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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김무성 “고개 들면 죽는다” 공포 이겨내라

강찬호
논설위원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이 또 졌다. 패인은 또다시 부산·경남(PK)의 외면이었다. 이회창은 1997년 대선에서 ‘3김 정치 종식’을 내세우며 김영삼(YS) 대통령을 맹공했다. 이에 분노한 PK 주민들이 이인제에게 몰표를 주는 바람에 이회창은 34년 만에 정권을 야당에 넘겨주고 말았다. 5년 뒤 대선에서도 이회창은 PK에서 발목이 잡혔다. 92년 대선에서 김영삼이 얻은 표보다 115만 표나 적게 얻어, 39만 표 차로 노무현에게 패배한 것이다. 97년 대선에서 “이회창이 당선되면 YS 감옥 간다”고 우려해 이인제를 밀어준 PK는 5년 뒤 대선에서도 이회창을 용서하지 않았다.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이 되면 김대중 감옥 간다”고 믿은 호남이 똘똘 뭉쳐 노무현을 민 것과 흡사했다.

 주군의 두 번째 몰락을 곁에서 지켜본 당시 이회창의 비서실장 김무성은 큰 충격을 먹었다. 현직 대통령이 예뻐 하는 사람을 당선시킬 힘은 없어도 미운 사람의 당선을 막을 힘은 차고 넘친다는 걸 절감한 것이다. “고개 들면 죽는데이”라는 말이 그의 입에 붙은 이유다.

 김무성은 지지 기반이 취약하다. 수모를 무릅쓰고 광주와 봉하를 찾아다니며 지지율을 쌓아봤자 메르스가 터지니 한 방에 무너지는 모래성 수치다. 게다가 여당의 텃밭 중 텃밭인 대구·경북(TK)은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아성이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 TK에서 문재인을 무려 202만 표 차로 이겼다. 그때까지 최고였던 2007년 대선후보 이명박의 득표 차(174만 표)를 압도하는 괴력이다. 김무성은 PK가 기반이다. 내후년 대선에서 야권에선 PK 출신이 후보로 나와 PK 표를 잠식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김무성은 TK에서 반드시 몰표를 얻어야 한다. 고개 한번 쳐들었다가 박 대통령의 미움을 사면 말 그대로 죽음이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가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청와대의 ‘유승민 찍어내기’에 동조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박 대통령은 왜 당과 국민의 반발을 무릅쓰고 유승민을 쳐내려 할까. 유승민이 주요 법안마다 청와대와 엇박자를 냈기에 칠 수밖에 없다는 건 표피일 뿐이다. 진짜 이유는 박 대통령의 향후 구상과 연결돼 있다.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선도 ‘박근혜 선거’로 치르고, 청와대를 떠난 뒤에도 나라의 어른으로 남아 영향력을 유지한다는 구상이다. 여기 가장 걸리는 사람이 유승민이다. TK 출신으로 박 대통령과 기반이 겹치는 그는 원내대표가 된 뒤 박 대통령 어젠다에 잇따라 태클을 건 끝에 차기 대권주자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최경환 부총리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같은 편한 사람을 대권후보로 밀어 정권을 재창출하고 ‘상왕’으로 남겠다는 청와대의 구상을 산산조각 낼 위험 인물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친박들로선 욕을 먹더라도 유승민을 조기 정리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친박들이 유승민 숙청에 성공하면 다음 타깃은 김무성이 될 것이란 관측이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작다. 김무성을 찍어내고 전당대회를 열어봤자 친박이 당선될 확률은 낮다. 또 유승민 파동을 거치며 새누리당 최고위원진은 대부분 친박으로 넘어왔다. 유승민을 잃고 날개가 꺾인 김무성을 이름뿐인 대표로 유지시키면서 총선 공천을 친박이 주도하면, 두 번 피를 묻히지 않고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친박들은 계산했을 것이다.

 결국 김무성에게 달렸다. 대통령의 미움을 피하는 건 대권후보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일지 몰라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결국은 대통령의 구심력에서 벗어난 독자성이 있어야 한다. 김무성 스스로 대통령과 차별화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보수의 상징인 박 대통령에게 보수 이미지나 경제로 경쟁해선 승산이 없다. 이런 약점을 보완해줄 인물이 유승민이다. 경제통인 데다 개혁 성향이 분명해 러닝메이트로 삼으면 외연이 크게 확장될 수 있다. 게다가 유승민 파동은 단순한 여권 내 권력 투쟁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과연 민주주의 국가냐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사건이다. 김무성은 그동안 점수를 쌓았지만 정치인으로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졌는지는 보여주지 못했다. 그가 유승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그가 어떤 철학을 가진 정치인인지 알 수 있는 좋은 계기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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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