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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국가이익과 국가명예 사이의 대일정책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개선의 기미를 보이던 한·일 관계에 돌발 변수가 생겼다. 발단은 메이지 근대 산업시설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된 영문 문안 ‘forced to work’의 해석 문제다. 우리 정부는 ‘강제노역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반면 일본 정부는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며 맞서고 있다.



 왜 같은 영문 문안을 놓고 이런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 외교적 합의 문안이 다르게 해석되는 경우는 결코 적지 않다. 하지만 일본처럼 이런 해석의 차이가 심하게 나타나는 나라는 드물다. 겉과 속의 의미가 다른 것은 일본 언어의 구조적 특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과의 교섭에서 합의문안을 작성하고 해석하는 데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동안 문제가 되었던 케이스들을 보면 금방 이해가 된다. ‘전사불망(前事不忘), 후사지사(後事之師)라는 한자 문안만 해도 그렇다. 일본은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의 교훈으로 삼겠다’고 해석하고 있다. 최소한의 사죄는 이미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 중국의 입장은 다르다. ‘과거를 잊지 않는다면 미래의 교훈이 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아직 사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8월 15일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일본은 추도와 평화를 위해 참배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패전의 설욕을 다짐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영문 문안의 경우는 그 괴리가 더 심하다. 1969년 11월 19~20일 백악관에서 있었던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과 사토 에이사쿠 일본 총리의 회견이 대표적이다. 닉슨은 오키나와 반환의 대가로 일본 섬유제품의 대미 수출제한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사토는 ‘나의 최선을 다해 해결해 보겠다(do my very best to solve)’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어 문안대로 닉슨은 사토의 최선을 믿었다. 하지만 일본적 의미에서 볼 때 사토의 약속은 ‘노력은 해보겠지만 어떨지 모르겠다’는 정도의 것이었다. 자연 닉슨의 보복이 뒤따랐다. 그는 71년 일본과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중국 방문을 발표하는 동시에 일본 제품에 대해 10%의 세금을 부과하는 ‘더블 쇼크’를 일본에 가했던 것이다.



 굳이 이런 사례를 장황하게 소개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답답하게도 지금 우리 정부가 계속 영문 문안만 보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문 문안만으로는 ‘일본적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 가장 심각한 현안 이슈인 아베 신조 총리의 ‘고노 담화 계승’ 표현만 해도 그렇다. 그는 위안부의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전체적으로(in its entirety) 계승한다’고 말해 왔다. 영문 문안대로 보면 전체를 계승한다는 의미다.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를 계승한다’는 말과 다르다. 계승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뜻이다. 언제든지 뒤통수를 칠 수 있는 표현인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상회담에 냉소적이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금 9월 정상회담 가능성이 시야에 들어오고 있다. 이것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진전이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아베 총리는 4월 방미 중 기자의 질문에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고노 담화를 계승한다. 그것을 수정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그가 상투적으로 사용해 오던 ‘전체적으로’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저명한 재미 정치학자인 김영진 조지워싱턴대 석좌교수는 이것을 고노 담화 ‘전체의 계승’으로 간주하고 관계개선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비슷하다. 그리고 이번의 ‘강제노역’ 해석도 불만스럽기는 하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으니 이제 국익의 관점에서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나서라는 것이다.



 이들의 요구처럼 분명 외교의 목적은 국익의 추구에 있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가 지금처럼 큰 비중을 차지하는 데 대해 회의적일 수 있다. 하지만 외교의 목적은 국가이익의 추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국가와 민족의 명예를 확보하는 것이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1919년 1월, 아직 패전의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던 독일 국민을 향해 막스 베버가 말했다. 유명한 강연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통해 ‘이익의 침해는 허용할 수 있지만 명예의 침해는 결코 허용할 수 없다’고. 국가이익의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국가와 민족의 명예와 존엄을 지키는 것이 정치의 역할인 동시에 외교의 역할이라고 역설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국교정상화 50년. 새로운 전기를 모색하고 있는 한·일 관계다. 국가의 명예와 국가 이익 사이에 어떤 타협점을 모색할 것인가. 박 대통령의 움직임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장달중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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