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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10초면 열 손가락 지문 파악 “척 보면 용의자 알아요”

지문 감식 기법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지만 때로는 ‘눈으로 지문을 읽어내는 기술’도 필요하다. 서울 관악경찰서 박재선 경위는 10초면 지문번호를 읽어내고 신분 도용 사실을 밝혀낸다. 경찰 최고의 ‘매의 눈’을 가지고 있다. [최승식 기자]


“만인부동(萬人不同), 종생불변(終生不變).”

17년간 2만여 명 지문 읽어낸 박재선 경위



 모든 사람이 다 다르고, 평생 바뀌지 않는다. 사람의 지문에 대해 얘기할 때 꼭 따라붙는 말이다. 지문은 범죄 수사에서 가장 확실한 무기다.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관계자는 “엄지손가락 지문을 제대로 찍을 경우 선이 이어지거나 끊어지는 일명 ‘특징점’이 120개가 넘는데, 특징점을 12개로만 설정해도 같은 지문이 나올 확률은 1조분의 1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지문 감식은 여전히 가장 빠르고 편리한 신원 확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지문 모양이 불변인 것과 달리 지문 감식 기술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잠적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고도의 지문 감식 기법은 다시 주목을 받았다. 발견 당시 유 전 회장의 시신은 지문 채취가 어려울 만큼 부패했다. 비교적 오래 형태가 유지되는 손가락과 발가락까지도 심한 탈수로 건조된 상태였다. 이처럼 미라화한 시신에서 경찰이 지문을 채취할 수 있었던 건 ‘고온습열처리법’이라는 기법을 통해서였다. 손가락을 100℃ 물에 담가 순간적으로 지문을 팽창시킨 뒤 가까스로 지문 하나를 채취했다는 것이다. 고온습열처리법은 2005년에 처음 시도된 지문 채취 기술이다. 10년 전에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면 유 전 회장의 시신은 신원 미상의 변사체로 남았을 수도 있다.



 지문 분석 기술의 진화로 장기 미제 사건들이 해결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05년 9월 2일 오전 5시30분쯤 부산 동대신동의 한 원룸 3층에 괴한이 침입했다. 괴한은 베란다의 열린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가 집주인 A씨(25·여)를 흉기로 위협했다. 양손을 묶고 성폭행까지 시도했지만 A씨가 저항하자 현금만 빼앗아 그대로 달아났다. 당시 베란다 난간에서 괴한의 ‘쪽지문’(조각 나거나 부분만 남은 지문)이 발견됐지만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 긴 시간 미제로 남아 있던 이 사건은 지난해 4월 경찰청의 지문 재검색을 통해 9년 만에 해결됐다. 2010년과 2012년 두 번에 걸쳐 지문 데이터베이스를 새로 입력하고 검색 프로그램의 성능을 높인 결과 희미한 지문을 남긴 괴한이 김모(33)씨란 걸 확인해 낸 것이다. 경찰은 즉시 연고지를 추적해 김씨를 검거했고 반박할 수 없는 증거 앞에 김씨는 범행을 시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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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청은 2010년 이후 매년 살인·성폭력·강도·절도 등 공소시효가 남은 주요 미제 사건에 대해 지문 재검색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5년간 총 3032개의 사건 관련 지문을 재검색해 1157명의 신원을 새로 확인했다. 덕분에 영구미제로 남을 뻔한 374건을 해결했다. 경찰관들이 “‘지문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속설이 범죄 수사에선 사실”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국내 지문 감식 기술은 여러 나라로 수출된다. 2013년 6월 과테말라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해결한 것도 한국의 지문 감식 기술이었다. 당시 과학수사기법을 교육하기 위해 과테말라에 가 있던 충북경찰청 과학수사계 신강일 경위 등은 현지 과학수사대로부터 한 가지 부탁을 받았다.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깨진 유리조각에 지문이 남았는데 제대로 채취되지 않으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과테말라 수사관은 하얀 분말을 이용한 일반적인 지문 채취뿐 아니라 기체화시킨 본드를 활용해 지문을 채취하는 ‘기체법’까지 시도했지만 제대로 지문이 드러나지 않아 난감해했다. 이에 신 경위는 기체법 적용 후 염색 시약(Basic Yellow)을 활용해 지문이 눈에 보이게 했다. 그 결과 과테말라 경찰은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 신 경위는 “당시 과테말라 수사 당국이 염색 시약을 활용한 채취 방법을 잘 몰라 기법을 전수해줬다”고 말했다.



 지문 감식 기술이 빠르게 발전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눈으로 지문을 읽는 기술’이 큰 힘을 발휘할 때가 많다. 경찰은 지문인식기가 없어도 육안으로 지문을 구분할 수 있도록 모든 지문에 지문 번호를 부여한다. 크게 활모양의 ‘궁상문(弓狀紋)’, 말굽 모양의 ‘제상문(蹄狀紋)’, 소용돌이 모양의 ‘와상문(渦狀紋)’으로 유형화하고 융선의 숫자와 선들이 만나는 지점인 ‘삼각도’의 위치를 통해 각각의 번호를 부여한다.



궁상문은 1번, 제상문은 삼각도 위치와 융선 수에 따라 2~6번, 와상문은 융선 수에 따라 7~9번, 손상된 지문은 0번이다. 손가락이 10개인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10자리의 지문 번호를 가진다. 경찰은 교육과정에서 지문 번호를 읽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종이에 찍힌 지문 모양으로 교육을 받기 때문에 실제 손가락을 보고 지문 번호를 읽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과 경험이 필요하다.



 17년 동안 2만여 명의 지문 번호를 읽어낸 서울 관악경찰서 신림지구대 박재선 경위는 경찰 내에서 ‘눈으로 지문 읽기의 달인’으로 꼽힌다. 박 경위는 독학으로 지문 읽기를 연마했다. 수배자나 용의자가 다른 사람의 주민등록번호를 외우고 다니며 쉽게 수사망을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다. 절차는 간단하다. 신원조회기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면 지문 번호가 뜬다. 이를 실제 손가락 지문과 대조해 신원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확인한다.



 박 경위가 처음 지문 읽기를 수사 현장에서 적용한 건 1998년이다. 당시 박 경위는 서울 신림동 길가에서 팔이 부러진 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남성을 발견했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신분증이 없었다. 대신 이름이 적힌 작은 맥가이버 칼이 나왔다. 최모(당시 24세)씨였다. 박 경위는 최씨의 손가락을 보고 지문 모양에 따른 10자리의 지문 번호를 읽어냈다. 이어 이름과 대강의 연령대를 신원조회기에 입력한 뒤 지문 번호를 대조해 신원을 알아냈다. 최씨는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후 박 경위는 오랜 연습으로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열 손가락 지문 번호를 읽어내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지난 1월에는 자신의 이름밖에 모르는 치매 노인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보고 집에 데려다 줬다. 지난 4월엔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술집에 출입한 미성년자들을 적발했다.



 박 경위는 “치매 환자나 만취한 사람은 빠르게 신원을 확인해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지문을 채취해 신원을 조회하는 데는 2~3시간이 넘게 걸린다”며 “수배자의 경우 지문 채취를 거부하면 현행범이 아닌 이상 강제할 수 없어 눈으로 지문을 읽는 방법이 유용하게 쓰인다”고 말했다.



 그는 일선 경찰을 위한 동영상 교육 자료도 제작했다. 이를 본 동료 경찰들은 “교육을 받고도 응용이 어려워 지문 읽기를 시도하지 못했는데 자료엔 너무 쉽게 설명이 돼 있어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며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윤정민·백민경 기자 yunjm@joongang.co.kr





[S BOX] 동남아 쓰나미 때 전문인력 투입 … 사망자 18명 신원 확인해줘



한국 지문감식의 역사는 67년 전 시작됐다. 1948년 11월 4일 당시 내무부 치안국에 ‘감식과 지문계’가 설치되면서다. 그러나 당시에는 피의자가 있을 경우에만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과 피의자의 지문을 일대일로 대조해 범죄 여부를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55년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분리·신설됐고 63년 치안국 지문계가 ‘감식계’로 확대돼 지문감식 부문이 전문화됐다. 감식계 신설과 함께 지문감식의 활용도 크게 늘었다. 64년에는 ‘일지지문제도’가 제정돼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을 주민등록 지문 데이터와 대조해 피의자의 신분을 특정할 수 있게 됐다. 감식계는 99년 ‘과학수사과’로 개편됐고, 2004년 경찰청 과학수사센터로 조직이 정비된 뒤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지문감식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2004년에는 동남아 쓰나미 현장에 과학수사 인력을 투입해 지문감식으로 18명의 사망자 신원을 확인했다. 이때 도입된 ‘고온습열처리법’(탈수·건조 때문에 지문 채취가 어려운 지문을 섭씨 100도의 물에 담가 순간적으로 지문을 팽창시켜 채취하는 기법)은 세계에서 처음 시도한 기법이다. 2013년부터는 1년에 한 번 바레인과 과테말라 등에 과학수사 전문가를 파견해 지문감식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채취 기법뿐 아니라 지문 데이터베이스 관리·검색 기능도 향상됐다. 2010년 지문검색시스템(AFIS)을 고도화해 미제 사건에 대한 지문 재검색을 시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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