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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盤上)의 향기] 반상의 정의 실현 위해 … 일본 막부 시절에도 덤 채택

80년 조치훈(오른쪽) 명인이 귀국했을 때 가진 조훈현(왼쪽) 9단과의 기념 대국. 흑백을 나누기 위해 조치훈이 백돌을 한 줌 잡았고 조훈현이 흑 돌 하나를 놓고 있다. 홀수면 흑을 잡겠다는 의사 표시다. 가운데 이를 지켜보고 있는 이가 김인 9단. [사진 한국기원]
1983년 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 9단과 조치훈 9단이 제7기 기성전 최종국 7국을 두었다. 슈코의 7연패(連覇)가 걸린 판이었다. 극적인 승부였다. 조치훈이 반(半)집을 이겨 타이틀을 획득했고 일본 최대의 상금도 벌었다. 물러나는 슈코에게 조치훈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승부의 균형추

 슈코는 아팠겠지만 그에게도 반집 행운은 많았다. 61년 제1기 명인전 리그에서 후지사와는 9승 3패로 1위였고, 우칭위안(吳淸源)과 사카타 에이오(坂田榮男)가 각자 8승 3패로 동률 2위였다. 우칭위안과 사카타가 리그 최종국을 두었다. 누가 이기든 후지사와와 재대국이 불가피했는데, 승부는 그만 우칭위안의 백 빅승으로 끝났다. 당시 ‘덤 5집에 빅이면 백승’ 규정이었다.

 덤은 바둑이 끝난 후 먼저 두어 유리한 흑이 백에게 선착의 이점을 공제하는 제도. 하지만 “빅승은 그냥 승리보다 못하다”는 규정도 있었다. 우칭위안과 후지사와는 둘 다 9승 3패지만 후지사와가 1위로 명인이 되었다.

1 1938년 슈사이 명인 은퇴 기념기에서 기타니 7단(왼쪽)이 슈사이 명인과 대국하고 있다. 2 1964년 제3기 명인전에서 사카타 명인(왼쪽)이 돌을 세고 있다. 홀짝을 확정해 흑백을 가리기 위해서다. 상대는 후지사와 9단. [사진 일본기원]
중국에선 상수가 먼저 두기도
바둑은 승부. 공정성을 기해야 한다. 하지만 운도 따르는 것이 사실. 예부터 운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 여러 판을 두어 승부를 가리는 게 보통이었다. 가령 10판, 20판을 두면 확률적으로 운에 의해 승부가 날 여지가 줄어든다. 패자는 말이 없게 된다. 곧 정의의 도래다.

 선착의 이점 문제야말로 공정성의 핵심. 바둑은 먼저 두는 흑이 많이 유리한데 어떻게 하면 백도 할 만할까. 흑이 그 이점을 상쇄하는 대가를 치르면 된다. 덤은 그 상쇄 기제.

 덤이 최초로 도입된 것은 1938년. 혼인보(本因坊) 슈사이(秀哉) 명인의 은퇴기에 나설 기사를 뽑는 리그전에서였다. 적용된 덤의 크기는 4집. 이듬해 세계 최초의 기전 제1기 혼인보전이 탄생했고 덤 4집을 채택했다.

 바쿠후(幕府) 시대에도 덤은 있었다. 여럿이 편을 갈라서 연기(連棋·돌아가면서 두는 바둑)를 둘 때엔 덤을 채택했다. 1852년 2월 12일 슈와(秀和) 8단과 쓰루오카 사부로스케(鶴岡三郎助) 5단이 한 팀으로 흑을 잡고, 슈사쿠(秀策) 7단과 이토 쇼와(伊藤松和) 7단이 백을 잡은 연기에서 덤은 5집이었다. 그해 4월 27일의 연기에서도 5집 덤을 두었다. 같은 실력이 싸울 때 선착의 이점은 약 3~5집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개인의 승부에서는 덤을 채택하지 않았다. 같은 단위라면 서로 번갈이 흑을 잡았다. 중세 일본에선 가문들의 경쟁과 타협이 덤의 발생을 억제했다. 공정성은 권위와 상충될 수 있어 권위로 살아가는 가문은 덤의 채택을 억눌러야만 했다. 공정성은 사회의 전통과 합의를 벗어나기 힘들고 절대적인 정의 또한 존재하기 어렵다.

 중국에서는 상수(上手)가 먼저 두기도 했다. 청나라의 유명한 국수 왕한년(汪漢年)은 백으로 먼저 둘 때 천원(天元·바둑판의 한 가운데)을 즐겨 두었다. 맞바둑에서 먼저 두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지 않았던 것일까. 상수에게 드리는 예의가 더 중요했을까. 상반된 증거가 많다.

기보 덤이 없다면 흑7이 좋다. 소위 슈사쿠 포석으로 흑이 견실하다. 덤 4집반일 때엔 흑은 흑7 대신 A 협공을 많이 두었다. 공격으로 선착의 잇점을 일찍 얻고자 했다.
한국 바둑에선 덤 6집 반 정착
덤이 필요하다는 증거로는 어떤 게 있을까. 17세기 혼인보 도사쿠(道策) 명인은 바둑의 사고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소위 구조주의의 발견이었다. 그에 의하면 바둑은 전체가 부분에 앞서고, 앞선 착점이 뒤의 착점을 규정하는 것이었다. 곧 선착이 유리하다는 이론적인 증거였다.

 흉내바둑은 이론적이고도 실전적인 증거였다. 1929년 시사신보(時事申報) 대회에서 우칭위안이 기타니 미노루(木谷實)에게 흑으로 흉내바둑을 두었는데 흑이 유리했다. 흑이 첫 수를 천원에 둔 후에 백을 따라 두다가 때가 되었다고 여겨질 때 흉내를 중지하면 흑이 유리할 것은 불문가지다.

 1924년 세습적인 전통과 결별하고 탄생한 일본기원은 승부의 개방성을 추구했고 실력주의의 도래는 필연이었다. 실력의 편차 또한 많이 줄어들어 백을 잡은 고단자는 덤이 없다면 저단자에 비해 불리한 승부를 해야만 했다. 고단자도 점차 덤에 찬동하게 된 이유다.

 반(半)집은 가상의 숫자로 승부를 가리기 위한 제도다. 이런 일이 있었다. 기사 둘이서 대국료를 더 타기 위해 담합하고 빅을 만들었다. 재대국에서도 빅을 만들었고 셋째 판도 빅이었다. 조사 결과 담합을 밝혀냈다. 반집 개념의 도입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일단 덤이 정착하자 덤은 변하기 시작했다. 1953년 일본 왕좌전(王座戰)은 덤 5집반을 채택했고 61년 요미우리신문이 명인전을 만들면서 ‘덤 5집에 빅이면 백승’을 규정해 실제적으로 5집반 시대를 열었다. 전통을 강조하며 변화를 버텨내던 혼인보전도 74년 제30기부터는 덤 5집반을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은 56년 제1기 국수전이 덤 4집반을 적용했고 73년 대한일보사가 백남배를 창설하면서 흥미를 끌려는 의도로 덤 5집반을 채택했다. 재미있는 것은 프로기단의 덤이 4집반임에도 불구하고 아마기단에서 훨씬 빨리 5집반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전문가 집단은 보수적이다.

 덤 6집반 시대를 연 것은 한국이었다. 97년 SBS배 연승바둑최강전이 6집반을 시행했고 98년 LG배 세계기왕전이 덤 6집반을 채택했다. 99년 농심신라면배와 흥창배, 그리고 삼성화재배가 덤 6집반을 채택해 덤 6집반은 대세가 되었다. 89년 대만의 응씨배(應氏盃)는 과감히 덤 8점(우리 식으론 7집반)을 채택해, 지나치다는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중국은 7집반의 덤을 채택하고 있다.

선수인 흑은 초반 실수해도 만회 기회
97년 거의 모든 프로와 평론가들은 덤 5집반에서는 흑이 편하니 덤은 6집반으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거는 5집반 덤에서 흑의 승률이 약간 더 높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제대로 된 이해가 아니었다. 흑의 승률이 높은 이유가 개인차 때문인지, 덤 때문인지가 불분명했고 표본의 문제도 있었다. 덤과 선착의 잇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정상급의 대국만이 표본이 될 수 있다.

 선착이 갖는 이점의 성격은 야구에서의 홈 어드밴티지와 동일한 구조를 지닌다. 간단히 연구의 결과만 언급하자. 로짓(logit) 모형을 도입해 검토한 결과 덤 5집반은 적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들은 왜 흑이 유리하다고 보았던가. 사실 이것이야말로 흥미진진한 문제였다.

 답은 이랬다. 바둑판은 대칭이고 착수 교대가 지배한다. 그 때문에 흑은 초반에 실수를 하더라도 맞보는 자리가 있어 실수의 여파가 적다. 만약 백이 첫수를 0점짜리, 예컨대 반상의 가장 구석진 자리를 두었다 하자. 그러면 귀의 점거 비율은 흑이 3대1로 절대 유리하다. 하지만 흑은 첫수를 실수해도 귀 점거는 흑백이 2대2로 동일하다. 같은 실수라도 반상의 속성과 착수 교대의 원칙 때문에 실수의 결과가 흑백에 공평하지 않고 비대칭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덤 6집반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먼저 두는 흑이 6집반 정도 유리하다는 걸까. 덤을 6집반으로 하면 흑백의 승부가 공정성이라는 기준을 충족한다는 걸까. 답은 후자다. 대국 초반의 6집반에 대한 인식과 대국 종반에서의 6집반에 대한 계산은 다른 값을 지닌다. 덤 6집반은 심리적인 측면이 들어간 숫자다.

 승부의 크기에 대한 부정확한 이해가 많다. 흑을 잡을 때 7집, 백을 잡을 때 6집 이긴다고 해서 흑이 1집 유리하다 판단하면 틀린 이해다. 선착의 이점은 계가(計家)가 끝난 다음에 집의 크기로 따지는, 그런 것이 아니다. 불계승과 반집승은 같은 것이다.

덤 유무 따라 끝내기·포석 발전에 영향
출발만 공정하면 승부는 공정한가. 정의에 관한 현대의 고전인 존 롤즈의 『정의론』을 보면 정의는 공정성(justice as fairness)에 달려 있다. 바둑도 그런가.

 세상은 간단하지 않은 것. 모순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덤이 공정하다면, 그리고 서로가 비슷한 실력이라면 흑을 잡든 백을 잡든 50%의 승률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실력의 차이가 있는 게 현실이니 문제는 심각하다. 하수(下手)의 입장에 서서 가정해보자. 덤이 없을 때 백으로는 언제나 패배하지만 흑으로는 50%의 승률을 얻을 수 있다고 하자. 그럼 그 기사는 백의 승부를 포기하는 전략을 세울 것이다. 포기도 중요한 선택. 시간은 큰 가치를 지닌 재화. 남는 시간에 흑 잡을 때를 대비해서 ‘흑의 포석’에 집중하는 게 유리할 것이다.

 덤이 공정하고 상수와 하수에게 동일한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결과는 의외로 만만찮은 것. 공정성의 의미 폭을 좁혀서는 안 될 것이다.

 덤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파급효과 또한 분명히 다르다. 덤이 없다면 백으로는 이기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므로 같은 실력자들이 모인 집단에서도 덤이 없다면 연구는 보다 포석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백은 모호한 세상을 탐구할 것이다. 반면 덤이 있다면 연구는 보다 끝내기에 집중할 것이다. 그런데 끝내기 계산에 치중하면 새로운 창조는 기대하기 힘들다. 바둑의 발전을 위해서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할까. 덤은 수법의 변화와 직결된 조건이다.

 재미있는 것은 덤이 많이 커져도 흑을 잡고 싶다는 기사들이 적지 않다는 것. 왜 그럴까. 흑을 잡으면 선택권이 커지는데, 선택이 곧 권력이고 안정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홀짝을 맞추는 대국자가 흑백의 선택권을 가지게 하는 경우에 프로들은 대개 흑을 택하곤 한다. 바둑에서도 불안의 해소야말로 현실적인 문제인가 싶다. 덤은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덤은 이런저런, 저런이런 것이다.



문용직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한국기원 전문기사 5단. 1983년 전문기사 입단. 88년 제3기 프로 신왕전에서 우승, 제5기 박카스배에서 준우승했다. 94년 서울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바둑의 발견』 『주역의 발견』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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