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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찍은 사진 15만 장, 꼭꼭 숨긴 까닭

비비안 마이어는 거울이나 쇼윈도에 비친 자기 모습을 조심스럽게 카메라에 담았다.
비비안 마이어의 ‘자화상, 5월 5일, 1995’.
ⓒVivian Maier/Maloof Collection, Courtesy Howard Greenberg Gallery, New York
[사진 성곡미술관]


무명의 사진가가 카메라를 들고 평생 집요하게 기록한 세상을 엿본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어디에도 발표하지 않으면서 사진에 평생을 건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는 대체 왜 찍었을까. 서울 경희궁길 성곡미술관에서 2일부터 열리는 ‘비비안 마이어-내니의 비밀’에 나온 크지 않은 사진 100여 점은 이 같은 물음표로 여운을 남긴다.



 1926년 미국 뉴욕서 태어난 마이어는 평생 독신으로 보모·가정부·간병인으로 일하며 남의 집을 전전했다. 버는 돈을 아껴 카메라에 쏟아부으며 찍은 사진은 15만 장에 달했다. 만년은 가난하고 쓸쓸했다. 5개의 창고에 나눠 보관했던 사진들은 보관료를 내지 못하자 2007년 경매에 부쳐졌다. 사진은 380달러에 부동산 중개업자이자 향토사 저술가 존 말루프의 손에 들어갔다. 말루프는 SNS를 통해 그녀의 사진을 알리고, 행적을 추적해 다큐멘터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를 제작했고, 그녀의 사진집을 출간했다. 마이어는 이 사실을 모른 채 2009년 요양병원에서 숨진다. 이미 영화와 책으로 알려진 그녀의 이야기다.

 미술관에서는 그녀가 1950∼70년대 찍은 실제 사진을 만날 수 있다. 흑백 78점, 컬러 20점, 밀착 흑백사진 7점, 직접 찍은 비디오 9점, BBC에서 만든 다큐 ‘누가 보모의 사진을 가져갔는가’까지 115점이다. 이렇다할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마이어는 자기가 보았던 시선 그대로 존재한다.

 마이어는 보모 일을 하며 틈틈이 짬을 내 코닥 브라우니 박스 카메라와 롤라이플렉스, 라이카를 목에 걸고 뉴욕과 시카고의 거리를 활보하며 사진을 찍었다. 이 시기 가볍고 휴대가 편한 카메라들이 개발되면서, 사진가들은 거리로 나가 자연스럽게 대상을 만나고 눈높이에서 촬영할 수 있게 됐다. 아마추어라고만 하기엔 진득하고 예리했던 그녀의 사진 속에는 소외된 이들에 대한 동류 의식, 따분한 일상 속 틈새와 미묘한 변화가 담겼다. 거리는 그녀의 극장이었고, 사진은 그녀의 삶이었다.

 후대의 연구자들은 장기간 보모로 일한 집의 안주인이 신문사 사진기자여서 드나드는 사진가가 많았음에도 마이어가 자기 사진을 좀처럼 보여주지 않은 것을 가장 의아하게 여겼다. 먹고 입고 노는 것을 수시로 찍어 SNS에 올리며 인정 욕구를 발산하는 오늘날의 관객을 가장 당혹케 할 지점이기도 하다. 전문 사진가라는 자의식도, 누군가에게 보여주겠다는 욕구도 없는 이 절대 순수의 사진들은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는 어디인지, 예술가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 묻는다. 뒤늦게 발굴된 무명의 천재,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전은 암스테르담의 포암미술관을 비롯해 베를린·런던·오슬로·뉴욕 등지를 순회했다.

 성곡미술관은 동시대 미국 거리 사진의 대표 주자 게리 위노그랜드(1928∼86)의 ‘여성은 아름답다’ 전을 함께 연다. 9월 20일까지. 두 전시 통합 입장권 성인 1만원, 만 13∼18세 8000원. 02-737-7650.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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