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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침묵은 금, 미소는 천금

최승호 도모브로더 이사
 

작년에 개봉한 '명량'의 관람객은 1700만 명을 넘는다.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가 약 2600만 명 정도임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관람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명량'의 주인공 이순신 장군이 격침시킨 적의 함선은 총 몇 척일까? 여기에 질문을 추가해 보자.

A. 200척을 넘는가?
B. 1200척을 넘는가?

정확히 답을 모르는 상태에서 A와 B 중 어떤 질문에 노출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추정치는 매우 달라진다. 왜냐하면 배가 닻(anchor)을 내린 곳에 머물 듯 우리의 뇌는 어떤 값을 추정할 때 앞서 주어진 값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앵커링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한 연구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경매 실험을 진행하였다. 연구자는 학생들에게 먼저 자신의 사회보장번호 끝 두 자리를 적도록 한 후, 물품에 대한 입찰가격을 제시토록 하였다.

실험결과, 사회보장번호 끝 두 자리가 매우 높은 학생들(80~99)은 아주 높은 가격을 제시한 반면, 끝 두 자리가 매우 낮은 학생들(1~20)은 아주 낮은 가격을 제시하였다. 경매물품과 아무 관련 없는 숫자가 먼저 노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입찰가격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연구자는 같은 실험을 기업 임원과 관리자를 대상으로 진행했는데,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앵커링 효과는 거래금액이 크고 관여도가 높은 상황에서도 발생할까? 일반적으로 부동산 거래금액은 크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은 주의와 노력을 기울인다. 이렇게 관여도가 높은 부동산 거래를 주제로 한 실험연구에서도 평범한 사람들은 물론, 거래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조차 앵커링 효과에 쉽게 영향 받았다.

앵커링 효과는 우리의 뇌가 주변 상황을 미처 파악하기 전에 사람들의 판단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빈민가 신생아들의 생존에 필요한 영양제를 보내기 위한 기부 캠페인이 진행된다고 가정해보자.

A. 천 원이면 아기를 살릴 수 있습니다
B. 만 원이면 아기를 살릴 수 있습니다

A와 B는 표현상의 금액차이만 있을 뿐 기부금액에 특별한 제약을 두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보다 B에 노출되었을 때 사람들의 개인당 기부금액이 더 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B의 앵커링(만원)이 부담되어 사람들이 기부 자체를 포기할 가능성도 동시에 높아진다. 이처럼 동일한 상황이라도 앵커링에 따라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다른 행동을 보인다.

문제는 앵커링 효과가 고도의 주의력과 판단력을 필요로 하는 법정에서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동일사건에 대한 검사의 구형형량이 12개월일 때와 34개월일 때, 판사의 선고형량이 8개월이나 차이 났다. 또 다른 실험연구에 의하면, 강간사건을 재판 중인 판사들이 쉬는 시간에 기자들로부터 전화로 형량이 ‘3년 이하인가’ 또는 ‘1년 이하인가’ 중 어떤 질문을 받는 지에 따라, 선고형량이 각각 평균 33개월과 평균 25개월로 나타났다.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법관의 판단이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기자의 질문에 영향 받은 것이다.

이처럼 앵커링 효과는 때와 장소,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일상에서 가장 빈번한 앵커링 중의 하나가 첫인상이다. 낯선 이의 첫인상은 기억 속에서 가장 연관성 높은 경험과 이미지들을 끌어오고 그 과정에서 ‘좋고 싫음’의 감정까지 쉽게 유발한다. 생김새가 어떻든 활짝 웃는 얼굴은 좋은 앵커링으로 작동할 확률을 높인다. 침묵이 금이라면 미소는 천금이다.

최승호 도모브로더 이사 james@brodeu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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