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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의 속내 … 그리스는 붙잡고 치프라스는 버리고

그리스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지원받은 15억4000만 유로(약 1조9000억원)를 지난달 30일 갚지 못해 사실상 디폴트(국가 부도) 상태가 됐다. 이날 그리스의 한 국민이 길거리에 있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리스인들의 고단한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블룸버그]

세계가 그리스 총선에 촉각을 곤두세운 올 1월 초.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의 주역인 예룬 데이셀블룸(49)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모임) 의장 겸 네덜란드 재무장관이 서울을 찾았다. 그에게 질문이 쏟아졌다. “급진좌파연합의 알렉시스 치프라스(41)가 여론조사에서 우세하다. 집권하면 유럽 정치 리더들이 인정할까?” 그는 “선거에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치프라스가 집권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밖의 말이다. ‘해당 국민의 뜻을 존중한다’고 말하는 게 국제 무대 관행 아닌가. 그의 발언에서 치프라스 집권을 꺼리는 채권국의 속내가 읽혔다. 이후 약 6개월이 흘렀다.

 그리스 사태가 숨 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긴축안을 국민투표에 부친 치프라스 총리는 1일(현지시간) 채권단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국민 투표 철회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채권단의 대표 격인 앙겔라 메르켈(61) 독일 총리는 “그리스 국민투표 때까지 (치프라스와) 어떤 협상도 없다”고 선언했다. 블룸버그통신은 1일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치프라스에 대한 비토(거부)”라고 평했다. 영국 인디펜던트지는 “메르켈이 내심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메르켈이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는 건 경제적인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유럽연합(EU)의 정치적 역학 구조가 얽혀 있어서다. 블룸버그는 지난달 말 미국 안보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그리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탈퇴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 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 전선이 흔들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더욱이 경제 불안 등으로 그리스 난민 급증 가능성도 제기됐다. 요즘 지중해 난민은 유럽의 심각한 골칫덩어리다. 제임스 스타브리디스 전 나토 사령관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가 혼돈에 빠지면 유럽과 미국에 전략적으로 중대한 일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우려 때문에 미국은 과거에 그리스를 지원한 적이 있다. 1948년 미국은 전후 유럽복구원조(마셜플랜) 자금을 마련하자마자 당시 좌우 내전 중인 그리스를 먼저 지원했다.

 메르켈은 치프라스와 협상을 거부하면서 그리스 국민에게 “국민투표는 긴축에 대한 찬반이 아니라 유로화에 대한 찬반을 묻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그리스 국민에게 치프라스를 포기하고 유로존에 잔류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치프라스도 긴축 찬성이 많으면 자신의 정치 생명이 끝나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는 “(긴축안이 통과하면) 총리 집무실에 남아 있지 않겠다”고 말했다. 조기 총선이 실시되는 것이다. 메르켈은 치프라스가 실각한 뒤 새 정권이 들어서면 주도권을 쥐고 3차 구제금융 협상을 벌일 계획이다. 채권단은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제공됐다.

 반면에 긴축안 부결은 메르켈에겐 악몽과 같다. 주도권이 치프라스에게 넘어간다. 치프라스는 “긴축안이 부결되면 그리스가 더 좋은 협상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공언했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 독일 등 채권국이 그리스가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단행하도록 놔두기 어렵다. 독일 재무장관 볼프강 쇼이블레는 그리스 디폴트 직전 자국 정치 리더들에게 “긴축안이 부결돼도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우나 고우나 그리스를 붙잡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렉시트 후폭풍이 세계 경제뿐 아니라 유럽 지정학적인 변수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승리의 여신이 메르켈과 치프라스 가운데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는 안갯속이다. 지난달 24∼26일 카파 리서치의 여론 조사에서는 채권단의 방안에 찬성(47.2%)하는 의견이 반대(33.0%)보다 많았다. 반면 조사기관인 프로라타가 지난달 28~30일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는 반대(54%)가 찬성(33%)을 앞섰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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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