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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수집 물건

[레몬트리]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하면서 쓰고, 쓰면서 여행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여행은 예술가로서 가장 풍성한 자양분을 섭취하는 여정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만난 3명의 여행자도 여행을 통해 배움과 영감, 그리고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고 말한다. 이들이 특별한 시간을 보낸 여행지와 그곳에서 들고 온 스토리가 있는 물건에 대해 들었다.



01 농사짓는 건축가 최시영의 영국 가든 투어

“‘무당벌레 집’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이번에 오면 제가 한번 보여드리지요.” 인터뷰를 앞두고, 건축가 최시영 씨와의 통화에서 그는 여행지에서 사온 물건으로 무당벌레 집을 소개했다. 전화상으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독특한 이 물건은 진짜 무당벌레가 사는 나무로 만든 집으로, 유럽에서는 가드닝 물품을 파는 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단다.

“요즘 경기도 광주에 있는 밭에서 농사를 짓느라 정신없이 바빠요. 매실, 블루베리, 고구마, 토마토, 고추, 수박 등을 심어놓았지요. ‘농사짓고 밭 가꾸는 디자이너 최시영’, 명함도 이렇게 바꿀 생각이에요.”

그가 농사를 짓게 된 것은 영국의 가든 문화에 매료된 이후부터. 처음에는 일본의 시골 마을에서 열리는 랜딩 아트 현장을 보고 대지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 2백여 명이 논과 밭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모습이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한다. 그 후로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등 각국의 가든을 돌아보고, 그곳의 마켓에서 농기구를 사오는 것이 그의 새로운 여행 루트가 되었다.

“예전엔 저도 뮤지엄에 가서 소품이나 의자를 사고, 그 나라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물건을 사왔어요. 하지만 요즘은 영국 농부들이 신는 멋진 장화와 장갑, 과일을 쉽게 따는 도구, 무당벌레 집같이 가드닝과 관련된 것들을 사오고 있습니다.”

그가 보여준 무당벌레 집은 크기와 형태가 다양하고 얼핏 보면 장난감 같았다. 유럽에서는 이미 널리 사용하고 있는 무당벌레 집은 진딧물의 천적인 무당벌레를 밭에서 키우기 위해 고안한 것이라고. “집 안에 무당벌레가 좋아하는 지푸라기나 나무 조각 같은 먹이를 넣어놓고 무당벌레를 유인하는 거예요. 이걸 밭에 두면 무당벌레가 진딧물을 먹어 농약을 칠 필요가 없죠.”

영어로는 ‘Ladybird’라 불리는 무당벌레의 매력에 빠진 그는 무당벌레 형태의 오브제도 하나둘 수집하고 있다. “우연히 첼시 플라워 마켓에서 발견해 사게 되었는데, 도자기로 된 무당벌레는 지난 광주비엔날레 전시에서 허수아비를 만드는 데 활용했어요. 그때 ‘Bug’s Hotel’이라는 이름으로 큰 사이즈의 무당벌레 집을 만들어 전시하기도 했죠.” 여행지에서 받는 영감을 작품으로 선보이는 건축가 최시영에게 여행이란 어떤 의미일까? “가든을 통해 제가 세상에 내놓고 싶은 디자인을 찾은 셈이지요. 가든, 그린에 관심 갖다 보니 새로운 할 일이 생겼어요. 여행은 역시 제가 하는 일의 분명한 에너지원입니다.”

1 농사짓는 건축가 최시영

2 영국과 유럽 각지의 가든을 여행하며 구입한 가드닝 소품들. 멋진 영국 농부들이 신는 장화와 크기가 다양한 무당벌레 집, 그리고 무당벌레 오브제들.

3,4 튤립이 가득했던 네덜란드 케켄호프 공원. 튤립을 보기엔 여행 일정이 아슬아슬했는데, 다행히 유럽 날씨가 추워 일주일 정도 더 피어 있었다고 한다. 그 찰나에 보게 되어 최시영 대표에게는 더욱 기억에 남는 곳.



02 보에 대표 이철의 덴마크 디자인 여행

자신의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하이엔드 라이프스타일 숍 보에의 이철 대표. 현업에서 활동하던 헤어 디자이너 시절, 직업상 거울을 많이 접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호텔을 가도, 미술관을 가도 거울만 보이기 시작했다. “제가 인테리어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같은 공간이라도 거울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거든요.” 대부분의 매장 인테리어를 디렉팅했던 이철 대표는 헤어 숍 매장을 늘릴 때마다 이탈리아, 동남아시아 할 것 없이 각국을 돌아다니며 거울을 수없이 보고 골랐다. 감도 높은 취향과 안목은 여행의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지난 4월에도 그는 밀라노 디자인 가구박람회를 방문하는 김에 덴마크 코펜하겐 여행을 겸했다. 그로서도 덴마크 여행은 처음이었는데, 목적은 일상에서 디자인을 누리는 그들을 맘껏 구경하고 오는 것이었다. 미팅 겸 시장조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많은 곳을 다녔지만 그가 가장 인상 깊은 장소로 꼽는 곳은 칼한센 앤 선의 공방이다. “그동안 많은 나라의 가구들을 접했지만, 덴마크 가구는 그들만의 미학이 아주 뚜렷합니다.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심플한 디자인인데, 공간에 놓았을 때 발휘되는 힘이 대단하죠. 칼한센 앤 선의 공방에서 그 미학과 힘의 비결을 알게 되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아파트 단지같이 큰 가구 공방 지하에서는 가구로 만들 나무를 건조하고, 바로 위 층에서는 장인들이 손으로 하나하나 오랜 공을 들여 가구를 만들어낸다. 작은 디테일 하나도 허투루 만들지 않는 섬세한 손길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뿐인가. 평범한 상점을 들어가도 반짝거리는 새 제품보다 기본 50~60년은 지나 세월이 멋스럽게 묻어나는 빈티지 가구를 사용하는 모습 또한 꽤 인상적이었다. 휴대폰에 담아온 가구와 공간 사진을 보여주던 이철 대표가 또 보여줄 것이 있다며 내놓은 것은 스테이셔너리 아이템이다.

“코펜하겐에 ‘일룸스 보리우스’라는 덴마크 최대 규모의 가구&리빙 백화점이 있어요. 여느 가구박람회장 못지않을뿐더러 작은 소품들도 굉장히 많아요. 덴마크에서 가구를 알아보려면 이곳을 먼저 가보라고들 하지요. 여기서는 미니 트레이를 하나 구입했는데요. 이 트레이는 자석을 붙이면 캔들 홀더로도 사용할 수 있는 다용도 제품이죠. 작은 디테일의 차이일 뿐인데, 참 재미있지 않나요?”

다른 레이아웃 없이 깔끔해서 사용하기 좋다는 비트라 다이어리, 재생 가죽을 사용한 린드 DNA의 가죽 매트 등 간결하면서도 실용적인 문구류를 소개했다. “문구 제품은 가벼워 여행지에서 사기 좋은 물건이에요. 책상에 올려두면 아름다운 디자인을 매 순간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 지난 여행을 추억하기에도 좋지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 디터 람스가 말한 “less but better”라는 디자인 철학을 따른 느낌이다. “몇 달 뒤 덴마크에 있을 옥션 기간에 맞춰 다시 갈 수 있다면 멋진 빈티지 소품과 가구를 마음껏 보고 올 겁니다. 얼마나 근사한 물건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 벌써부터 기대되네요.”

1 보에 대표 이철

2 덴마크에서 빈티지 가구와 문구제품을 골라온 이철 대표. 다양한 나라를 갈 때마다 펜이나 연필을 꼭 사오는 편인데, 이번엔 북바인더스의 블랙 연필과 펜텔의 마카를 구입했다. 그리고 그 펜들을 예쁘게 담아둘 수 있는 노메스 코펜하겐의 수납상자도 같이 마련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 디터람스의 디자인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 지인들에게 선물하고자 구입한 비트라 다이어리는 여러 권 들고 왔다고. 코펜하겐의 가구&리빙 백화점 일룸스 보리우스에서 첫눈에 반한 미니 트레이와 린드 DNA의 재활용 가죽으로 만든 매트까지 캐리어가 꽉 들어차게 가져왔다.

3 그는 코펜하겐의 일상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쇼룸들을 보고 보에의 앞으로의 방향을 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조명, 테이블, 의자만으로도 멋스러운 프리츠 한센의 쇼룸.

4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칼한센 앤 선의 가구 제작 공방.

5 디자인의 아이콘 아르네 야콥슨이 디자인해 세계 최초 디자인 호텔이라고 할 수 있는 래디슨 블루 로열 호텔. 호텔을 레노베이션하며,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과 프리츠 한센이 협업해서 만든 방. 햇살이 들어오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영감이 떠오르는 공간이었다고.



03 익숙한 도시 뉴욕을 누비는 앤디앤뎁 윤원정 디자이너

뉴욕은 디자이너 윤원정 씨에게 여행지라기보단 고향과 같은 곳이다. 열아홉 살이던 1990년 뉴욕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10년 정도, 그녀는 이 도시에서 20대의 감성을 키웠고,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으며, 앤디앤뎁의 든든한 파트너이자 남편인 김석원 씨와 결혼을 약속했다.

“제 삶의 모태가 되는 곳이고, 익숙한 곳이에요.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곳이죠. 한국에 돌아온 후로도 자주 오가지만 갈 때마다 새로운 숍과 레스토랑을 발견해요.”

그녀는 뉴욕에 가면 주로 인테리어 소품을 구입한다. 심플하고 견고한 것이나 가격이 합리적인 것들이 많고, 국내에 아직 정식으로 들어오지 않은 현지 브랜드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윌리엄 소노마나 크레이트 앤 배럴, ABC 카펫은 뉴욕에 가면 꼭 들르는 숍이에요. 매디슨 애버뉴를 따라 업타운으로 쭉 걷다 보면 고급스럽고 스타일리시한 리빙 숍들을 만날 수 있죠. 패션 숍은 국내에서도 대부분 접할 수 있어서 지금 막 떠오르는 신생 브랜드나 멀티숍 정도만 둘러보고, 리빙 숍, 빈티지 마켓, 갤러리 같은 곳을 다니며 여행을 즐겨요.”

윤원정 씨는 평소 집에서 손님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클래식하면서도 간결한 것을 좋아하는 그녀의 스타일은 최근 뉴욕 여행에서 사온 물건에서도 드러난다. 블랙, 실버 같은 모노톤의 플레이스 매트와 코스터, 투박하지만 심플한 파스타 병, 라탄 휴지 케이스 등 차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리빙 소품이 주를 이룬다.

“클래식한 정찬으로 테이블을 세팅할 때도 있지만, 메인 요리는 중앙에 두고 각자 덜어 먹을 수 있게 캐주얼한 세팅을 즐기는 편이에요. 실은 어젯밤에도 얼떨결에 저희 집에서 간장게장 파티를 했어요. 뉴욕에서 사온 검정색 원형 플레이스 매트에 파란색 테두리의 화이트 접시를 올려 8명을 위한 테이블을 꾸몄죠.”

그녀의 여행은 출장을 겸할 때가 대부분이고, 일정 중 이틀 정도 자유 시간을 갖는 것이 전부다. 작년에는 이탈리아 출장길에 홀로 베네치아를 여행하게 되었는데, 그 여행에서 느낀 묘미를 잊을 수 없다고. “처음으로 낯선 곳을 혼자 여행했어요. 짧은 일정을 느리게 보내면서 제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참 행복하고 큰 자극이 되었죠. 앞으로 있을 다양한 여행길에 좋은 지침이 될 것 같아요.”

1 앤디앤뎁 윤원정 디자이너

2 윤원정 이사가 뉴욕에서 사온 리빙 소품들. 플라워 북은 소호의 작은 서점에서 구입한 것이고, 칠리위치의 플레이스 매트는 뉴저지 니만마커스 백화점에서 구입했다. 컬러감 있는 잔과 받침은 맨해튼의 바니스뉴욕 백화점에서 산 것인데, 받침의 형태가 예쁘고 견고해서 아끼는 제품이라고. 파스타를 보관하는 병은 윌리엄소노마에서 구입한 것.

3 말의 이미지에 관심이 많아 다음 시즌 ‘뎁’의 의상에도 활용하려던 차, 센트럴파크에서 마차를 마주했다.

4 뉴욕에 사는 쿠바 토박이들도 즐겨 찾는다는 쿠바 요리 레스토랑의 메뉴판.

5 5번가를 걷다 쉬어가기 위해 들어간 카페에서 커피 대신 프로모션 중인 로제 샴페인을 즐기는 여유!

6 우중충한 4월의 날씨, 옐로 캡과 짙은 안개 속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뉴욕의 느낌이 가득한 브라이언 파크.


기획 레몬트리 이지현·최선아, 사진 이광재(B.A.M Studio), 양성모(MO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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