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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철거민 vs 피고 대한민국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 13구역 6블럭.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한 번도 땅의 온전한 주인이었던 적이 없었다. 1980년대 말 올림픽을 앞두고 미관을 해친다는 핑계로 한 데 모아놓더니, 이제 좀 발붙이고 살아볼 만하니 뉴타운 재개발이란 이유로 정든 공간을 빼앗고 철거를 명령받았기 때문이다. 경찰은 용역을 동원해 철거민 진압작전에 나선다. 버티려는 자와 쫓으려는 자 사이의 전투에서 2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한 명은 경찰, 다른 한 명은 철거민의 아들. 전자의 죽음은 명확한데 후자의 죽음이 석연치가 않다. 아버지는 경찰이 죽였다 하고, 경찰은 용역이 죽였다 하는 진실게임이 벌어진 것. 그렇게 철거현장은 사건현장이자 살인현장이 됐다.

영화 ‘소수의견’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의경 살해 혐의로 체포된 철거민 박재호(이경영)는 무죄를 주장한다. 아들 신우를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였다는 것이다. 정작 사건을 맡은 윤진원(윤계상) 변호사는 심드렁하다. 지방대 출신에 국선변호사인 그에게는 돈 안 되는 사건보다 대형 로펌의 취직이 보다 시급한 문제인 탓이다. 선배 장대석(유해진) 변호사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 때는 운동권이었지만 대의를 좇기보다는 이혼처럼 푼돈이 따박따박 들어오는 편을 선호하는 속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사회부 기자 공수경(김옥빈)은 올 한 해 가장 얘기되는 사건이라며 제대로 들여다볼 것을 요구한다.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100원짜리 국가배상청구소송이 시작되면서 긴장감은 한층 강해진다. 검찰은 사건 수사 기록 열람을 거부하고, 현장에 있던 경찰은 옷을 벗고, 증거도 없는데 범인이라 우기는 용역까지 파면 팔수록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권력의 속살이 하나씩 벗겨질수록 무표정했던 인물들의 속사정이 드러난다. 죽고 못사는 친구 사이인 재판장(권해효)과 담당 검사(김의성)는 진실을 고백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발짝씩 멀어져간다.

굳이 이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언급하는 이유는 이 영화에 딱히 주인공이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판사·검사·기자·경찰·용역 등 다양한 직업군이 총동원돼 본연의 역할을 여과 없이 수행한다. 심드렁하면서도 피가 끓는 열혈 변호사인 윤계상과 능글맞으면서도 강직한 파트너 유해진의 케미는 의외로 훌륭하다. “무엇에 어떤 이의가 있냐”고 묻는 권해효는 판사 연기도 박진감 넘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법정에서 보던 공판과 너무 흡사해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기득권자로서 움켜쥔 것을 놓지 못하는 김의성과 마음을 움직이는 피고인 이경영의 연기 또한 더할 나위 없다.

생생한 캐릭터와 있음직한 스토리 덕에 실화를 바탕으로 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지만 영화는 손아람 작가의 동명 소설『소수의견』을 원작으로 한 픽션이다. 2010년 4월 책이 출간되자마자 영화 판권 문의가 쇄도했다. 하지만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한 용산 참사와 청와대와 경찰청이 공조한 여론조작 등 유사한 장면을 숱하게 목도한 관객에게는 전혀 낯설지가 않은 현실이다. 그래서 자신의 입장에 맞춰 자연스레 이야기에 녹아들 수 있다. 내가 공 기자에 빙의해 127분간 영화를 관람했던 것처럼 누군가는 변호사에 몰입하고, 또 누군가는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의 입장에서 지켜볼 수 있단 얘기다. 극도로 선한 사람도 없지만 극도로 나쁜 사람도 없다는 감독의 지론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인물을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다는 것은 근래 법정영화에서 보기 드문 미덕이다.

사실 이 영화는 2013년 촬영을 마쳤지만 개봉이 2년이나 늦춰졌다. 완성품이 너무 도발적이었던 탓일까. 대형 배급사인 CJ E&M이 시네마서비스로 배급권을 이양하면서 지연됐다. 하지만 영화에게는 오히려 약이 된 듯하다. 설익은 밥이 아닌 뜸이 제대로 들어 농익은 매력을 발산하니 말이다. 이쯤 되면 “공분을 느끼는 영화가 아니라 공감되는 영화가 되면 좋겠다”는 김성제 감독의 바람은 어느 정도 실현된 듯 하다. 비록 세상의 관심은 늘 다른 사건으로 넘어가기 마련이고 여전히 철거는 계속되고 있지만 말이다. 절대 소수만 봐서는 안 될 영화다. ●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시네마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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