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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바람 잘 날 없는 그리스

근대 그리스의 역사는 1821년 시작됐다. 오스만 튀르크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봉기했다. 임시정부를 선포한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은 요안니스 안토니오스 카포디스트리아스(1776~1831)다.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베네치아 공화국이 지배하던 그리스 서부 코르푸(그리스어로는 케르키라) 섬 출신이다. 의사였는데 일시 코르푸를 점령한 러시아의 외교관이 돼 장관까지 올랐다.

이런 경력보다 더 독특한 것이 그의 최후다. 불화를 일으킨 또 다른 독립운동가 페트로스 마브로미할리스(1765~1848)를 투옥하자 그의 동생과 아들이 가문의 명예를 지킨다며 초대 대통령을 암살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으로 비잔틴 제국이 무너진 뒤 400년 가까운 튀르크 지배 끝에 처음 들어선 독립정부의 초대원수는 이렇게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다. 뿌리 깊은 분열주의·파당주의·지역주의에 따른 불행이기도 하다.

그 뒤로 외국인 국왕을 맞았는데 불행을 거듭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열강인 영국·프랑스·러시아는 1832년 런던회의에서 그리스 왕국을 세웠다. 당시 독립왕국인 바이에른의 비텔스바흐 왕가 출신인 오톤(1815~1867)을 초대 국왕으로 앉혔다. 미성년자 국왕은 성년이 되자 절대군주로 변했다. 유럽 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은 국민은 반발하며 봉기했다. 마지 못해 1843년 헌법을 승인한 뒤로 열강의 눈치와 국민의 반란 위협 속에서 좌충우돌하다 1862년 폐위당하고 고향으로 망명했다.

열강은 이듬해 덴마크의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요르요스 1세(1845~1913)를 왕으로 보냈다. 줄여서 글뤽스부르크 왕가로 불리는 이 가문은 덴마크·노르웨이·아이슬란드의 왕과 슐레스비히홀스타인 공국의 공작을 배출했지만 그리스인을 다스리는 일은 버겁기만 했다.

요르요스 1세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영토를 넓히는 데 몰두했다. 그 와중에 충돌한 불가리아의 민족주의 비밀결사단에 의해 1913년 암살됐다. 그의 아들인 콘스탄티노스 1세(1868~1923)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둘러싸고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총리와 갈등하며 ‘대국론분열’을 불렀다. 왕당파와 총리파의 격렬한 갈등은 1917년 쿠데타로 끝났다. 국왕은 폐위되고 망명했다. 후임인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애완용 원숭이에 물려 사망하면서 폐위됐던 왕은 국민투표 끝에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1919년 1차대전 뒤 무모하게 터키 중심부로 진격한 ‘그리스-터키 전쟁’에서 패배하자 다시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재차 폐위돼 망명했다. 그리스는 국론 분열에 이어 폐위·망명의 반복으로 얼룩졌다.

후임인 요르요스 2세(1890~1947)도 마찬가지다. 22년 즉위했지만 왕당파 쿠데타가 실패하며 23년 망명했으며 이듬해인 24년 3월 의회투표로 군주제가 폐지됐다. 하지만 35년 쿠데타 직후의 국민투표에서 98%의 찬성으로 복위했다. 하지만 41년 군부 독재자 이오안니스 매타크사스 장군의 눈 밖에 나 망명을 떠나야 했다.

46년 연합군 군정 하에서 실시한 국민투표를 거쳐 귀국했지만 이듬해 4월1일 집무실에서 쓰러져 숨졌다. 상당수 국민은 국왕 서거 소식 1보를 만우절 농담으로 받아들일 정도였다. 국민투표로 들어선 군주제는 권위를 상실하고 74년 국민투표를 거쳐 사라졌다. 군주제의 거친 역사는 그리스식 국민투표를 이해하는 한 방법이다.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큰소리 칠 권한을 부여한 국민투표 말이다.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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