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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희의 시시각각]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계시니 …

양선희
논설위원
때론 어떤 사안에서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데에 해답이 숨어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뜬금없지만 지금 열리고 있는 ‘최저임금 인상안’ 협상을 보면서 ‘지대(地代) 문제’를 생각한 게 이런 의문 중 하나다. 생산의 3요소는 노동·자본·토지이고, 여기에서 임금·이윤·지대 형태로 소득이 발생한다. 물론 최저임금 인상안은 노동과 자본 간의 협상으로 여기에 지대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내가 ‘지대’에 꽂힌 이유는 있다.



 시간당 8400원. 노동계가 요구한 최저 노동 가치는 서글픈 수준이다. 이것도 못 주겠다는 사용자 측이 지나치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한데 최저임금은 대기업 생산현장에선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임금 수준이 최저임금을 웃돌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첨예한 건 영세한 소상공인들이다. 이번 협상 과정 중 소상공인 및 자영업 단체들은 ‘최저임금 동결’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냈고,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최저임금을 크게 올리면 영세기업이나 자영업자의 도산이 속출한다”고 했다. 한데 사업주들에겐 왜 시급 8400원도 버거운 것일까. 모든 이유는 아니겠지만 하나의 큰 이유는 이런 게 아닐까.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 한 홍익대 앞 카페 주인은 카페를 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단다. “안 벌어도 먹고살 게 있으면 해라.” 지난해 상수동에 카페를 연 지인은 “그사이 주변 임대료가 두 배로 올라 다음 계약 갱신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요즘 같으면 임대료 내고 아르바이트생 임금 챙겨주면 끝이라고 했다. ‘건물주의 노예 같다’는 한탄도 나온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요새 이 말은 상권이 활성화되면 임대료가 치솟아 대형 자본이 들어오고 원주민들은 외곽으로 밀려나는 현상을 뜻한다. 젊은 예술가들이 활성화한 홍익대 앞과 가로수길에서 밀려나 골목으로 들어가 홍익대옆·세로수길을 만들고, 여기서도 또 밀려나 상수·합정·성수동 등지로 가고, 이젠 여기서도 밀려나고 있는 건 모두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 때문이다. 보기엔 꽤 잘되는 것 같은데도 월급쟁이보다 더 적게 번다는 한 사장님은 “권리금이라도 두둑이 챙기기 위해 버틴다”고 했다. 노동의 가치는 부동산이 창출하는 가치에 깔려 숨을 못 쉰다.



 “기술 진보로 생산력이 증가해도 여전히 빈곤한 진정한 원인은 생산엔 보탬이 안 되는 지주(地主)가 지대를 차지하는 것을 합법화한 토지사유제 때문이다.” 19세기 정치경제학자 헨리 조지의 일갈은 지금도 유효하다. 한데 요즘 전형적 불로소득인 지대에 대한 문제의식은 희박하다. 높은 임대료를 받는 건물주들은 선망의 대상이고, 양재동 5층짜리 건물에서 월 3000만원 정도 임대료를 받는다는 한 방송인은 ‘착한 임대료’ 의인으로 미화된다. 이미 지대에 따른 불로소득은 성공한 투자,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인식이 만연하다.



 미국 뉴욕시는 아파트 100만 채에 대해 올 임대료 인상을 동결했다. 1969년부터 서민주거안정을 위해 뉴욕시가 직접 월세를 결정하는 ‘임대료안정화’ 아파트다. 물론 주거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통제정책이지만 임대료에 지방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임대료는 현대인의 삶을 핍박하는 주요인이다.



 그렇다고 지금 소상공인 임대료에 개입할 적당한 방법은 없다. 하지만 종업원에게 현재 최저시급보다 2820원 더 올려주는 것도 버거운 사업주들이 건물주 먹여살리느라 등골이 휘고, 노동자는 8400원에 절규하고, 월 3000만원 임대료는 의인으로 칭송받는 건 이상하지 않나. 헨리 조지는 토지사유제 국가에선 ‘지대조세제’로 정부가 지대를 환수해 사회가 공유하라고 권유했다. 물론 토지의 활용에 공공성을 부여하는 정책을 실현하려면 복잡하고 저항이 많을 거다. 한데 조지의 말에 따르면 이런 개혁이 더 고상한 문명으로 나갈 수 있게 해준단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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