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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라 캐도 힘든데 식구끼리 머할라고 싸웁니까”

3일 오후 동대구역에서 시민들이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이 나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우린 장사도 안 돼 먹고살라 캐도 힘든데 같은 식구끼리 뭐할라고 그케 싸웁니까.”

‘박근혜 vs 유승민’ 2라운드, 대구 민심 르포

 대구 동구 방촌시장에서 만난 김희연(55·여·식당업)씨는 유 원내대표 얘기를 꺼내자 설거지하던 그릇을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인데도 시장은 한산했다.

 “박 대통령하고 유 원내대표하고 다 같은 대구 사람 아입니까. 근데 서로 뿌라지면 뿌라졌지 굽지는 안 하니까 내가 다 남사시럽습니다.” 김씨는 “둘 다 좋은 쪽으로 화해하는 게 안 좋겠십니까”라며 다시 그릇을 집어 들었다.

 시계를 10년 전으로 돌려보자. 2005년 10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도 방촌시장을 찾았다. 대구 동을 재선거에 출마한 유승민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박 대표는 재선거 운동기간 동안 대구 동을에만 다섯 번 방문하는 등 총력전을 펼쳤다. 박 대표는 유세에서 “유 후보는 한나라당 최고의 젊은 인재로, 정권을 잡으면 장관·총리·대통령도 할 인물”이라며 한 표를 호소했다. 결국 유 후보는 지지 표가 몰리면서 선거 초반 불리했던 판세를 뒤집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열린우리당 이강철 후보를 큰 차이로 꺾었다.

 시장에선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상인들이 많았다. 박명진(61·노점상)씨는 “대통령이 국회의원 만들어 준 긴데…본인을 키와놓은 사람한테 그케 배은망덕하게 해도 되겠십니까”라며 언성을 높였다. “다음에 (선거에) 나오면 내부터도 안 찍는다”고도 했다. 박동원(67·택시 기사)씨도 “당시 알라였던 유승민이를 박 대통령이 키와준기야”라며 “나름대로는 잘해 볼라 캤지만 어찌 됐든 박 대통령한테 달려든 건 맞지 않느냐. 이리 가면 당이고 뭐고 다 깨진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유 원내대표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줘야 한다는 동정론도 만만치 않았다. 시장에서 나물을 파는 안재순(61)씨는 “어제 회의하는 걸 봤는데 유승민이 안 나가고 못 배기겠더라”며 “안타깝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박 대통령이 유 대표를 많이 밀어줬는데, 이번에도 잘해 볼라꼬 그런 만큼 용서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생이라고 밝힌 이모(25)씨도 “대통령이 그만두라 칸다고 의원들이 뽑아준 원내대표직을 쉽게 던져서야 되겠십니까”라며 “새누리당에도 유승민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퇴해라” vs “힘내세요” 현수막 대결
‘유승민 사퇴’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엇갈리는 대구 시민들의 민심은 곳곳에서 감지됐다. 이날 유 의원의 지역 사무실에는 “왜 사퇴하지 않느냐”고 비난하거나, 반대로 “절대 물러나면 안 된다”고 응원하는 전화가 번갈아 걸려왔다. 이런 전화가 매일 300통 넘게 걸려오는데, 사퇴 찬성과 반대 의견은 반반 정도로 나뉜다는 게 사무실 관계자의 전언이다. 최근 사태 이후 유 의원에 대한 소액 후원금도 급증해 올해 후원금 한도액(1억5000만원)을 거의 채웠다고 한다.

 지난달 말 유 원내대표의 지역구 일대에는 ‘박근혜 대통령 배신한 유승민은 사퇴하라’ ‘은혜를 모르는 유승민은 즉각 사퇴하라’고 쓰인 현수막 20여 장이 내걸렸다. 그러자 맞은편에 ‘동구 주민이 선택했습니다. 유승민 국회의원님 힘내세요’라는 응원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나붙기도 했다.

 뒤죽박죽 얽힌 민심을 놓고 대구를 지역구로 둔 새누리당 의원들도 치열한 눈치작전을 펼치고 있다. 누구 편을 드느냐가 내년 총선 공천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구의 한 초선 의원은 “박 대통령은 대구가 낳은 대통령이고 유 원내대표는 현재 대구 지역의 리더”라며 “마치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고 물어보는 것처럼 한 명을 선택하기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초선 의원은 “70대 이상은 (유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압도적이지만 젊은 층으로 갈수록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를 마음대로 갈아 치우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크다”고 전했다.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한구 의원은 “지역 내에서 ‘유 대표가 박 대통령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본인은 물론 당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빨리 (사퇴를) 해 마무리하는 게 좋다”고 주장했다. 여권의 집안싸움을 지켜보는 야권의 생각은 어떨까. 임규현 새정치민주연합 대구 달서병 지역위원장은 “여권 지지층 내에서도 합리적 보수 성향의 정치인을 찾으려는 생각들이 있는데, 그게 유 원내대표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번 정국을 계기로 대구 내 여권 세력이 어떻게 재편되느냐를 관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본회의 이후 당·청 갈등 장기화 가능성
‘유승민 거취’를 둘러싼 당내 갈등은 6일 본회의 이후 다시 표면화할 가능성이 크다. 한 친박계 의원은 “유 원내대표가 6일까지 사퇴하지 않고 계속 버틴다면 친박계 최고위원들이 당무를 거부하거나 동반 사퇴하는 등 여러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조기 당 복귀설까지 나오고 있다. 최 부총리가 조속히 당으로 돌아가 친박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차기 TK맹주 자리를 놓고 유 원내대표를 견제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친박계로선 유 원내대표를 끌어내릴 수 있는 결정적인 한 방이 없는 게 고민이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이번 갈등은 결국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비박 지도부의 공천에 대해 친박 의원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며 “‘청와대발 원심력’과 ‘지도부발 구심력’의 절묘한 긴장감이 이어지면서 당·청 간 충돌과 대치가 장기화 국면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당·청 간의 긴장 국면이 길어질수록 유 원내대표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해석도 있다. 갈등이 계속되면 새누리당 지지층이 피로감을 느끼면서 유 원내대표에 대한 반대 여론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2일까지 실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에 대해 ‘사퇴해서는 안 된다’는 응답(36%)이 ‘사퇴해야 한다’는 응답(31%)보다 오차 범위 내에서 근소하게 앞섰다. ‘유보한다’는 답변도 33%에 달했다. 하지만 TK 지역의 경우 응답자의 46%는 유 원내대표가 ‘사퇴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사퇴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은 28%에 그쳤다. 대구에 정치적 뿌리를 두고 있는 유 원내대표 입장에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초반에는 강자 대 약자 프레임에서 약자 위치에 놓인 유 원내대표가 유리한 여론을 얻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사태 속에서 국정 운영을 전혀 해나갈 수 없는 대통령에 대한 동정 여론이 새누리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확산될 수 있다”며 “김무성 대표에게까지 압박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명호 동국대(정치학) 교수는 “유 원내대표가 거부권 정국을 통해 전국적인 인물로 올라서는 등 상당한 정치적 소득을 얻었지만, 이제는 스스로 칼날 위에 서게 됐다”며 “적절한 시점에서 당·청 간 정치적 긴장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유 원내대표의 역량을 판단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구=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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