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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남극의 ‘물찬 제비’ 펭귄, 자력으론 북극 여행 불가능

남극대륙 등지에서 사는 턱끈펭귄. 몸길이는 약 68㎝, 몸무게는 약 6㎏정도 된다. [사진 극지연구소]
펭귄의 모습은 우스꽝스럽다. 몸통은 커다랗고 머리를 어깨 위에 바로 얹어 놓은 것처럼 목은 짧으며 다리는 무릎이 없어서 굽힐 수 없어 뒤뚱거리면서 걷는다. 하지만 이것은 겉모습일 뿐, 실제 뼈대는 다르다. 펭귄 다리는 몸길이의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길다. 펭귄의 X레이 사진을 보면 그동안 우리가 속아온 것을 알 수 있다. 펭귄은 무릎을 몸 안에 숨기고 있다. 목도 생각보다 길다. 마치 말을 타고 있는 것처럼 무릎을 굽히고 있다. 누워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펭귄은 뻣뻣하게 서 있는 게 아니라 항상 무릎을 어정쩡하게 굽히고 있는 셈이다.

날지 못하는 새의 비밀

펭귄이 좌우로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으나 그것은 순전히 우리 생각이다. 펭귄의 걸음걸이가 꼭 불편한 것만은 아니다. 시계추는 한 번만 흔들어주면 태엽의 작은 힘만으로도 계속 좌우로 흔들린다. 펭귄도 마찬가지다. 시계추처럼 좌우로 뒤뚱거리면서 걷기 때문에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다리를 움직일 수 있다.

사람들은 펭귄을 좋아한다. 모습이 귀엽기 때문만은 아니다. 펭귄은 수컷의 수가 적어서 짝짓기 철이 되면 암컷 여러 마리가 수컷 한 마리를 걸고 싸우는 지구상에 몇 안 되는 종 가운데 하나다. 암컷의 투쟁으로 선택받은 수컷은 겨울에 새끼를 위해서 몇 달씩 굶고 수백 ㎞에 이르는 길을 오가기 때문에 부성애의 상징이 됐다. 그런데 펭귄이 아무리 친근하게 느껴져도 우리와 같은 젖먹이 동물은 아니다.

1 황제 펭귄. 현존하는 펭귄 중에서 가장 몸집이 크다. 2. 황제 펭귄의 X선 사진. 무릎뼈가 몸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릎을 몸 안에 숨기고 있는 새
펭귄은 새다. 다른 조류와 마찬가지로 깃털이 있고 손가락뼈·손바닥뼈·손목뼈가 합쳐진 수골(手骨)과 단단한 각질(角質)로 된 부리가 있으며 알을 낳는다. 하지만 앞다리는 날개가 아니라 지느러미 형태로 변했고 뒷다리는 지방층이 두꺼워져서 짧아 보이며 골밀도가 높아서 날지 못한다. 그러니까 펭귄은 날지 못하는 새다. 하지만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펭귄은 대신 바닷속에서는 물찬 제비처럼 날아다니듯 헤엄을 친다. 임금펭귄은 300m 이상 잠수해서 7분이나 물속에 머물 수 있다.

펭귄은 왜 날지 못하게 되었을까. 펭귄은 어떻게 물속 재간꾼이 되었을까. 여기에는 몇 가지 가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펭귄이 사는 추운 서식지에는 펭귄을 잡아먹는 천적들이 별로 없어서 굳이 하늘을 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가설은 하늘을 날거나 헤엄을 칠 때 모두 날개를 사용해야 하는데 서로 기능이 달라서 두 능력 가운데 하나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영국 에버딘대학교와 중국 과학원 공동연구팀은 2013년 두 번째 가설에 무게를 싣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펭귄의 친척에 해당하는 바다오리를 집중 연구했다. 바다오리는 잠수도 잘할 뿐만 아니라 펭귄과는 달리 하늘도 날아다닌다. 바다오리의 활동을 분석한 연구팀은 바다오리가 잠수할 때는 에너지 소모가 적은 데 반해 하늘을 날 때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펭귄에게 비행은 값비싼 행동이어서 잠수에 주력해 먹이를 잡아 먹으며 살다 보니 점점 날개도 작아지는 쪽으로 진화했다고 결론 내렸다.

이들의 연구 결과대로 하늘을 나는 능력을 포기하는 대신 에너지 소모가 적은 잠수 능력을 키우는 게 생존에 유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가설이 맞는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펭귄이 원래는 날 수 있었는데 비행을 포기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헤엄을 잘 쳤는지, 그리고 펭귄이 원래부터 추운 곳에 살았는지 대답하기 위해서는 태곳적 펭귄 화석을 찾아야 한다.

갈라파고스 펭귄은 적도 넘어 사냥도
펭귄 화석을 처음으로 보고한 사람은 ‘다윈의 불독’으로 일컬어졌던 토마스 헉슬리다. 1859년 토마스 헉슬리가 팔라에에우딥테스 안타르크티쿠스(Palaeeudyptes antarcticus)를 보고한 후 수많은 펭귄 화석들이 뉴질랜드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펭귄은 골밀도가 높기 때문에 화석으로 보존될 확률이 높지만 바다로부터 높은 에너지를 받는 곳에 살다 보니 전체적인 골격 보존율은 낮다. 펭귄 화석은 거의 조각조각 발견되므로 펭귄의 진화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려웠다.

현재 살고 있는 펭귄은 17~22종인데 (종수가 오락가락하는 것은 종 분류학자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모두 같은 공통 조상에서 기원했다. 현재 모든 펭귄이 남반구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죄다 남극 근처에 사는 것은 아니다. 3종은 열대지방에 살며, 그 가운데 갈라파고스 제도에 사는 어떤 종은 먹이를 쫓다가 적도를 넘기도 한다. 화석으로만 남아 있는 50여 종의 분포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펭귄 화석은 2006년 보고된 와이마누 만네링이(Waimanu manneringi)다. 와이마누 펭귄은 중생대의 막을 내린 다섯 번째 대멸종 직후의 신생대 제3기 초기 지층(6200만~6400만 년 전)에서 발견되었다. 와이마누 펭귄은 현생 펭귄 가운데 가장 큰 황제펭귄과 몸집이 비슷했다. 앞다리가 지느러미처럼 생겼고 골밀도가 높았던 것으로 보아 이미 비행은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골반과 뒷다리 역시 현생 펭귄과 비슷한 것으로 보아 원시 펭귄들은 진화 초기부터 잠수와 수중비행을 했을 것이다.

4200만 년 전에는 펭귄이 열대지방을 포함한 남반구 모든 대륙으로 진출했다. 이때는 남극대륙이 다른 대륙들과 분리되면서 남반구 해류가 변하는 시기와 일치한다. 해류가 변하면서 페루 연안으로 솟아오른 차가운 바닷물은 펭귄의 먹이활동과 진화에 영향을 끼쳤다. 4100만 년 전 이후에 등장하는 펭귄들은 모두 위팔뼈에 찬 바다에서 체온손실을 방지하는 혈관망이 있다. 이 체온조절기구가 가장 오래된 펭귄인 와이마누에는 없다. 이것은 기존 정설과는 반대로 초기 펭귄류가 극지방 빙하의 성장과 상관없이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2007년 미국 텍사스 오스틴대학의 고생물학자 줄리아 클락(Julia Clarke)이 이끄는 국제탐사팀은 페루의 태평양 해안에서 멸종된 펭귄 2종의 화석을 발견했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미국 예일대 고생물학자 데렉 브릭(Derek Brigg)은 화석에서 멜라노솜이라는 세포 구조를 발견했다. 멜라노솜에는 사람의 피부와 털 그리고 새의 깃털 색깔을 결정하는 멜라닌 색소가 들어 있다. 멜라노솜의 모양과 크기는 멸종한 새와 공룡의 색깔을 알려주는 실마리가 된다. 살아있는 펭귄의 경우 멜라닌 색소는 깃털의 색깔뿐만 아니라 헤엄치는 데 필요한 강도와 탄성도 깃털에 준다.

줄리아 클락은 1년 후인 2008년 페루에서 3600만 년 전에 살았던 펭귄 화석을 찾았다. 골격은 거의 완전했으며 키는 1.5m에 달했다(가장 큰 현생종인 황제펭귄의 키는 1.2m 정도다). 연구팀은 이 화석 펭귄에게 인카야쿠 파라카센시스(Inkayacu paracasensis)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물의 왕’이란 뜻이다.

클락은 당시 브릭 연구팀에 속해 있던 제이콥 빈터(Jakob Vinther, 현 영국 브리스톨 대학교수)를 즉시 불렀다. 빈터 박사는 현미경 관찰을 통해 멜라노솜의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현생 펭귄의 멜라노솜은 넓적한데 반해 인카야쿠의 멜라노솜은 좁고 길었다. 멜라노솜의 형태에 따라서 색깔도 달라진다. 현생 펭귄의 바깥쪽 털은 검정이나 갈색인데 인카야쿠의 깃털은 적갈색 또는 회색으로 보인다.

멜라노솜 모양보다 더 중요한 발견은 멜라노솜의 밀도였다. 현생 펭귄의 멜라노솜 밀도는 모든 다른 새들보다 훨씬 높다. 멜라노솜의 밀도가 높을수록 깃털의 경직도가 높아져서 헤엄칠 때 깃털이 고정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것은 펭귄이 물에 적응한 결과로 보인다. 그런데 인카야쿠 펭귄은 멜라노솜 밀도가 낮았다. 이것은 3600만 년 전의 인카야쿠가 비록 현생 펭귄과 비슷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물속을 헤엄치고 다니는 잠수부는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인카야쿠는 겨우 물의 표면에서만 헤엄치며 지냈을 것이다.

인카야쿠의 진화 과정 밝히는 게 숙제
인카야쿠가 현생 펭귄으로 진화되는 과정을 밝힌다면 비행 기술의 진화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줄지도 모른다. 현생 펭귄은 공기보다 밀도가 800배나 높은 물속에서 날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펭귄이 북반구에 없는 이유는 북반구에 살 수 없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북반구로 진출하려면 적도 지방의 난류를 통과해야 하는데, 펭귄은 한류에 적응한 동물이어서 그 난관을 극복하지 못할 뿐이다. 아니, 굳이 극복해야 할 이유가 없다. 남반구에서 충분히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만약 인간이 펭귄을 북극 지방으로 옮겨 놓으면 펭귄은 거기서도 살 수 있을까. 못 살 이유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천만 년 동안이나 남반구에서 다른 생태계에 피해를 주지 않고 또 사람에게도 사랑을 받으며 잘 살았던 펭귄이 북극 지방으로 강제 이주를 당한다면 그 순간부터 펭귄은 부성애의 상징이 아니라 황소개구리·붉은귀거북·큰입배스처럼 환경을 파괴하는 외래종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써야 할지도 모른다. 펭귄은 그냥 남반구에 맡기자.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이언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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