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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민이 불행한 나라’ 만드는 당·청 갈등

경기 침체에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에다 가뭄까지 겹친 삼중고로 민심이 뒤숭숭한 가운데 불거진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갈등은 국민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는 이미 휴업 상태다. 야당이 대정부 투쟁을 선언하고 국정 논의를 전면 거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경기 대책과 각종 개혁 작업이 시급한데도 정국은 혼미에 빠졌다.

 지금의 정권은 어떤 구조인가. 행정부는 과반의 지지로 당선한 대통령이, 입법부는 역시 의석 수 과반을 점유한 여당이 각각 이끌고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대립으로 국정 교착상태에 빠지기 쉬운 여소야대 구조가 아니다. 그런데도 국회가 마비되고, 정국이 얼어붙었다. 집권여당 내부 갈등 탓에 말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5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정치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정조준해 ‘자기 정치를 앞세우는 사람’이라며 비난했다. 국민적 사안을 다뤄야 할 국무회의에서, 그것도 전 국민이 지켜보는 방송 카메라 앞에서 과연 국정 최고 지도자로서 적절한 발언이었나. 메르스 사태에 초동대응을 제대로 못한 방역당국에 대통령이 그 정도의 추상같은 질책을 한 적이 있나.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원고지 29장 분량의 연설 대부분을 정치권 비판에 집중했다. ‘배신의 정치’ ‘국민의 심판’이라는 강도 높은 수위의 표현을 써가며 단호한 표정으로 정치권을 비난했다. 대통령이 민생보다 기득권과 당리를 우선시하는 정치권에 답답함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은 그 자체가 민감한 정치적 행위다.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면 모를까, 국민이 보는 앞에서 감정을 분출하거나 화를 내면 곤란하다. 자칫 국민에겐 대통령의 단호한 표정보다 격앙된 어조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다. 그런 식의 화법으론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여당 지도부의 행태에도 문제가 많다. 당·청 소통 없이 야당에 이끌려 국회법 수정안을 덜커덕 내놓고, 대통령의 비난을 듣고서야 몸을 낮추는 모습은 한국 정치의 수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유 원내대표는 26일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대통령께서도 저희에게 마음을 푸시고 마음을 열어주길 기대한다”고도 했다. 이 역시 적절한 처신이었는지 많은 국민이 의아해한다. 책임질 일을 했으면 책임지고 그만두면 될 일이다. 유 원내대표는 인사권이 대통령에게 쥐여 있는 관료인가. 박 대통령이나 유 원내대표나 같은 당 소속이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내부적으로 정리하면 된다. 왜 국민에게 민망한 장면을 보여주나.

 그 같은 당·청 갈등은 사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이번 국회법 수정안은 모법의 취지에 어긋나는 행정명령으로 ‘법률 하극상’을 일으키곤 했던 행정부 관행을, 위헌 논란이 있는 입법부 권한으로 대체하려는 시도였다. 비정상으로 비정상을 대신하려다 실패한 셈이다. 이왕 거부권이 발동된 이상 입법부와 행정부 모두 이 문제에 대한 적절하고도 정상적인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도 당·청 갈등에 가로막혀 건설적인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당장의 문제는 멈춰 버린 국회다. 민생 법안은 물론 추가경정 예산안에 대한 논의마저 중단되거나 부실하게 진행될 위험이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그게 거부권 정국보다 더 큰 파국이다. 당·청은 그 파국을 막기 위해 출구전략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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