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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여성의 아름다움을 위해 살다간 남자

1 전시의 네 번째 테마 ‘디올 얼루어’. 디오르와 그를 잇는 후배 디자이너들이 선보인 독창적 실루엣을 연대기 순으로 배치했다. 맨 앞은 1948년 봄·여름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 공개된 ‘어드벤처’ 앙상블.
3 전시의 문을 여는 서도호 작가의 파사드 작품. 4 왕실 귀족과 톱스타들이 입었던 디올의 드레스들.
2 1947년 디오르의 첫 컬렉션에 나온 ‘바 앙상블’. 20세기 새로운 패션을 선보인 ‘뉴룩’으로 통한다.
영화로 치면 블록버스터의 연이은 개봉이다. 샤넬의 ‘문화 샤넬전’, 루이뷔통의 ‘루이뷔통 시리즈2’에 이어 패션 브랜드의 대규모 전시가 또다시 서울에 상륙했다. 20일부터 8월 25일까지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리는 디올의 ‘에스프리 디올-디올 정신’이다. 행사는 제목 그대로 전설의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디오르(1905~57)의 정신적 DNA를 응축해 선보인다.

그가 예술에서 얻은 영감부터 동시대 아티스트들과의 교감, 18세기 특유의 화려함을 사랑했던 취향까지를 모두 아우르면서, 이것이 어떻게 옷으로 표현되는가를 증명해낸다. 이를 위해 디오르의 과거 작품들은 물론 그의 뒤를 이은 디자이너들의 최근 의상까지를 한 자리에 모았다. 서울로 공수된 드레스만 120여 점. 여기에 서도호·이불·김혜련·김동유·박기원·박선기 등 한국의 주요 작가 6인이 참여한 협업 작품이 함께 했다. 이는 동명의 전시가 열렸던 도쿄·상하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사상 최대 규모다.

쉽게 소비되고 달라지는 패션이 예술이 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든다면 이 전시를 권한다. 무한한 상상력으로 경계를 허물고 시대를 초월하는 디올의 세계가 그 물음에 답할 것이다.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만난 아티스트들과의 교감
전시는 10개의 테마와 라이브러리까지 11가지 공간을 차례로 둘러보는 구조다. 입구로 들어서 어두컴컴한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 건 서도호 작가의 파사드 작품(‘몽테뉴가 30번지 파사드+페시지+디오르’)이다. 속이 비치는 직물과 금속을 이용한 ‘서도호표’ 구조물은 이름 그대로 파리 몽테뉴가 30번지에 있는 디올의 첫 쿠튀르 매장을 옮겨놓은 듯하다. “파리는 쿠튀르고, 쿠튀르는 파리다”라 했던 디올의 말처럼, 자신의 예술적 정체성을 이 도시에서 찾았던 그의 영감을 대변해주는 작품이다.

앞에 서 있으면 환한 빛이 들어오며 파리의 풍경이 투명한 천으로 스며들고, 불빛이 서서히 꺼질 때쯤엔 파리-디올-쿠튀르의 삼각관계가 또한번 연결된다. 구조물 저 안쪽에서 나타나는 의상 한 벌이다. 1947년 2월 11일, 디오르가 이 매장에서 처음 컬렉션을 열며 선보인 ‘바 앙상블’이 그것. 가슴을 부각하고 허리라인을 잘록하게 만든 재킷에 풍성한 스커트를 매치한 이 실루엣은 이후 디올의 시그너처이자 20세기 패션사에 길이 남을 ‘뉴룩’의 시초가 된다.

첫 번째 테마가 장소라면 두 번째는 사람, 그의 예술가 친구들이다. 부모의 만류로 건축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디오르는 대신 갤러리를 열어 평소 동경하는 화가·조각가·기타 예술가들을 세상에 알린다. 스물 셋에 이미 피카소·달리·자코메티·칼더 등의 작품을 전시한 게 그다. 그는 예술가들과 우정을 나누며 어느 순간 생각한다. 나도 나름의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고. 그리고는 드레스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는 이후 예술가의 이름을 딴 드레스를 종종 만들었는데, 전시에 나온 ‘피카소 드레스(49년 F/W 오트 쿠튀르)’도 그중 하나다.

테마는 이제 좀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디오르의 유년 시절, 그리고 이를 대표하는 노르망디 해안도시 그랑빌의 정원이다. 씨앗에 대한 책자를 몇 시간씩 읽고 이름을 모르는 꽃이 없었던 소년은 “모든 여성이 꽃같이 아름답기를 꿈꿨기에” 꽃을 찬양하는 컬렉션을 끊임없이 이어갔다. 하여 전시장 역시 순식간에 꽃밭이 된다. 어깨에서부터 허리 아래까지 덩굴 장식을 두른 흰색의 면 드레스, 분홍 장미 무늬의 ‘로즈 프랑스’ 드레스, 은방울꽃 머리장식 등 꽃이 없는 데가 없다. 한 쪽 벽면에는 김혜련 작가가 장미를 모티브로 그린 연작 시리즈(‘열두 장미-꽃들에게 비밀을’) 12점으로 여기에 답례한다.

5 디오르는 종종 어린 시절을 보낸 노르망디 해안 도시 그랑빌의 정원을 모티브로 삼았다. 전시에서는 그와 후대 디올 디자이너들이 꽃을 주제로 한 작품을 볼 수 있다. 드레스 뒤로 김혜련 작가가 협업한 유화 시리즈가 걸려 있다. 6 디올의 대표 향수 ‘미스 디올’ 테마에 선보인 이불 작가의 협업 작품 ‘Cella’.
7 역대 디올에서 만든 블랙 드레스를 한 자리에 모았다.
“드레스는 건축” 정신이 드러나는 아카이브
복식사에 관심이 있다면 그 다음 테마 ‘디올 얼루어’에 특히 시간을 들일만 하다. 여기에서는 48년부터 2015년까지 디올 아카이브를 연대기순으로 보여준다. 그는 첫 컬렉션에서 가슴·허리·골반 라인을 살리는 ‘뉴룩’을 선보인 이래 10년에 걸쳐 매 시즌마다 새로운 라인을 선보이고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한다. 후대 디자이너들 역시 그 지극히 ‘건축적인’ 의상들을 이어갔음은 물론이다. “나는 드레스가 여성 실루엣의 비율을 찬양하기 위해 세워진 일시적 건축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던 디오르의 정신을 따를 수 밖에 없으리라. 전시는 이를 눈앞에서 확인시켜 준다. 54년 H라인 수트와 드레스부터 2012년 트위드 소재의 뷔스티에 드레스까지 일렬로 늘어선 드레스들의 각기 다른 모양새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이에 비해 ‘디올 아뜰리에’나 ‘디올의 스타들’ 테마는 다소 신선도가 떨어진다. 패션 브랜드 전시에서 흔히 보아온 구성이다. 스케치에서 시작해 일단 광목으로 샘플을 만던 뒤 완성되는 오트 쿠튀르 제작 과정은 장인 정신을 강조하는 클리셰다. 또 세계적 여배우들과 왕실 귀족 여성들이 입었던 드레스를 한 자리에 모아 놓는 것 역시 패션 마케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전시는 뒤로 갈수록 의상을 벗어나 디오르가 영역을 확장시킨다. 패션과 예술과 상업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디올이 첫 컬렉션과 함께 만든 향수 ‘미스 디올’과 이를 모티브로 한 드레스가 한 테마를 구성한다면, 그 다음에는 드레스 컬러에 영감을 받아 핑크에서 레드로 달라지는 립스틱 변천사를 알려준다. 마지막 테마 역시 디올의 또다른 향수 자도르를 배치함으로써, 패션 브랜드 전시가 상업적 마케팅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한계를 보인다. 박기원 작가의 조명 설치작 ‘선샤인’이나 박선기 작가의 설치작 ‘조합체 출현 1506’이 그나마 이를 상쇄하는 최소한의 장치로 기능한다. ●



◇디올 에스프리-디올의 정신:
6월 20일부터 8월 25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알림 1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진행되며, espritdior.com 에서 사전 전시 예약도 가능하다(마지막 입장 오후 5시 30분). 주중 매일 오후 2시와 4시에는 전문 가이드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글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사진 디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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