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세계화는 어떻게 진화했나] 영국 혁신가들이 보여준 독특한 동물자원 활용법

그림 1 헨리 토마스 앨켄, 『불 베이팅』, 1820년. 기운 센 수소를 말뚝에 묶어놓고 개가 소의 주둥이를 물어 소를 탈진시켜 쓰러뜨리는 경기를 묘사했다.
그림 1은 영국에서 18~19세기 초에 큰 인기를 끌었던 ‘불베이팅(bull baiting)’이란 오락을 표현한 것이다. 기운 센 수소를 말뚝에 묶어놓고서 그 주둥이를 개가 물도록 하여 소를 탈진시켜 쓰러뜨리는 경기다. 소는 개를 뿔로 치받거나 격렬하게 흔들고 내동댕이치는데, 그러면 다음 개를 데려와 소를 물게 해서 경기가 계속된다. 사람들은 몇 번째 개가 소를 쓰러뜨리느냐를 놓고 내기를 건다. 이 잔인한 오락은 18세기 말에 영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세기 초에 경기의 잔인성에 대한 비판이 높아졌고, 그 결과 1835년에 ‘유혈스포츠’를 금지하는 법률이 제정됨으로써 공식적으로 불법화되었다. 그러나 이 잔혹한 오락은 이미 영국을 벗어나 해외로 알려졌기 때문에 이후에도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곤 했다.

<27> 18세기 영국에서 이뤄진 개량과 진보

18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이라는 엄청난 변화를 앞두고 있었다. 이미 사회 분위기는 새로운 시대에 맞게 바뀌고 있었다. 사람들은 해외에서 수입된 차, 커피, 설탕의 맛과 면직물, 견직물의 멋에 매료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소비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면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도 감수했다. 또한 시장에서 받아들여질 상품을 발명하거나 개량할 능력이 있는 이들은 앞 다투어 개발과 생산에 뛰어들었다. 농업부문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가축의 품종개량이 가져다주는 효과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림 2 토머스 위버, 『뉴버스 황소』, 1812년
가축 품종개량 효과에 열광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하기 훨씬 전이었지만, 혁신적 마인드를 가진 농부들은 유전적 형질이 다른 개체군을 선택교배(selective breeding)하는 실험에 적극 나섰다. 품종개량에 탁월한 농부들은 오늘날의 첨단산업 전시회에 해당하는 농업경진대회에 가축을 출품하였고, 여기에서 수상한 품종은 오늘날의 최고사양 제품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렸다. 선택교배의 성과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소의 몸집이 어느 정도 커졌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 도축용으로 판매된 황소의 평균 무게가 1700년에는 약 170kg이었는데, 1786년이 되면 약 380kg으로 증가했다. 한 마리의 소로부터 두 배 이상의 고기를 얻게 된 것이다. 그림 2는 토머스 위버(Thomas Weaver)가 그린 뉴버스 황소(Newbus Ox)라는 품종의 모습이다. 왼편의 농부는 당대의 혁신가로서 명예와 부를 동시에 누릴 수 있었다, 소뿐만 아니라 돼지·양·닭도 품종개량의 효과가 뚜렷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각지로부터 유전적 형질이 뛰어난 품종들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교잡육종을 한 결과였다.

다시 불베이팅으로 돌아가 보자. 불베이팅에 가장 적합한 개는 어떤 형질을 지녔을까? 소의 주둥이를 잘 물려면 개의 주둥이가 뭉툭하게 생겨야 한다, 개를 내동댕이치고 땅에 짓이기는 소의 공격으로부터 잘 버티려면 개의 다리가 짧아야 유리하다. 또한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완강한 근성이 있어야 한다. 이런 스펙에 맞춰 개량된 이상적인 개가 바로 불독(bulldog)이었다. 불독이야말로 혁신과 개량의 시대에 오락 분야에서 영국인들이 이룬 특별한 성취였다.

생물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기술이 향상되자, 동물의 활용 범위가 품종개량을 넘어서 한층 높은 수준으로 확대됐다. 가장 뛰어난 혁신은 의학 분야에서 나왔다. 외과의사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치명적 질병인 천연두를 정복하고자 오랜 시간 노력을 기울였다. 천연두 퇴치법이 전적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오스만제국에서 사용되던 접종방법이 이미 1721년에 영국에 처음 소개되었고, 다시 1770년대에 우두(牛痘), 즉 소의 두창을 사람 피부에 접종하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1796년 제너가 우두를 접종하면 면역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고, 소가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얻은 두창도 접종하면 면역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밝힌 것을 계기로 종두법은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백신(vaccine)’이란 말은 라틴어로 소를 의미하는데, 제너가 소의 두창을 이용했기 때문에 그렇게 명명되었다. 훗날 프랑스의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에 의해 인위적으로 면역을 주기 위해 약화시킨 병원체를 접종하는 것을 통칭하는 용어로 정착했다. 제너의 예방접종법은 이후 유럽은 물론 아메리카와 아시아 등 전 세계로 전파되어 수많은 인명을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구하게 되었다.

그림 3 제임스 길레이, 『우두(Cow Pock)』, 1802년.
제너의 종두법, 가장 뛰어난 의학 혁신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종두법을 순조롭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새로운 발명과 혁신이 반대에 직면하지 않은 채 전파되는 사례는 역사적으로 드물지 않은가. 제너의 백신도 당시에 만만치 않은 반대에 부딪혔다. 그림 3은 1802년 반(反)백신협회(Anti-Vaccine Society)라는 단체에서 저명한 풍자화가 제임스 길레이(James Gillray)가 발표한 그림을 보여준다. 제너가 중앙에 앉아있는 여인의 팔에 주사기로 우두를 접종하고 있다. 제너의 왼편으로는 접종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려있고, 오른편에는 이미 접종을 마친 사람들이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접종을 끝낸 사람들의 입, 코, 귀, 팔, 엉덩이에서 작은 소의 형상이 튀어나오고 있다. 우두를 맞으면 예상치 못 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다행히도 백신을 맞은 사람들에게서 실제로 이런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중의 우려가 해소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러야 했다.

신기술에 대한 저항과 우려는 종두법의 사례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이런 움직임은 더욱 빈번하게 나타났다. 새롭게 제작된 증기기관과 직물기계, 새로 건설된 철도와 공장, 새로 사용된 석탄과 금속·비금속 자원이 사람들을 그간 익숙했던 생활환경과 노동환경으로부터 단절시켰다. 사람들은 변화의 종착점이 어디일지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문학적으로 보여준 작품으로 메리 셸리(Mary Shelly)가 1818년에 출간한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들 수 있다. ‘근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소설의 줄거리는 익히 알려져 있다. 스위스의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이 과학적 연구에 몰두한 끝에 죽은 몸뚱이에 생명을 불어넣는 기술을 개발한다. 그는 키가 2.4m나 되는 인물을 창조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인물은 흉측한 외모에 엄청난 힘을 지닌 존재로, 창조자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증오와 불신으로 그의 동생과 신부 등 주변 사람들을 잔인하게 해친다.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괴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은 복수심에 가득 차서 괴물을 뒤쫓아 북극까지 가지만 결국 괴물을 없애지 못한 채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전례 없는 속도의 기술진보를 목격한 사람들은 이 기술진보가 인류에게 장밋빛 미래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확신했을까? 가축의 몸집을 두 배로 키우고, 불독을 개발하고, 종두법을 대중화한 이들은 미래를 밝게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 셸리에게는 미래가 낙관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과연 산업혁명에 불을 댕긴 근대의 프로메테우스 인간은 자신이 시작한 기술진보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우리가 궁극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은 영국을 뒤이어 19세기와 20세기에 공업화에 들어선 서구와 아시아의 모든 후발공업국에서 재등장했다. 그리고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조차도 아직 확실한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송병건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마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제사학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세계경제사 들어서기』(2013) 『경제사:세계화와 세게경제의 역사』(2012) 『영국 근대화의 재구성』(2008) 등 경제사 관련 다수 저서가 있다.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