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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향 번지는 런웨이, 미술관으로 들어오다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 4층에 설치한 작품 ‘민트 연구소’ 앞의 헨릭 빕스코브. “사물을 투영하는 것,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패션과 예술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전시장으로 키 196㎝ 거인이 들어왔다. “15∼17세에 집중적으로 컸지요. 패션 디자인에 미친 영향이요? 글쎄요, 그래서 늘 길쭉한 걸 만드는 걸까요.”

덴마크 전방위 예술가 빕스코브



 덴마크 출신 전방위 예술가 헨릭 빕스코브(43)를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만났다. 9일부터 12월 31일까지 ‘헨릭 빕스코브-패션과 예술, 경계를 허무는 아티스트’ 전을 연다. 그는 파리 패션위크에서 매년 컬렉션을 발표하는 유일한 북유럽 패션 디자이너이자 뉴욕 현대미술관 PS1, 파리 팔레드도쿄, 헬싱키 디자인뮤지엄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를 연 아티스트다. 유럽 일렉트로닉 밴드 ‘트렌트모러’의 드러머이기도 하다.



 미술관에 런웨이를 옮겨왔다. 전시장 3층엔 홍학떼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검은 천으로 만든 이 홍학 머리 설치는 빕스코브의 2013년 패션쇼 무대다. 빕스코브는 “죽음이 반드시 비극적이어야 하는가” 의문을 갖고 여러 문화권의 죽음에 대한 태도를 조사하던 중 남미 과테말라 사람들에게는 색색의 연을 띄워 망자와 소통하는 풍습이 있음을 알게 됐다. 도살장에서 죽어가는 닭, 과테말라의 연 이미지를 결합한 조형물 ‘뻣뻣한 목의 방’은 이렇게 나왔다.



마지막 작품은 민트색 막대 풍선들로 뒤덮인 방이다. 방에선 연기와 함께 민트향이 분사된다. 2008년 패션쇼 무대로 당시 현장에서는 민트 맛과 색의 보드카를 나눠줬다. 전방위 예술가의 공감각적 무대다.



 시작은 음악이었다. 10대부터 밴드를 했다. 악동도 장난꾸러기도 아니었다. 부모, 열 살도 더 위 누나 둘과 사는 막둥이였다. 고교 때 가장 좋아한 과목은 음악과 수학. “창의적 사람들이 수학과 거리가 멀 거라 여길 수도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내 브랜드를 경영하는 일도 수학과 만나며, 옷을 만들기 위해 사람의 몸을 들여다보는 일은 기하학과 만난다.” 세계적 패션 스쿨인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 진학한 것을 ‘우연’이라고 그는 말한다. “북유럽엔 고교 졸업 후 6개월 가량 진로를 탐색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때 유치원에서 일하거나 여행을 다니기도 한다. 건축·그래픽을 배우고 싶었지만 정원이 다 차서 연극·디자인을 택했다. 그 후 여자친구가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 진학한다고 해서, 쿨하게 보이고 싶어 따라갔다.” 우연히 흘러간 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졸업 작품이 덴마크 국영방송에 중계됐다. 그는 “요즘은 그 6개월 프로그램이 많이 없어졌다. 20년 전과는 달리 요즘 세대들은 좀 더 목표 지향적이다. 다른 걸 둘러보지 않고 커리어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 에둘러 갔다지만, 거기서 성공했다.



 “돈을 얼마를 벌까보다는 뭘 하는 게 좋을까를 생각했다.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공통점은 취미가 삶이 됐다는 거다. 그래서 힘들게 일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든다. 지금도 문제는 늘 있으며, 갈수록 커진다. 그러나 예산이 많다고 최고의 프로젝트가 탄생하는 건 아니다. 가령 저예산의 뮤직비디오라 해도 스토리가 사람들의 마음에 닿았을 때,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을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



 - 창의성이란 뭘까.



 “창의적이라는 것은, 뭔가에 매혹된 거다. 어떤 일에 열정을 갖고, 그걸 계속해서 추진해 나가고 싶은 마음,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얘기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글=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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