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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10년 하다 늦깎이 메가폰 … 세계서 인정받은 ‘억척’ 아줌마

신수원 감독은 영화를 마라톤에 비유했다. 완성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자신의 선택이기에 앓는 소리를 낼 수 없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곳은 사랑의 불모지대인가.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없는 곳. ‘지금, 여기’ 한국 사회는 매우 어둡다. 이달 초 개봉한 영화 ‘마돈나’에 그려진 세상이다.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20대 여성 미나(권소현)를 중심으로 약육강식·적자생존의 살풍경이 펼쳐진다.

[박정호의 사람 풍경] 충무로 흔든 주부 영화감독 신수원



그래도 영화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알린다. 지난 5월 세계 최고 영화제로 꼽히는 프랑스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다.



 굳이 해외의 평가를 다시 꺼낼 이유는 없다. ‘마돈나’는 감추고 싶은 이 시대의 자화상이다. ‘터미네이터’ ‘연평해전’ 등 화제작 틈바구니에서 자기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청소년 관람불가, 순제작비 4억원의 작은 영화임에도 누적관객 2만 명에 접근하고 있다.



‘마돈나’의 신수원(48) 감독을 지난 6일 만났다. 충무로에서 보기 드문 아줌마 감독이다. 나이 마흔셋에 첫 장편 ‘레인보우’(2010)를 선보인 늦깎이 연출자다. 중학교 교사를 10여 년 하다가 뒤늦게 영화라는 신천지에 진입한 억척이다. 두 번째 장편 ‘명왕성’(2012)으로 베를린영화제 특별언급상을 받는 등 해외에서 먼저 알아본 재주꾼이다. 칸영화제 단편영화상을 받은 ‘순환선’(2012) 등 칸·베를린에서 모두 수상한 한국 여성감독은 그가 유일하다.



택시에서 내리는 그를 단박에 알아봤다. 가벼운 티셔츠에 해진 청바지 차림, 그리고 다소 초탈한 웃음. 영화감독의 ‘포스’가 전해졌다. 그럼에도 꾸미지 않는 말투, 약간은 긴장된 표정, 애써 키운 자식(작품)을 세상에 내보낸 이웃집 엄마를 닮았다.



 - 영화는 이제 관객의 몫이다.



 “막상 극장에 걸고 나니 담담하다. 개봉 당일 혼자 극장에 가서 관객 반응을 살펴봤다. 상영관이 많지 않다. 60여 곳에 불과하다. 멀리서 1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왔다는 사람도 있어 고마웠다. 사실 일반인에게 조금 부담스러운 영화다. 젊은 친구들이 더 힘들어하는 편이다. 심지어 울기도 하더라.”



 - 사창가 등 불편한 대목도 있던데.



 “달콤한 작품이 아니다. 호불호(好不好)가 갈릴 게 분명하다. 영화제 평가는 둘째 치고 이번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대중과의 소통이 뭔지 더 고민하게 됐다. 이창동 감독이 이런 말을 했었다. ‘영화를 찍을 때 항상 관객과 소통을 먼저 생각한다’고. 그 말에 공감이 갔다. 미나를 너무 고통스럽게 만든 건 아닌지, 수위 조절이 필요했던 건 아닌지….”



 - 더 세고 잔혹한 영화도 많다.



 “최소한 피는 나오지 않는다. 토가 나오는 영화는 제 취향이 아니다. 욕망이 들끓는 자본주의의 이면을 들여다봤다. 다크 초콜릿이나 블랙 커피처럼 뒷맛이 쓸 것이다. 세상이 갈수록 암울해지는 느낌이다.”



 - 무슨 의미에서 하는 말인가.



 “2년 전 한 카페에서 ‘마돈나’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20대 초반 여성 노숙자가 들어온 적이 있다. 이번 영화의 모티브가 됐다. 한여름인데 얼굴을 털모자로 가리고 있었다. 머리는 땀과 먼지로 떡이 져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모습에 오만 생각이 들었다. 소시민의 일상이 무너져 내리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지금 40~50대가 클 때는 뭔가 기회가 있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었다. 드라마 ‘미생’에서 그랬듯 요즘 많은 20~30대를 보면 미래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 한국만의 중뿔난 현상이 아니다.



 “알고 있다. 2년 전 겨울 파리에 갔을 때 샹젤리제 거리에서 임신한 상태에서 구걸을 하는 아랍 여성을 만나기도 했다. 그래도 유럽은 우리보다 사회안전망이 튼튼하다. ‘마돈나’를 본 외국 관객들은 ‘판타지 같다’고 했다. 그만큼 비현실적으로 비친 것이다. 언제라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는 편인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영화를 처음 했을 때는 코미디를 하고 싶었다. 자전적 색채의 첫 장편 ‘레인보우’에도 웃음 코드가 많다. ”



 - 영화감독이 되려는 주부 얘기다.



 “어려서는 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림을 제법 그렸다. 미대를 가고 싶었는데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다. 수업료가 싸고, 앞날도 안정적인 사범대(서울대 독어교육과)에 들어갔다. 부전공인 사회과목 교사가 됐다. 지리·세계사·정치경제 등을 가르쳤다.”



 - 왜 갑자기 영화로 방향을 틀었나.



 “200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과정에 입학해 시나리오를 전공했다. 소설을 쓰려고 들어갔는데 영화라는 ‘사각의 프레임’에서 새 세상을 발견했다. 마약은 해본 적은 없지만 뭔가에 확 중독되는 것 같았다. 화가의 꿈이 되살아났다고나 할까. 영화의 가나다도 모르고 시작했는데, 창작의 기쁨에 빠지게 됐다. 조명·미술 등 스태프와 함께 일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 학교 현장에 싫증이 났나. 전작 ‘명왕성’을 보면 입시교육에 대한 비판이 섬뜩할 정도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건 즐거웠다. 다만 영화와 교육,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는 없었다. 학생들에게 미안했다. 마음 따로, 직업 따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 늦기 전에 그만두자’며 2005년 사직서를 냈다. 손이 덜덜 떨렸다. 주위에서도 말렸다. 하지만 아줌마에게도 꿈이 있다. 지금이라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영화판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누가 나 같은 나이 많은 ‘중고 신인’에게 투자하겠나. 젊고 능력 있는 인재가 넘치는데….”



 - ‘엄마는 힘이 세다’고 했다.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만다라’ ‘티켓’ ‘길소뜸’ 등) 선생이 영상원 지도교수였다. 간략한 줄거리를 써가면 ‘누가 이런 데 돈을 대겠느냐’며 질타하셨다. 오기가 생겨 다음 수업시간에 초고 5장을 장편 시나리오로 완성해 제출했다. 그때 ‘독한 년. 신수원, 장하다’고 칭찬하셨다. ‘레인보우’ 시사회 때도 오셔서 ‘독한 년. 신수원, 장하다’고 격려해 주셨다. 그 독기로 버텨온 것 같다.”



 - 오랜 무명생활, 눈치가 보였겠다.



 “남편과 아이 얘기라면 ‘노 코멘트(No comment)’다. 가족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많이 질렸을 거다. 죄를 지은 듯한 느낌이다. 집안일에서 손을 뗀 것도 아닌데…. 지금까지 하루도 노트북을 놓은 적이 없다.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보통 한 작품을 20번 정도 다듬는다. 살림에 보태겠다며 중학교 문제집 만들기, 시나리오 각색 등 이런저런 가욋일도 했다. ‘레인보우’ 제작비 4000만원도 퇴직금과 주위에서 빌린 돈으로 조달했다. 아직도 빚이 조금 남아 있다. 마이너스 통장도 때론 편하더라.”



 - 여성감독이라 처음에 힘들었겠다.



 “촬영 현장은 험한 편이다. 많은 스태프와 소통을 해야 한다. 똑같은 실수를 해도 ‘여자라서 그래’라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일부러 못 들은 척했다. 그래야 통솔이 가능하다. 지금은 편해졌다. 시나리오가 좋다며 ‘명왕성’ 때의 스태프가 기꺼이 동참해줬다.”



 - 주변 여성들에 한마디 남긴다면.



 “오래 전에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여자가 서른이 넘으면 사는 게 아니라 사라지는 것’이라고. 그 말이 너무 슬펐다. 학교를 그만두고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조바심도 컸지만 끈기 하나로 기회를 기다렸다. 인생은 한 번 사는 것이다. 선택이다. 40대면, 50대면 어떤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면 안 된다.”



 - 스타일이 수수하다. 평소 털털하게 지내나.



 “현장에선 편한 게 최고다. 회색 티셔츠를 즐겨 입는다. 삶의 모토가 회색주의자다. 세상의 좋고 나쁜 것, 옳고 그른 것을 두부 자르듯 나눌 수는 없을 테니까. ”



 - 아직도 찾아 나설 ‘레인보우’가 있나.



 “이 바닥에선 내일을 알 수 없다. 투자가 안 되면 끝이다. 임권택 감독처럼 오래오래, 할머니가 될 때까지 찍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다음번에는 좀 더 부드러운 사랑 얘기를 할 계획이다. 해외 촬영도 하고 싶다.”



박정호 문화·스포츠·섹션 에디터

jhlogos@joongang.co.kr





[S BOX] 첫 여성감독 박남옥, 아기 업고 다니며 영화 찍어



여기 한 장의 흑백사진이 있다. 한 어머니가 아이를 포대기에 업고 있다. 한국 첫 여성감독 박남옥(92·사진 위)씨의 모습이다.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박 감독은 아기를 맡길 곳이 없어 직접 아이를 업고 다니며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그가 남긴 ‘미망인’(1955)은 한국전쟁 직후 남편을 잃은 여성들의 열악한 현실을 다뤘다.



 신수원 감독은 4년 전 TV 다큐멘터리 ‘여자만세’를 준비하며 한국 1세대 여성감독을 접하게 됐다. “박 감독님은 스태프들에게 밥까지 해 먹이며 영화를 완성했다고 합니다. 제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과연 영화를 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고 싶습니다. 여성감독으로서 뿌리 찾기라고 할까요.”



 두 번째 여성감독 홍은원(1922~99·사진 아래)씨도 빠뜨릴 수 없다. ‘여판사’(1962), ‘홀어머니’(1964), ‘오해가 남긴 것’(1966) 세 편을 남겼다. 국내 첫 여성판사 황윤석(1929~61)씨의 변사 사건을 다룬 ‘여판사’는 50여 년 전 이 시대 여성의 고민을 보여 준다. 그간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던 필름이 지난 4월 공개됐다. 신 감독은 두 선배 감독과 교류했던 편집기사 김영희(91)씨를 만나기도 했다.



 “김 기사님의 주름살 자체가 한국 영화사였어요. 50~60년대 우리의 얼굴입니다. 그들이 남긴 족적이 그냥 잊혀져서는 안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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