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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PB가 미술공부 하는 까닭? 작품은 자산이니까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상을 1억 달러에 사지 않는 이상 달리 투자할 곳이 없다. 기준금리가 인상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장기 채권시장은 이미 죽음이 임박했고 단기금리는 수익률이 형편없다. “

저금리시대 들썩이는 미술시장

지난해 11월, ‘억만장자 투자자’ 윌버 로스 WL 로스앤코 회장은 CNBC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반년이 지난 지금, 그의 말은 글로벌 수퍼 리치들의 투자 지침이 되고 있다. 저금리 기조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갈 곳 잃은 뭉칫돈이 미술시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세계적 경매회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는 지난해 미술품 경매로 각각 6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며 설립 이래 최고 실적을 거뒀다. 지난해 경매 낙찰자 중 3분의 1은 처음으로 미술품을 구매한 신규 고객이다.

3월 열린 서울옥션의 올해 첫 메이저 경매에서 한 참가자가 입찰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서울옥션]
국내 미술시장도 모처럼 활기
신기록 행진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5월 11~13일,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된 미술품 총액은 14억1003만 달러(약 1조 5470억원)로 주간 낙찰액 신기록을 세웠다. 이 경매에서는 파블로 피카소의 유화 ‘알제의 여인들’이 1억7937만 달러(약 1968억원)에 판매돼 세계 미술품 경매 최고가 기록을 다시 썼다. 프랑스 미술정보업체 아트프라이스닷컴의 티에리 에르망 회장은 “경매 낙찰 규모가 최근 10년간 300% 늘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 미술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올 들어 서울옥션과 K옥션의 낙찰률은 90%까지 치솟았다. 이학준 서울옥션 대표는 “구매자의 저변이 40~50대 중산층까지 확대됐다”고 말했다. 이상규 K옥션 대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L자형 침체를 겪은 미술시장이 반등을 하는데다 해외 수집가들이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국내 미술 시장의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세계 미술시장에서 한국 작가들의 약진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한국판 모노크롬’이라고 불리는 단색화의 경우 최근 국내외 전시와 경매를 통해 잘 팔리고 있다. K옥션이 5월 홍콩에서 개최한 첫 단독 경매에서는 출품작 56점 가운데 50점이 팔렸다. 정상화, 윤형근 등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 24점은 모두 판매됐다. 같은 달 열린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선 김환기가 그린 단색화 ‘블루 마운틴’이 해외 경매 최고가인 1150만홍콩달러(약 16억 4500만원)에 낙찰됐다.

가격 상승률도 가파르다. 국내에서는 낙찰받았던 미술품을 되파는 경우가 드물어 정확한 수익률 산출이 어렵지만 단색화 작가들의 작품 값은 1년 새 약 10배로 뛰었다. 1967년부터 ‘묘법’ 연작을 시작한 박서보의 작품 값은 9년 새 18배나 뛰었다. 2006년 소더비 뉴욕 경매에선 그의 작품이 3만3600달러(약 3665만원)에 팔렸지만 올해 서울옥션의 홍콩 경매에선 비슷한 연대, 비슷한 크기의 작품이 490만홍콩달러(약 7억원)에 팔렸기 때문이다. 2006년 주당 70만원이었던 삼성전자 주식이 지금은 1.8배로 올라 주당 129만원대 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 작품의 투자 가치가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금융업계에는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을 위해 미술 강좌를 듣는 PB(프라이빗 뱅커)들까지 등장했다. 문화예술교육업체 에이트인스티튜트가 올 초에 처음 문을 연 PB 아트스쿨의 경우 국내 5개 증권사 PB 15명이 한 달에 두 차례씩 모여 미술 시장과 매매 동향 등 투자적 관점에서 필요한 미술 관련 교육을 받고 있다. 관련 문의가 늘면서 앞으로는 증권사 뿐 아니라 은행 등 다른 금융권 전문가들을 위한 강좌도 개설할 계획이다. 이환희 KB투자증권 압구정PB센터 부장은 “고객 자산관리에 도움이 돼 수강하고 있다”며 “금융자산의 가치가 폭락하는 상황에서 실물자산, 그 중에서도 미술품이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품경매사 출신인 박혜경 에이트인스티튜트 대표는 “해외에선 투자자들이 주식이나 부동산처럼 미술품도 자산 포트폴리오에 포함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명한 작가의 작품일수록, 가격이 비싼 작품일수록 무조건 투자가치가 클 것이라는 착각해서는 안 된다”며 “책이나 관련 강좌를 통해 작가와 작품, 시대별 미술 사조 등의 배경지식을 쌓고 투자에 나서야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기간에 값 오른다는 보장 없어
초보 수집가들은 구매에 앞서 화랑과 경매장을 자주 방문해 분위기를 익히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화랑이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경매 역시 큐레이터의 작품 설명을 듣는 프리뷰부터 경매장 참석까지 무료로 가능하다. 온라인 경매를 통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의 작품부터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

미술품을 살 땐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이상 묵혀둔다는 마음으로 투자 규모를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기간에 가격이 오른다는 보장이 없고 사고 파는 비용도 꽤 들기 때문이다. 경매에서 작품을 낙찰받는 경우 낙찰가의 약 10%를 수수료로, 이 수수료의 10%를 부가가치세로 낸다. 팔 때도 수수료를 내야하고 낙찰가가 6000만원 이상일 경우 차익의 20%를 양도소득세로 내야 한다. 단 국내 생존작가의 작품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최정표 한국아트밸류연구소 소장은 “미술품은 투자 대상일 뿐 아니라 감상을 위한 작품이라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소유하고 즐긴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후회 없는 투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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