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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화에 묶인 그리스, 환율정책 묶여 탈출구 막막

반대(Oxi) 국민투표를 이틀 앞둔 3일 아테네 도심에선 4만5000여 명이 참가한 대규모 찬반 시위가 열렸다. 그리스 국기를 배경으로 한 시민이 채권단 긴축안에 반대라고 쓴 손바닥을 들고 있다. [AP=뉴시스]
‘그리스는 지금 손님은 다양한데 메뉴는 한 개뿐인 파티에 초대된 처지다. 한 개의 메뉴는 유로화다. 다양한 손님은 경제 사정이 다른 유럽 국가들이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가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진 직후인 2일(현지시간) 미국의 대표적 온라인 매체 복스(VOX)는 그리스 사태를 ‘메뉴가 하나뿐인 저녁파티’에 비유했다. 단일통화 유로화의 구조적 한계가 위기를 불러왔다는 분석이다.

[오늘 그리스 국민투표] 단일통화 한계 드러낸 유로존

그리스 위기의 원인이 물론 유로화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 방만한 복지, 부정부패의 만연 같은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외환위기에 처했을 때 온 국민이 고통을 감수하고 극복에 나선 한국이나 아일랜드와 달리 고통 분담을 거부하는 그리스의 국민성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효과가 불투명한 긴축정책을 강요한 채권단의 잘못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유로화 자체의 구조적 결함이 그리스 위기의 바탕에 있다는 건 분명하다. 특히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런 분석은 더 힘을 받고 있다. ‘추가 지원은 없다’며 깐깐한 입장을 고수하던 국제통화기금(IMF)이 그리스 경제 회복을 위해선 빚을 깎아줘야 한다는 보고서를 낸 것이나, 제프리 색스(경제학) 컬럼비아대 교수가 3일 “돈을 많이 빌려준 뒤 채무자가 쓰러질 수준까지 과도하게 상환을 요구하는 채권자도 잘못됐다”고 지적한 바탕엔 단일통화인 유로화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긴축했더니 소비·투자 위축
유로존의 구조적 문제로는 ▶재정통합 없는 단일통화 도입 ▶회원국 간 경제적 격차 심화 등이 꼽힌다. 여기에 독자적인 환율정책을 쓸 수 없는 정책적 한계가 더해지며 그리스는 디폴트를 맞았고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는 높아지고 있다.

유로화 도입 후 유로존은 경상수지 흑자국과 적자국의 불균형이 상존했다. 독일·네덜란드·오스트리아 같은 북유럽 국가는 매년 상당한 경상흑자를 올렸지만, 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 같은 남유럽 국가는 지속적인 적자를 기록했다. 유로존 통화정책은 유럽중앙은행(ECB)이 맡으면서 각국은 통화정책을 포기했다. 이 때문에 개별 국가 차원에서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경상수지 적자를 해결하는 게 불가능했다.

유로존 합류 이전에 투자자들은 그리스를 신용위기 가능성이 있는 국가로 보고 돈을 빌려주는 데 조심했다. 하지만 유로존 가입 후에는 그리스의 신용위기 가능성이 작아졌다고 보고 돈을 빌려줬다. 문제가 생기면 유로존의 형제국이 도와줄 것이란 판단에서다.

그리스도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게 되자 흥청망청했다. 막대한 빚을 진 배경이다. 그리스의 빚은 3000억 유로가 넘는다. 경상수지 적자는 심화됐다. 만일 그리스가 독자화폐(드라크마)를 썼다면 통화가치가 떨어져 수출이 늘고 관광 수입이 늘어 경상수지 적자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2010년 트로이카(IMF·ECB·유럽연합)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그리스는 긴축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하지만 긴축은 정부지출, 소비 등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채권단의 요구로 긴축이라는 미시정책을 쓴 결과 거시경제 차원에서는 소비·투자 위축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이창선 수석연구위원은 “그리스는 애초에 유로존에 끼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했다. 다른 유로존 국가와 비교할 때 경제력·경쟁력의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단일 통화동맹의 출발점인 마스트리흐트 조약(1992년)은 회원국에 재정적자 수준(GDP의 3% 이내), 국가부채 한도(GDP의 60% 이내) 같은 조건을 요구한다. 그리스는 가입 당시 이런 조건을 맞췄지만 지난해 말 현재 그리스 국가부채 비율은 177%까지 불어났다. 유로 출범 당시엔 회원국가들이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면 무역·자본 이동의 자유화와 단일통화에 힘입어 각국 경제가 서로 수렴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유로존 국가 간 재정이 통합됐다면 문제는 달라졌을 텐데, 각국의 재정은 독립적으로 이뤄지고 유로존 전체 차원에서 재정 건전성을 감독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경제정책은 주권의 문제이기에 재정통합, 정치동맹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관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유로존은 국채매입 프로그램(OMT), 유럽안정화기구(ESM), 은행동맹(SSM) 등을 통해 회원국을 지원하고 재정 건전성을 감독하지만 제한적이었다.

유럽합중국 되는 건 사실상 불가능
국제금융센터 김위대 유럽팀장은 “재정통합 없는 단일통화는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부도처리되면 연방정부가 지원해 주듯 유로존도 재정이 통합됐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게 그리스 위기의 주된 요인”이라고 했다. 그리스 위기에서 나타난 유로화의 한계는 다른 지역의 역내 단일통화 창설 움직임에도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로 출범 후 일본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지역의 공동 통화 필요성이 제기됐고 외환위기 이후 아시아 단일통화 (ACU)가 논의됐지만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진전을 보지 못했다.

유로존의 구조적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재정통합을 이뤄 궁극적으론 완전한 하나의 유럽으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어렵다. 독일 같은 부자 나라의 반대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창선 연구위원은 “통화동맹은 이뤄졌으니 최종적으론 미국처럼 유럽합중국이 돼야 하지만 유럽의 국가 특성상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안 유로존은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갈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결국 역내 국가 간 경제통합을 강화하고, 재정규율을 강화하며, 경제 격차를 줄이기 위한 ‘힘들고 어려운 길’을 갈 수밖에 없다.

구조적 문제는 시간을 두고 해결한다고 해도 당장 위기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제프리 색스 교수는 이렇게 밝혔다. “그리스의 실패는 그리스와 채권단 모두의 잘못이다. 양측이 과거의 일로 옥신각신 다투다 미래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상호 합의를 통해 부채를 탕감하고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는 게 유럽 국가들뿐 아니라 세계경제를 위하는 것이다.”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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