의 이론 우주론자들은 우주가 공간적으로도 균일하지만 시간적으로도 균일하다는 정상 우주론을 생각했다. 공간이 팽창하면 부피가 커져서 밀도가 작아진다. 만일 미지의 물질이 끊임없이 생산된다면 질량도 함께 커져서 우주의 밀도가 시간적으로도 균일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우주가 팽창한다고 해도 태초에 빅뱅을 도입해야 하는 이유가 없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정상우주론자들이 대다수였고, 빅뱅 우주론을 주장하는 우주론자들은 소수였다. 하지만 과학적 진실이라는 것이 과반수 찬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상 우주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증거가 필요했다. 밤이든 혹은 한낮이든 하늘을 올려다 보면 비록 작지만 인간에게 주어진 우주의 지평선이 충분히 크기 때문에 그 무언가 우주 태초의 신호가 끊임없이 우리 눈에 들어오고 있다. 바로 그것을 찾아야 했다.

1960년대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우주배경복사의 빛을 연구했던 로버트 디키.
그 신호를 찾기 위해서 랠프 앨퍼와 로버트 허만은 인간이 알고 있는 물리학을 태초의 우주에 적용해 풀어나갔다. 그들은 태초의 안개를 알게 된다. 일교차가 커지는 계절, 아침에는 강을 따라 흘러가는 듯한 아름다운 안개를 볼 수 있다. 공기 중에 물방울이 밀집되면 빛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안개가 내린 수면을 볼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공기 중의 물방울처럼 태초에는 전자가 우주에 밀집돼 있었다. 빛의 흐름을 방해하는 물방울처럼 이 전자는 빛을 산란시켜 태초의 우주를 안개로 가득 채우게 된다. 빅뱅 초기에 출발한 빛은 이 전자의 안개를 헤쳐나오지 못하고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빅뱅이론은 증명될 수 없는 것인가?

1960년대 프린스턴 대학의 로버트 디키는 빅뱅의 존재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 증거는 바로 안개에 있었다.

빅뱅을 가정하고 이론적으로 계산하게 되면 우주의 안개는 대략 30만 년이 되면 걷히게 된다. 이 안개가 걷힘과 동시에 갇혀있던 빛이 탈출한다. 이 탈출은 우주 전(全) 공간에 걸쳐서 동시 다발적으로 생긴 것이므로, 하늘의 모든 방향에서 같은 태초의 빛이 관측되어야 한다. 디키의 관심은 이 빛의 온도가 당시의 관측기기로 관측 가능한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1 우주 배경복사 탐사 인공위성(COBE).
벨 연구소 안테나로 우주배경복사 관측
우리는 거대한 전자레인지 안에서 살고 있다.

이 우주에서 가장 낮은 절대온도 0도는 섭씨로 영하 273도이다.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최저 온도가 대략 영하 50도 정도라고 하면, 거기서 123도를 더 내려가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는 알 수가 없다. 디키는 태초의 안개에서 탈출한 빛이 인간의 눈에 들어온다면 대략 절대온도 3도가 돼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온도 영역에서 빛은 전자레인지의 파장대인 마이크로 파장대가 된다. 디키의 밤하늘은 이 전자레인지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1960년대는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발전한 라디오 전파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충분히 큰 검출기를 만들 수 있다면 이 온도 영역의 빛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즉 관측이 된다면 빅뱅이론이 맞는 것이고, 관측되지 않는다면 빅뱅은 없었던 것이다. 프린스턴의 연구실은 바빠졌다. 그 누구보다 먼저 이 우주배경복사 빛을 발견하고 싶었던 디키의 마음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2 우주 배경 복사를 발견해낸 미국 벨 연구소의 혼 안테나.
지금도 벨 연구소에 가면 15m 정도 되는 거대한 혼 안테나가 전시되어 있다. 1960년대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이 세운 안테나이다. 그들은 위성과의 교신을 완벽하게 실현하기 위해 이 거대 안테나를 설계했다. 하지만 그들이 기대한 교신에 성공할 수가 없었다. 안테나 검증단계에서 알 수 없는 노이즈가 사방에서 검출돼 구조적인 성능을 의심하게 된 것이다. 좌절에 빠진 그들에게 누군가가 안테나 상단에 쌓여있는 비둘기 배설물을 치워볼 것을 제안했다. 열심히 15m를 올라가서 깨끗이 청소했지만 대략 절대온도 5도 정도의 복사에너지 빛 신호가 감지되는 것을 해결할 수 없었다.

이 사실은 벨 연구소에 보고가 되었고, 안테나 설치 실패에 대한 사유서라도 작성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접한 디키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위대한 발견이 도둑 맞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이 순간 연구에 전념하고 있던 짐 피블스 등 학생들에게 할 수 있었던 말은 “제군들 우리는 도둑맞았네(Boys, we’ve been scooped.)”가 전부였다. 디키와 벨 연구소의 연구자들은 각자의 논문을 ‘천체물리학 저널(ApJ)’에 나란히 게재했다. 하지만 노벨상은 우연히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한 펜지어스와 윌슨에게 돌아갔다.

이 논문이 발표되면서 정상 우주론이 사라지고 빅뱅 우주론이 표준모형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빅뱅 우주론의 시작인 것이다.

검증되지 않은 우주론에 대한 주의 필요
우주배경복사의 발견이 빅뱅 우주론을 옹호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빅뱅의 직접적인 증거로 볼 수는 없다. 우리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태초의 빛은 빅뱅 당시의 빛이 아니고, 빅뱅 30만 년 후의 것이다. 여전히 안개 속에 숨어있는 빅뱅 자체의 모습은 알 수가 없다.

관측으로도 알 수가 없지만 사실 빅뱅이론이라는 것도 없다고 보아야 한다. 빅뱅의 시점까지 과거로 올라가 상상할 수도 없는 에너지가 작은 공간에 밀집되게 되면, 빅뱅을 만나기 전에 시공간이 양자화되는 지점을 통과해야 한다. 만일 빅뱅이 정말 존재했다면 바로 이 시공간이 양자화된 조건에서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시공간이 양자화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양자역학은 고전적인 시공간에서 전자 등의 입자들이 확률적인 현상을 보인다는 것인데, 그런 현상이 기반하고 있는 시공간까지 양자화가 된다면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아직 알 수가 없다. 따라서 빅뱅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도 할 수가 없다. 직접적인 관측 증거가 없고 이론적으로도 설명할 수 없으므로 사실 빅뱅 우주론에서 ‘빅뱅’이 의미하는 것은 ‘알고 있지 못함’으로 보는 것이 옳은 것이다.

인간이 예측하지 못한 현상들이 최근 우주에서 발견이 되면서, 섣불리 표준모형이라는 애매한 문구로 포장된, 아직 검증되지 않은 영역들에 대해 주의할 필요가 생겼다. 확실한 것은, 빅뱅이 실제로 있었는지 혹은 없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우주 나이 30만 년이 되면서 우주 전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태초의 안개가 걷히고 태초의 빛이 방출됐다는 사실뿐이다. 그 빛이 놀랍게도 137억 년 동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여행하다가 내 눈에 들어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우주배경복사 탐사위성(COBE)이 다파장대에서 이 복사에너지의 스펙트럼을 측정했고, 2015년에는 그 정밀성을 높여 정말 완전한 흑체복사인지 관측하고자 하는 제안이 시작되고 있다. 즉,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한 순간에 태초의 안개가 걷힌 것인지 알고자 하는 것이다.

그 안개 속에서는 우주론자들의 상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생명의 기원이 되는 급팽창도 그 안개 속에서 있었던 현상이다. 태초의 폭발보다는 불교의 윤회설과 같은 반복되는 우주론과 단일 우주가 아닌 무한히 많은 다중우주의 존재 등도 제안됐다.

여기까지가 일반에게 알려져 있는 빅뱅 우주론의 진실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우주의 기원을 알기까지는 여전히 먼 여정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알 수 없는 태초의 안개 속에서 우리들의 상상은 무한한 자유가 있다.



송용선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우주 거대구조 연구를 통한 우주 초기조건, 우주 가속팽창 원인 규명. 상대성이론의 우주론적 검증). 미국 UC Davis 박사. 시카고대 선임연구원.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