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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서 자란 그리스 ‘강남 좌파’ … EU 엘리트와 말 통해

“내가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있다는 걸 숨기지 않겠다. 아주 어려운 때 자리를 맡았다.”



새 재무장관에 차칼로토스

 6일(현지시간)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을 대신하게 된 유클리드 차칼로토스 장관의 말이다. 곧 유럽연합(EU)·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채권단 트로이카와 그리스의 명운이 걸린 협상에 나서야 할 이로서의 솔직한 토로다. 하지만 공격적이면서도 현란한 성품의 전임자라면 하지 않았을 법한 얘기이기도 하다.



 화법만 다른 게 아니다. 스타일도 크게 다르다. 좀처럼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4월에서 6월 사이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 실무안을 타결 지었을 때 핵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집중 부각되지 않았다. 영국 가디언이 최근에야 “비밀병기”라고 보도했을 뿐이다.



  경제학자인 제임스 갤브레이스 미국 텍사스대 린든존슨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두 사람을 이렇게 비교했다. 바루파키스 전 장관을 두곤 “그리스 정부는 대단한 비전을 제공했다. (그의 사퇴는) 그리스 정부의 손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차칼로토스 장관의 임명을 두곤 “대단히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온화하게 처신하지만 속내는 단단하다. 누군가 그리스에 수용 가능할 만한 협상안을 가져와야 한다면 그가 분명 가장 탁월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ECB의 집행이사회 멤버였던 파니코스 데메트리아데스 전 키프로스 중앙은행 총재도 “차칼로토스 장관은 온화하고 조용한 성품으로 남의 얘기를 아주 잘 듣는다”며 “꽉 막힌 협상 정국을 풀 적임자”라고 평했다. 바루파키스 전 장관은 유로존 재무장관들에게 긴 강의를 쏟아내곤 했다.



 차칼로토스 장관의 성장 배경은 어찌 보면 유로존 장관들과 닮아 있다. 말 그대로 지배층의 교육과정을 거쳤다. 가디언은 ‘영국 신사’란 표현을 썼다. 1960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출생했는데 해운업 종사자인 아버지를 뒀다. 다섯 살 때 영국으로 이주해 30년을 살았다.



 그 사이 명문 사립인 세인트폴학교를 졸업했다. 영국에선 옥스퍼드·케임브리지대에 가장 많은 학생을 보내는 학교 중 하나다. 그 역시 옥스퍼드대로 진학해서 철학·정치·경제를 전공했다.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과 같은 코스다. 엘리트 중의 엘리트 코스를 거친 셈이다. 이후 영국 서식스대·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했다.



 보수주의자가 될 법한 경로다. 그러나 좌파가 됐다. 독일 나치에 항거했던 그리스 공산주의자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버림받고 극심한 차별을 당한 일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는 좌파 경제학자 중에서도 특히 ‘혁명적 유럽공동시장주의자’로 분류되곤 한다. EU를 지지하지만 자본주의적 원칙엔 반대한다. 동시에 “EU가 핵심과 주변부의 분열을 만들어냈고 둘 사이엔 계급적 차별적 관계를 만들어냈다”는 시각이기도 하다.



 1990년대 스코틀랜드 출신의 경제학자인 부인과 함께 아테네로 옮겼고, 시리자의 모태가 된 시나스피스모스(좌파운동생태주의연합)에 합류했다. 곧 시리자의 경제 브레인이 됐다. 그리스 아테네경제기업대에 이어 아테네대에서 경제학 교수로 지냈다.



 시리자의 한 인사는 “차칼로토스 장관이 (성장 배경 때문에) 귀족처럼 말하곤 하는데 그게 오히려 (협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그네들의 언어를 그네들보다 더 잘한다. 때때로 옆에서 지켜보는 게 즐겁기까지 하다”고 전했다.



 차칼로토스 장관은 스스로는 최근 “막중한 책임을 느껴 점점 잠을 못 이루고 있다”고 한 적이 있다. 이젠 더 불면의 밤일 터다.



아테네=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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