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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때릴 때만 빼면 … ” 그는 “맞을 만하니까”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폭군으로 변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데이트를 하며 꼭 잡고 다니던 그 손으로 당신의 뺨을 때린다면? 대다수 여성은 “뒤돌아볼 것도 없이 헤어지겠다”고 답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남자친구에게 맞으면서도 관계를 유지 중인 여성이 적지 않습니다. 해마다 7000건이 넘는 ‘데이트 폭력’이 벌어지지만 매 맞는 여자친구가 단칼에 헤어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합니다. 데이트 폭력은 왜 반복되는 걸까요. 남자친구에게 맞으면서도 꾹 참아 가며 관계를 지키려는 여성들의 심리는 어떤 걸까요. 청춘리포트가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 4명의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다음은 그들의 목소리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 ‘데이트 폭력’의 심리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fone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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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털어놨다



 대학 4학년 때 만나 4년을 연애했어요. 남자친구는 밖에서 보면 엘리트이고 매너 좋은 남자입니다. 남자친구의 폭력적 성향을 발견한 것은 사귄 지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였습니다. 잠자리에서나 스킨십을 할 때 전에 만난 남자들과는 어땠는지 묻더군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거짓말하지 말라”며 욕을 했습니다. “뭘 숨기는 거냐. 이 걸레 같은 XX”고 소리를 지르더니 휴대전화를 집어던졌습니다. 그러고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제 머리를 때리더군요.



 맞는 순간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화가 풀린 남자친구가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며 싹싹 빌더군요. “너를 너무 사랑해서 나도 모르게 욱했다”고 말하는 남자친구를 보고 마음이 누그러졌습니다.



 그러나 한번 시작된 폭력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길거리에서도 차 안에서도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느끼면 바로 주먹이 날아옵니다. 그러고는 “네가 날 짜증 나게 하지만 않으면 싸울 일이 없다”고 폭력을 합리화했습니다. 한번은 저 모르게 섹스 동영상을 찍어놓고 제가 지우라고 하자 “사랑하는데 뭐가 문제냐. 그럼 내가 야동을 보며 자위 했으면 좋겠느냐”고 오히려 더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 사람을 쉽게 떠나지 못했습니다. 상처가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와 그에게 자주 손찌검을 했다고 합니다. 제가 그 상처를 품어주면 그도 콤플레스나 폭력적 성향에서 해방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때릴 때만 빼면 참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남자친구는 때린 뒤엔 미안하다며 싹싹 빌고, 때렸다는 사실을 후회했고 더 잘하겠다고 다짐하곤 했습니다. 요즘엔 때리는 횟수가 줄어든 것 같기도 한데…. 이 사람과 관계를 정리해야 할까요.



그가 대답했다



 폭력이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쓰는 게 이해가 안 됩니다. 저는 화가 나도 소리를 지르거나 벽을 치는 게 전부입니다. 정말 분노가 제어 안 될 때 몇 번 때리긴 했지만 주로 머리를 쥐어박거나 가볍게 허리를 쿡쿡 찌르는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주로 다퉜던 때는 여자친구가 종종 제 제안을 거절하고 피곤하다며 짜증을 낼 때로 기억합니다. 한번은 “걷기도 싫고 쉬고 싶다”고 하길래 모텔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했고 성관계를 가지려 했는데 자꾸 칭얼대며 빼더라고요. “피곤하다고 했잖아”라고 소리를 빽 지르더군요. 사람을 갖고 노는 것도 아니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결국 본인도 좋아할 거면서요. 그녀는 “싫은데 강요하는 건 성폭행”이라고 했지만 성폭행이라는 말은 가당치도 않습니다. 우리는 평소에 성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누고 속궁합도 잘 맞습니다.



 여자친구가 저를 화나게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때릴 일도 없었을 겁니다. 앞으로도 여자친구가 자극만 하지 않는다면 제가 폭력을 쓰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예쁘고 애교 많은 여자친구를 정말 사랑하니까요.





전문가들은 말한다



 지난 5년간 데이트 폭력으로 사망한 사람은 290명입니다. 연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행이나 상해, 강간 횟수는 매년 7000여 건으로 하루 평균 20건씩 데이트 폭력이 발생하는 셈이죠. 데이트 폭력의 가장 큰 원인은 성차별적 사고입니다. 남성은 적극적이고 주도적이어야 하고 여성은 순종적이고 이해심이 많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경우 가해자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사랑의 매’ 같이 폭력이 만연한 사회 분위기도 원인입니다. 피해자조차도 “사랑하는 관계에서 생긴 다툼” 정도로 생각하기 쉽죠. 폭력 사실을 털어놓으면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라는 걱정, 가해자가 복수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영향을 줍니다.



 또 정서적·심리적·신체적 친밀감을 쌓아온 연인 관계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한두 번의 폭력으로 가해자를 쉽게 떠나지 않습니다. 또 많은 피해자가 “상대가 나를 때리긴 해도 평소에는 이렇게 좋은 사람이 없다”고 착각합니다. 그의 치부를 건들지만 않으면, 내가 좀 더 잘하면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채윤경 기자, 배지원 인턴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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