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한국 대기업, 헤지펀드 막을 막강 방패 없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에 제동을 걸고 나선 데 이어, 헤르메스·메이슨캐피털 등이 삼성 계열사 지분을 잇따라 매입하면서 이른바 ‘행동주의 헤지펀드’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지배구조 개편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대주주 지분율을 비집고 들어오는 식의 헤지펀드 공습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포이즌필·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보호 장치 부족
"국민연금이 지원 나서야"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7일 헤지펀드리서치 등에 따르면 주식을 대거 매수한 뒤 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이하 행동주의)의 운용자산 규모는 2009년 362억 달러에서 지난해(3분기 기준) 1121억 달러로 급격히 불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저금리·저성장 국면에서 수익률을 높이는 데 한계를 느낀 행동주의들이 주가가 저평가돼 있는 한국 시장으로 최근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국내 기업은 실적이 괜찮은 데다, 대주주 지분이 낮고 경영권 보호 장치가 부족해 ‘먹잇감’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행동주의는 지배구조 개선 및 주주가치 제고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사실은 ‘포퓰리즘’을 악용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게 목적이다. 국내에선 2003년 SK그룹을 공격해 9000억원대의 차익을 올린 소버린, 2006년 KT&G를 압박해 1200억원의 차익을 낸 칼 아이컨 등이 그랬다. 해외에서도 오아시스·서드포인트·P숀펠드에셋매니지먼트 등이 교세라·소니·비방디 같은 기업들을 쥐고 흔들었다. 행동주의 가운데서도 가장 무자비하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 엘리엇이다. 오언스코닝 사례가 대표적이다. 2005년 미국의 석면 회사 오언스코닝은 일부 직원들이 석면 흡입으로 사망하면서 막대한 피해보상금을 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엘리엇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회사를 사들인 이후 피해보상금을 대폭 깎는 식으로 회사가치를 올린 뒤 회사를 매각해 10억 달러에 이르는 이윤을 챙겼다.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인 LK투자파트너스의 강성부 대표는 “만일 주주총회에서 삼성이 승리한다면 엘리엇은 주총결의 무효 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이후에도 회계장부 열람, 감사인 선임 등을 요구하며 삼성을 물고 늘어질 것”이라며 “경영진의 과오를 지적하거나, 숨겨진 기업가치를 부각시키는 식으로 계속 이슈를 만들어내면서 여론전을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행동주의의 더 큰 문제는 장기적인 기업가치보다는 단기간에 주가를 띄우는 데 주력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투자와 고용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퀘벡대 이반 알레어 교수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2010년 미국에서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은 115개 기업은 고용이 21.4% 줄었고 연구개발(R&D) 비중은 17.3%(2009년)에서 8.1%(2013년)로 감소했다.



 실제 지난해 엘리엇이 개입한 미국 주니퍼네트웍스는 엘리엇의 요구에 따라 인력을 6% 줄였고, 엘리엇이 2013년 지분을 사들인 넷앱도 15%를 감원했다. 국내에서도 2004년 SK가 소버린의 경영권 위협에 대응하면서 설비 투자가 전년 대비 56%나 감소하기도 했다. 행동주의의 공격이 제도적인 경영권 방어 장치가 취약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경영 안정을 위해 미국·유럽·일본 등에서는 포이즌필·차등의결권·황금주 등을 시행하고 있으나, 한국은 이를 도입하지 않았다.



 예컨대 구글은 2004년 상장을 하면서 1주당 1개 의결권이 있는 ‘Class A’ 주식과 1주당 10개의 의결권을 인정하는 ‘Class B’ 주식을 발행했다. 구글 경영진은 Class B 주식의 92.5%를 보유하면서 구글 의결권의 60.1%를 행사하고 있다. 구글이 10년 만에 시가총액이 4000억 달러까지 거의 20배로 늘어날 수 있던 배경 중 하나가 이런 제도 도입을 통한 경영권 안정화였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필요성은 컸지만, 재벌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과 지배주주 경영권 남용이라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보니 경영권 방어 장치가 도입되질 못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안전 장치가 없는 국내 기업들이 그나마 기댈 곳이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상장사는 166곳에 이른다. 명지대 경제학과 조동근 교수는 “이제 국민연금은 국익의 관점에서 국부가 밖으로 새 나가는 것을 막고, 투기 세력의 공격을 무산시키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며 “엘리엇의 의도대로 된다면 다른 투기 자본에 안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수석부장 김용대)는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KCC를 상대로 낸 ‘주식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이 관련 법령에서 정한 요건과 절차를 준수해 진행되고 있다”며 “삼성물산과 그 주주의 이익에 반한다고 볼 수 없으며, 자사주를 매각한 것은 합리적인 경영 결정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엘리엇은 이에 항고 방침을 밝혔다.



손해용·백민정·임지수 기자 sohn.yong@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