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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방역 개입, 관료주의 없애야 제2 메르스 막는다

2020년 7월 5일 대한민국은 또다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공포에 휩싸였다. 어제 서울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대규모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병원 응급실에 3일 동안 입원해 있던 14번째 메르스 환자로부터 대규모 3차 감염이 발생한 것이다. 이 환자는 최초 환자가 발생한 병원에 문병을 간 가족이었으나 방역당국의 격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현재 역학조사가 진행 중이나 격리대상자는 5000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병원 응급실은 전국에서 몰려드는 환자를 하루 평균 300명 넘게 진료해왔다.

[메르스 쇼크의 교훈] 국내 전문가의 진단

떠올리기도 싫은 끔찍한 악몽이다. 하지만 5년 후에 이런 악몽이 되풀이되지 말란 법은 없다. 이번 메르스 유행이 끝난 후 우리가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면 악몽은 반복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할까. 먼저 방역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는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격상하고 현재 34명에 불과한 역학조사관을 포함한 전문 인력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현장 컨트롤타워 중심의 방역이 이뤄질 수 있도록 법과 체계를 이번 기회에 정비해야 한다. 보건소·공공병원·대학병원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감염 환자를 진료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감염에 취약한 병원과 의료체계도 바꿔야 한다. 감염 환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1인실을 사용하게 하고 중환자실과 응급실에도 격리실을 크게 늘려야 한다. 간호사가 간병을 책임지는 포괄간호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 여러 병원에 메르스를 퍼뜨린 주범인 병원 쇼핑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민이 가벼운 병은 동네 병·의원에서 진료받는 것이 유리하도록 바꿔야 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할까.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는 회의론도 적지 않다. 허약한 방역체계와 감염에 취약한 병원은 겉으로 드러난 문제이지 근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의 근본 문제는 방역에 정치가 개입한 것이다. 뒤돌아보면 메르스 확산을 막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순간이 여럿 있었다. 그런데도 방역당국은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고 미적대거나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역학조사다. 14번 환자가 확진된 날인 지난달 29일 삼성서울병원 보안 요원은 역학조사관의 출입을 막았다. 병원은 환자 명단을 내주지 않았으며 나중에는 환자 연락처가 빠진 명단을 주었다고 한다. 메르스를 상대로 한 방역 전쟁에서 일주일 넘게 공권력이 무력화되고 있는 동안 질병관리본부와 보건복지부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다.

35번 환자를 확진하고도 발표를 4일이나 미룬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정치적인 고려 때문에 미적미적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만약 삼성서울병원에서 역학조사와 밀접 접촉자 격리가 제대로 이뤄졌으면 메르스는 다른 병원으로 퍼져 나가지 않았을 것이고 6월 중순에 이미 종식됐을 것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의 또 다른 근본 문제는 관료주의였다. 초기 2m, 1시간이라는 밀접 접촉자 기준을 고집해서 방역망이 뚫린 것이 대표적인 예다. 공익을 핑계로 정보를 숨기는 비밀주의는 관료주의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평택성모병원을 일찍 공개했으면 삼성서울병원에서 그렇게 많은 환자가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진료 받은 환자를 다른 병원에서 일찍 조회할 수 있었다면 여러 병원이 삼성서울병원발(發) 메르스 환자 폭탄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관료주의 때문에 메르스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날려버린 또 다른 사건은 평택성모병원의 늑장 폐쇄다. 최초 환자와 다른 병실을 쓴 6번 환자에게서 메르스 의심 증상이 나타났을 때 방역당국이 병원을 코호트 격리했더라면 메르스는 크게 퍼져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기존 지식과 다른 일이 벌어졌을 때 전문가는 새로운 원인과 대책을 찾지만 관료는 법과 규정을 찾는다. 당시 방역당국은 매뉴얼에 없기 때문에 병원을 코호트 격리 할 수 없다고 했다. 메르스와 같은 새로운 감염병과 싸우는 과정은 불확실성이 높다. 그럼에도 우리는 관료적인 방식으로 메르스와 싸우다 실패한 것이다.

메르스와 같은 새로운 감염병과의 싸움에서 이기려면 방역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배제하고 관료주의를 해소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신설되는 질병관리청에 개방직을 크게 늘리고 민간 전문가를 대거 영입해야 한다. 방역에 대한 정치적 개입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알려 정치가 더 이상 방역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전문가 중심의 독립적이고 과학적인 방역체계가 갖춰지고 국민을 다가올 감염병의 위협에서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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