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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음식] 빙수, 사르르 걱정 녹이는 달콤한 눈꽃 한입

영화 ‘안경’ 중에서





더 플라자 호텔(더 라운지)의 송현주 셰프가 만든 팥빙수. 곱게 간 우유 얼음 위에 팥·쑥떡·콩가루·유자를 올렸다. 유자는 팥의 텁텁한 맛을 잡아준다. [김경록 기자]




江南通新이 ‘이야기가 있는 음식’을 연재합니다.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해 사람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요리와 이 요리의 역사, 얽힌 이야기 등을 소개합니다. 이번 주는 영화 ‘안경’의 빙수입니다.



푸른 파도와 하얀 모래사장이 있는 바다는 여름 최고의 휴가지입니다. 빙수는 여름철 국민 간식이죠. 바다와 빙수, 생각만으로도 시원해지는 두 가지를 모두 만날 수 있는 영화가 바로 일본 영화 ‘안경’입니다. 조용한 바닷가 마을과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빙수 한 그릇의 맛을 영화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바닷가 마을로 여행 다녀온 듯한 착각마저 듭니다.





남쪽의 작은 바닷가 마을, 사쿠라는 매년 봄마다 마을을 찾아 팥빙수를 만든다. 마을 사람들에겐 바다를 바라보며 사쿠라의 팥빙수를 먹으며 사색에 빠진다. 평소 팥빙수를 좋아하지는 않는 타에코(왼쪽에서 두번째)는 사쿠라의 팥빙수를 먹으며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1 대학교수인 타에코는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곳을 찾아 작은 바닷가 마을로 간다. 독특해 보이는 마을 사람들은 타에코에게 “마을에서 할 수 있는 건 사색뿐이다”라고 조언한다. 타에코가 민박집 주인 유지에게 사색하는 법을 묻자 그는 “사쿠라의 빙수를 먹어보라”고 조언한다. 사쿠라가 빙수를 파는 바닷가로 향한 타에코는 자신을 찾아온 제자 요모기, 마을 학교의 생물 선생님 하루나, 민박집 주인 유지와 함께 사쿠라의 빙수를 먹으며 사색에 빠진다.



타에코: 사색하는데 무슨 요령이라도 있나요?

유지: 요령이라. 예를 들면 옛 추억을 그리워한다든지, 누군가를 곰곰이 떠올려 본다든지.

타에코: 그런 건가요?

유지: 그런 겁니다.

타에코: 그럼 유지씨도 누군가를 곰곰이 생각하곤 하는 건가요?

유지: 저는 그런…. 전 그냥…. 그저 여기서 차분히 기다릴 뿐입니다.

타에코: 뭘요?

유지: 흘러가 버리는 것을요. 하지만 그때 그 빙수를 만나지 못했다면 저도, 코지도 아마 이곳에 없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코지는 중요한 건 뭐든지 챙겨두는 버릇이 있어요. 근데 무엇을 갖고 있는지 잊어버리는 거 같아요. 그것이 코지의 장점입니다.

타에코: 그래요?

유지: 먹어 보면 좋을 겁니다. 사쿠라씨의 빙수요.



(바닷가에 나간 타에코는 어른 2명과 어린 소녀가 빙수 먹는 모습을 한참 바라본다. 사람들은 빙수를 만든 사쿠라에게 빈 그릇을 돌려주며 고맙다고 말한다. 세 사람이 모두 자리를 떠난 후 사쿠라는 자신을 바라보던 타에코를 발견한다.)



사쿠라: 얼음 있습니다.

타에코: 부탁드리겠습니다.

요모기: (동시에)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벤치에 앉아 사쿠라의 빙수를 기다린다.

사쿠라: 자, 여기.

타에코·요모기: 잘 먹겠습니다. (빙수를 한입 맛본 타에코는 한참 생각한 후 다시 빙수를 먹기 시작한다.)

하루나: (빙수 먹는 타에코와 요모기를 발견하고) 귀여운 남자가 없으면 살아갈 의미가 없지.

타에코: 학교는 괜찮아요?

하루나: 괜찮아요. 쉬는 시간이에요. 아무리 성실히 한다 해도 휴식은 필요해요. 맞죠?

타에코: 그렇고 말고요.

(모두 사쿠라가 만든 빙수를 먹는다.)

요모기: 인생 최고의 빙수였습니다.

타에코: 이거 얼마죠? (사쿠라·유지·하루나가 타에코를 이상하게 바라본다) 빙수요.

사쿠라: 좀 전의 얼음가게 아저씨한테 얼음을 받았습니다.

타에코: 빙수값으로?

사쿠라: 네.

타에코: 아까의 소녀는? (사쿠라는 돼지 모양 쪽지를 보여준다) 빙수값으로? (사쿠라가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군요. 저는 어떻게?

요모기: 하루나씨는 뭘로?

하루나: 저와 유지씨는 만돌린.

요모기: 만돌린?

(유지와 하루나는 만돌린을 연주하고 세 사람은 연주를 들으며 사색에 빠진다.)





90년대 딸기, 2000년대 생과일 인기…올해 팥이 대세

백화점 간 ‘빙수 전쟁’ 벌일 정도로 여름철 대표 간식

최근엔 대패 삼겹살처럼 둥글게 말린 ‘대패 얼음’ 유행






영화 ‘안경’에서 사쿠라가 만든 빙수. 그릇에 팥을 먼저 담고 위에 얼음을 갈아 올린 후 시럽을 뿌린다.
영화 ‘안경’은 남쪽의 조그만 바닷가 마을로 여행 온 타에코가 처음에 ‘이상하다’ 생각했던 마을 사람들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따라 전개된다. 타에코는 마을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사쿠라는 매일 아침 방까지 찾아와 아침 인사를 하고 마을 사람들은 바닷가에 모여 함께 아침 체조를 한다. ‘관광할 곳이 없느냐’는 타에코의 질문에 사람들은 입을 모아 “동네에서 할 수 있는 건 사색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타에코는 조금씩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함께 밥을 먹고 바닷가에 앉아 뜨개질하며 사색을 즐긴다.



 영화에는 지라시스시, 바닷가재찜, 매실장아찌, 쇠고기·채소구이, 맥주 등 다양한 요리들이 나온다. 이 중 영화 속 최고의 요리는 빙수다. 매년 봄 마을을 찾아오는 사쿠라가 바닷가 앞에서 만들어 주는 빙수는 투명한 그릇에 팥을 듬뿍 담은 후 얼음을 갈아 수북하게 쌓고 그 위에 시럽을 부으면 끝이다. 과일 한 점 없는 소박한 모양새의 빙수지만 영화 속 사람들에겐 힐링 푸드다. 빙수를 한입 먹는 순간 잡념은 사라지고 사색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타에코를 찾아 마을에 온 제자 요모기는 “인생 최고의 빙수였다”고 말한다.



 빙수는 한국에서도 여름철 대표 간식으로 꼽힌다. 외식업계가 전망하는 올해 팥빙수 시장 규모는 최소 1500억원이다. 인기 있는 빙수 전문점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선다. 빙수의 인기는 백화점 간 경쟁에서도 엿볼 수 있다. 콧대 높기로 유명한 백화점은 저마다 유명 빙수 브랜드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현대·롯데·신세계 백화점은 각각 유명 빙수 브랜드인 ‘밀탑’ ‘동빙고’ ‘팥고당’을 입점시켰다. 이 중 선두주자는 현대백화점이다. 압구정 현대백화점 본점은 1985년 문을 열 때부터 밀탑을 입점시켰는데 대기표를 받고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쇼핑하러 왔다 잠시 들러 빙수를 먹는 게 아니라, 빙수를 먹기 위해 백화점에 왔다가 쇼핑을 하게 됐다.



 빙수는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90년대엔 딸기빙수를 찾는 사람들로 숙명여대 앞 ‘와플하우스’가 붐볐고 2000년대엔 압구정·청담동을 중심으로 녹차빙수나 생과일빙수를 파는 카페에 사람들이 몰렸다. 매년 다른 재료의 빙수가 등장하며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올해는 팥빙수가 대세다. 2012년부터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팥빙수는 얼음(또는 우유 얼음)과 팥, 떡만 들어간 그야말로 옛날식 빙수다. 기호에 따라 연유나 미숫가루 정도를 더하긴 하지만 기본 재료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한 호텔 관계자는 “매년 새로운 재료를 올린 빙수가 나와도 역시 제일 잘 팔리는 건 팥빙수”라고 말했다.



 팥빙수의 맛은 팥이 좌우한다. 영화에서도 사쿠라가 빙수를 만들 때 가장 신경 쓰는 재료가 팥이다. 그는 팥을 만들며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운 여름, 뜨거운 불 위에서 한참을 졸여 만들어야 하는 만큼 정성은 기본이다. 더 플라자 호텔 더 라운지의 송현주 셰프는 “팥은 처음 끓인 물은 버리고 다시 끓여야 하는데 이때 팥이 잠길 정도의 물을 넣고 졸인다. 팥과 설탕의 비율은 2대 1이 적당하다”고 설명했다.



 얼음도 다양해졌다. 영화에서는 물을 얼린 일반 얼음을 갈아 쓰지만, 몇 년 전부터 빙수 전문점은 대부분 우유 얼음과 눈꽃 얼음을 사용한다. 우유 얼음은 우유를 얼린 얼음이다. 우유 특유의 고소한 맛이 나는 데다 갈았을 때 식감이 더 부드럽다. 그러나 우유를 얼릴 때 어는 점을 잘못 맞추면 우유층과 수분층이 분리돼 우유 특유의 고소한 맛과 단맛이 나지 않는다. 눈꽃 얼음은 입에 넣으면 사르륵 녹을 만큼 얼음이 곱게 갈리는 빙삭기를 사용한다. 설겅설겅 씹히지 않고 부드럽게 녹아 어떤 재료와도 조화를 이룬다.



 최근엔 대패 얼음이 유행이다. 대패 삼겹살처럼 얼음이 얇게 밀려나오면서 둥글게 말려드는데 공기층이 넓게 형성돼 잘 녹지 않는다. 덕분에 풍성한 빙수의 형태가 오래 유지되고 입안에서도 부드럽게 녹는다. 송 셰프는 “대패 얼음은 공기층이 있어서 얼음 위에 연유나 우유 등을 부으면 쉽게 가라앉는다. 얼음을 얼릴 때 연유 등을 함께 넣고 얼려 사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빙수를 집에서 만들고 싶다면 우유를 얼려 사용하면 간편하다. 얼린 우유를 믹서기에 넣고 갈거나 칼로 으깨주면 된다. 송 셰프는 “우유를 얼릴 때는 20시간 정도가 적당하다”고 조언했다. 팥빙수에는 특별한 고명이 필요하지 않지만 기호에 따라 콩가루·미숫가루·시리얼 등을 올리면 고소한 맛을 더할 수 있다. 콩가루 중엔 검은콩가루가 더 고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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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이야기



“너 이제 팥 잘 먹네” 그럼요 엄마 딸이니까




어린 시절, 저는 엄마와 일주일에 한 번씩 꼭 동네 목욕탕에 갔습니다. 여름엔 덥고 습한 목욕탕이 싫었지만 참고 가는 데는 이유가 있었죠. 바로 팥빙수였습니다. 목욕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 엄마는 제 손을 잡고 골목에 있는 작은 가게에 가서 팥빙수를 사주셨어요. 한 그릇을 시켜 나눠 먹었습니다. 설겅설겅 씹히는 얼음 위에 팥, 연유, 통조림에 들어있는 과일들, 젤리가 올려져 있는 옛날 팥빙수였죠. 열 살이었던 전 팥이 싫어서 얼음과 과일만 골라 먹었고 팥은 엄마 쪽으로 밀어냈어요. 팥을 좋아하는 엄마는 남은 팥을 다 드셨고요. 그렇게 30년의 세월이 흘렀고 얼마 전 엄마랑 유행이라는 팥빙수 집에 갔습니다. 한 그릇을 시켜 나눠 먹는데 제가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머니가 “너 이제 팥 잘 먹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30년 전 엄마보다 더 나이가 든 저는 입맛까지 엄마를 똑 닮았습니다. 올여름도 엄마랑 손잡고 팥빙수 먹으러 가야겠어요. 서정원(41·서초동)






▶서울의 빙수 맛집



서울에서 유명한 빙수 맛집 3곳을 소개합니다. 레스토랑 가이드북 『다이어리알』의 이윤화 대표, 허성구 더 플라자 총주방장, 김천식 롯데호텔서울 조리장의 추천을 받아 중복되는 3곳을 추렸습니다.





밀탑



“1985년 문 연 원조 팥빙수 집

줄서서 기다린 보람이 있다”




○ 특징: 85년 압구정 현대백화점 오픈 때부터 있던 원조 팥빙수 집이다. 대표 메뉴는 밀크빙수. 물에 우유를 혼합한 얼음을 곱게 갈아낸 눈꽃 얼음에 우유와 연유를 섞은 소스를 붓고 그 위에 팥과 찰떡을 얹는다. 팥과 떡은 리필이 가능하다. 현대백화점 본점·무역센터점·킨텍스점 등 11개 지점에 있다.

○ 가격: 밀크빙수·녹차빙수 8000원

○ 영업시간: 오전 10시30분~오후 9시30분

○ 전화번호: 02-547-6800

○ 주소: 강남구 압구정로 165(압구정동 429)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5층

○ 주차: 백화점 주차장





합(合)



“유자 향이 팥의 텁텁함을 잡아준다

프랑스 유학파 출신 셰프가 떡을 빚는다”




○ 특징: 대표 메뉴는 유자팥빙수. 깔끔한 유자의 향과 맛이 오래도록 입안에 남는다. 또 다른 맛의 비결은 부드러운 떡이다. 팥빙수를 다 먹을 때까지 부드러움이 유지된다. 프랑스 에콜 르노트르에서 유학한 신용일 오너 셰프가 직접 빚어 만든다.

○ 가격: 유자팥빙수 1만5000원

○ 영업시간: 낮 12시~오후 7시30분(일요일 휴무)

○ 전화번호: 070-7532-4819

○ 주소: 강남구 도산대로61길 10(청담동 93-3) 라임빌딩 2층

○ 주차: 발레파킹(3000원)





동빙고



“팥이 달지 않아 누구나 좋아한다

당일 만든 쫄깃한 찰떡만 사용한다”




○ 특징: 직접 삶은 국내산 팥과 당일 방앗간에서 만든 쫄깃한 찰떡을 올린 팥빙수가 가장 인기다. 팥은 달지 않아 단맛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명동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6층에도 지점이 있다.

○ 가격: 팥빙수 6500원, 로얄밀크티빙수 7000원

○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11시

○ 전화번호: 02-794-7171

○ 주소: 용산구 이촌로 319(이촌동 301-162) 1층

○ 주차: 상가 앞(무료)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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