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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혼인 유지, 서로 고통” vs “재산 분할 등 여건 미성숙”

“이미 끝난 관계를 법적으로 허울만 유지시키는 것은 현실적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원고 측 장순재 변호사)

 “평생 정조를 지키며 남편과 자식만 바라보고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사람이 인간으로서 마지막 존엄성을 지킬 수 있게 해달라.”(피고 측 박경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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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을 피운 배우자도 이혼 청구를 할 수 있을까. 26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공개변론에서 파탄주의 입장(원고)과 유책주의 입장(피고)으로 갈린 양측 대리인들은 2시간 가까이 격론을 벌이며 팽팽히 맞섰다. 심리 대상이 된 사건은 A씨(68)가 본처(66)를 상대로 낸 이혼 소송이다. A씨는 1976년 결혼해 세 자녀를 뒀지만 96년부터 B씨를 만나 내연 관계가 됐다. B씨와의 사이에 아이까지 둔 A씨는 2000년부터 아예 집을 나와 B씨와 살기 시작했다. 벌써 15년째다. 다만 본처에게 생활비와 자녀교육비는 보냈다. 신장병을 앓게 된 A씨는 2011년 본처의 자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이참에 관계를 끝내겠다”며 이혼 소송을 냈다.

 원고 측은 이미 끝난 혼인 관계를 법률적으로 묶어놓아 봤자 소용이 없다는 현실론을 꺼내 들었다. 유책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50년 전 대법원의 판례를 이제는 파탄주의로 바꿔야 한다는 취지다. 김수진 변호사는 “이혼을 막기 위해 아무리 강력한 정책을 시행한다 해도 양 당사자 모두에게 고통만 줄 뿐”이라며 “지금은 유책주의 판례가 막으려는 ‘축출(逐出) 이혼’이 더 이상 사회적 문제가 되는 시대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예외적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인정한다고 해도 (법원에서 실제로 인정된 건) 지난 10년간 3건에 불과했다”며 “파탄주의를 채택하면 서로 잘못을 들춰 갈등이 커지는 현행 이혼 재판의 문제점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피고 측은 혼인이라는 계약을 깬 쪽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권리 남용에 해당되며 아직 제도적 여건도 성숙하지 않았다고 받아쳤다. 조경애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법률구조부장은 “지난 2년간 배우자로부터 이혼을 강요당한 159명의 상담 사례를 분석한 결과 여성이 86.8%로 압도적으로 많았다”며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소득과 재산이 없는 경제적 약자”라고 설명했다. 이어 “위자료를 상향 조정하고 이혼 후 부양제도를 도입하는 등 제도적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 한 파탄주의를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강조했다.

 양측의 공방을 지켜본 대법관들은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원고 측에 “파탄주의를 도입하면 버림받는 쪽은 생계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물었다. 김 변호사는 “이혼 후 부양제도가 없으므로 재산 분할을 할 때 부양적 요소를 보다 더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사건의 주심인 김용덕 대법관도 원고 측에 “파탄을 인정할 기준은 어떻게 정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참고인인 이화숙 연세대 명예교수는 “별거 기간이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혼 합의가 없었을 경우 프랑스는 2년, 영국은 5년, 독일은 3년 동안 별거하면 파탄이 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민일영 대법관은 피고 측에 “전체 이혼의 80%를 차지하는 협의이혼에서는 잘못 여부를 따지지 않고 이혼을 인정하는데 재판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모순 아니냐”고 물었다. 피고 측 양소영 변호사는 “재판상 이혼에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불허하는 원칙이 있어서 협의이혼·조정 등에서 잘못이 없는 쪽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공개변론이 진행된 대법정의 180석 좌석은 방청객들로 가득 찼다. 공개변론이 생중계된 포털 사이트에는 네티즌 130여 명이 댓글을 달았다. 아이디 ‘toco’를 쓰는 네티즌은 “파경에 책임이 있는 자에게 이혼할 권리를 주는 건 악용될 소지가 너무 크다”는 의견을 올렸다. 아이디 ‘JURI’는 “이혼은 가능하게 하되 위자료와 재산 분할 제도를 현실화하자”고 제안했다. 대법원은 공개변론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올해 안에 최종 결론을 내린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유책(有責)주의와 파탄(破綻)주의=유책주의는 바람을 피우는 등 잘못한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고 보는 판례. 파탄주의는 잘못과 상관없이 관계가 파탄 났으면 이혼을 허용하는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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