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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수퍼 엘니뇨’ 탓 가뭄 극심 … 지구촌 물 전쟁

물 부족으로 멸망 위기에 처한 암울한 미래를 그린 영화 ‘매드맥스’. [사진 워너브러더스코리아]
26일 전국에 모처럼 단비가 내렸다. 하지만 42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을 해갈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뭄은 우리만의 고통이 아니다. 지구촌이 가뭄으로 고통 받고 있다. 기상학자들은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사막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극심한 물 부족에 시달리는 22세기 인류의 암울한 미래를 그린 영화 ‘매드맥스’를 연상케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중부 센트럴밸리에서 아몬드 농장을 하는 짐 야스퍼는 최근 아몬드 나무 5만1000그루를 베어냈다. 캘리포니아를 강타한 지독한 가뭄으로 과거보다 두 배 이상 물값이 들어 농장을 유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파키스탄 최대 도시 카라치에서는 45도를 웃도는 더위로 26일까지 1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역시 날이 가물고 폭염이 계속되며 벌어진 일이다.

 가뭄은 사회 불안을 야기한다. 가뭄이 지속된 나라 중에는 사회 불안이 심화돼 전쟁까지 겪은 사례도 있다. 시리아 내전이나 수단 내전, 나이지리아 정정 불안의 배경에 가뭄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뭄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은 엘니뇨 현상이다. 엘니뇨는 적도 부근 바닷물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엘니뇨 감시 구역(북위 5~남위 5도, 서경 120~170도)의 해수면 온도가 평균 수온보다 섭씨 0.5도 높으면 엘니뇨가 시작됐다고 보는데 올해는 이 구역 수온이 평년보다 1.5도 이상 높다. 과학계에서는 이번 엘니뇨가 18년 만에 찾아온 ‘수퍼 엘니뇨’가 될 수 있다고 관측한다. 지난해부터 심술을 부려온 엘니뇨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 가뭄을 불러왔다. 중국신문망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태국·필리핀의 강우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40% 줄었다. 필리핀 기상청은 국토의 50%가 엘니뇨 영향권 아래 놓여 피해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엘니뇨의 뒤에는 지구온난화가 있다. 영국 런던유니버시티칼리지(UCL) 연구팀에 따르면 세계 200여 개 국가에서 1800년대 후반에 비해 평균 기온이 2도 이상 올랐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금처럼 가뭄이 지속되면 평균 기온이 4도 올라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앤서니 코스텔로 UCL 글로벌보건연구센터 소장은 “지구온난화로 가뭄과 물 부족 현상이 심해지면 농작물 등 먹거리가 부족해지고 질병도 창궐한다”고 설명했다.

 대표적 가뭄 피해 지역이 캘리포니아다. USA투데이에 따르면 북미 지역에서 가뭄이 가장 극심했던 시기는 1150~1160년이었다. 1159년에는 북미의 55%가 가뭄을 겪었다. 그런데 1800년대 13.5%까지 내려갔던 이 비율은 지난해 49%까지 올랐다. 역대 최고 수준에 육박한 것이다.

 4년째 가뭄이 이어지는 캘리포니아의 펠리시아 마커스 수자원관리위원장은 “캘리포니아가 가뭄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올림픽 수영장 1670만 개에 해당하는 11조 갤런(약 43조L)의 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겨울에 내리는 눈으로 해갈을 기대했던 캘리포니아는 지난해 강설량이 평년의 5%에도 못 미치면서 결국 올해 4월 물 사용량을 25% 이상 줄이는 강제 절수 명령을 내렸다. 167년 만에 처음이다. 캘리포니아에선 수영장 물을 함부로 버리는 등 물 낭비가 적발되면 1000달러(약 110만원)의 벌금을 낸다. 이렇다 보니 캘리포니아에서는 물을 쓰지 않고 머리를 감을 수 있는 드라이 샴푸나 물이 거의 필요하지 않은 세척제의 소비량이 다섯 배가량 늘었다고 시장 조사기관 유로모니터가 전했다.

 ‘물 먹는 하마’인 잔디를 가꾸는 건 사치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축구장 650배 크기의 잔디밭을 싹 걷어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최근 캘리포니아의 ‘금쪽같은 잔디 위’에서 골프를 즐겼다가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설상가상으로 캘리포니아는 산불 피해까지 보았다. 가뭄 탓에 대기가 건조하다 보니 산불이 자주 발생하고 불길도 잘 잡히지 않는다. 이번 달 캘리포니아 인근 국유림에선 산불로 여의도 면적의 15배에 달하는 숲 44.5㎢가 탔다.

캘리포니아는 올해 가뭄 때문에 27억 달러(약 2조9000억원)의 피해를 볼 것으로 추산한다. 생물의 다양성도 위협받고 있다. 수전 해리슨 UC데이비스 교수는 타임에 “가뭄이 극심해지면서 캘리포니아 토종 야생화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가뭄 지역인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에서는 다음달 1일부터 세차와 정원 물 주기가 낮시간 동안은 제한된다. 절수 규정을 어길 때는 최대 750달러(약 82만원)까지 벌금을 내야 한다.
 
① 공기를 활용해 물을 만드는 기계. ② 공기에서 물을 뽑아내는 풍력 터빈 장치. ③ 휴대전화로 토양 수분을 체크하는 스마트 관개. [파이낸셜타임스]

 세계 담수(淡水)의 12%를 차지하는 브라질은 84년 만의 가뭄으로 수백만 명이 고통 받고 있다. 3년 연속 강우량이 역대 최저를 기록하면서 상파울루 저수지들의 물 보유량은 2014년 40%에서 올해 27%까지 낮아졌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가뭄은 목숨을 앗아가거나 질병을 일으킨다. 인도는 50도가 넘는 폭염으로 올 들어 2300여 명이 사망했다. 파키스탄에선 계속된 폭염으로 지난 25일까지 사망자가 838명 나왔다. 열사병 환자만 3000여 명에 달한다. AP통신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에선 가뭄 탓에 기관지염·천식 등 호흡기 관련 질환이 늘었다. 캘리포니아 일부 지역은 호흡기 환자가 2010년 대비 25% 증가했다.

 경제 피해도 막대하다.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가뭄·홍수 등 물과 관련된 이상기후로 2000~2014년 매년 330억 달러(약 36조4000억원)의 손실을 봤다. 이 기간 피해를 본 사람은 23억 명에 달한다.

 농업의 피해가 특히 컸다. 세계은행이 20여 년간 아프리카 짐바브웨와 에티오피아에서 강우량과 경제성장률 간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결과 가뭄이 극심해지면 농업 생산이 줄고 경제성장 둔화로 이어졌다. 농·축산업에 물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추 한 포기를 키우는 데는 물 13L, 달걀 한 개를 얻으려면 물 189L가 든다. 캘리포니아에서는 “고기와 채소가 들어간 햄버거 하나를 덜 먹는 게 물을 아끼는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농업이 국내총생산(GDP)의 18%를 차지하고 인구의 67%가 농민인 인도가 가뭄으로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북한도 모내기 한 논의 30%가 피해를 보았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북한에서 가뭄이 심해지자 소금 성분이 섞인 물까지 논밭에 끌어다 쓰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농작물 생산이 줄며 식품 가격이 급등하는 ‘애그플레이션’(농업과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도 가뭄 탓에 심화되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가 주산지인 아몬드 등 견과류와 오렌지·레몬 등 감귤류 값이 치솟고 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캘리포니아가 세계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아몬드의 경우 국제 가격이 파운드(450g)당 5.2달러로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오렌지와 레몬 소매가는 전년 동기 대비 20% 올랐다.

 가격이 오르면 농가에 좋을 듯하지만 물 대는 비용이 크게 늘어 결국 손해 보는 장사다. 일부에선 물이 많이 드는 아보카도를 없애고 가뭄에 강한 올리브를 심는다.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카운티에서는 지난 6년간 물 가격이 두 배 이상 뛰며 오렌지보다 물이 25% 적게 드는 포도 농가로 전업하는 경우가 늘었다.

 인도산 호두는 지난해보다 10% 이상 값이 뛰었다. 닛케이는 가뭄 때문에 아몬드 등이 들어가는 빵·과자 가격도 영향을 받는다고 전했다. 필리핀은 올해 곡물 대란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 쌀 25만t을 추가 수입했다. 가뭄이 심해지면 수입량을 늘리기로 했다.

 곡물 값 상승은 육류 가격에도 영향을 준다. 미국에서 립아이(rib eye) 2개가 든 소고기 한 팩은 과거 20달러였지만 이제는 30~40달러 선으로 가격이 뛰었다. 가뭄 탓에 사료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가뭄은 제조업에도 영향을 준다. 일례로 반도체 칩 한 개를 생산하는 데 38L의 물이 필요하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800여 개 데이터 센터를 가동하려면 올림픽 수영장 15만8000개에 해당하는 물이 들어간다.

 극심한 가뭄은 정치·사회적 불만으로 이어져 전쟁을 촉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시리아는 2006년부터 내전 발생 직전인 2010년까지 최악의 가뭄을 겪었다. 흉작→식료품 가격 상승→극심한 생활고로 이어지는 고통의 굴레 속에 시리아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사회적 불만이 내전으로까지 번졌다는 분석은 그래서 나왔다. 나이지리아의 극심한 가뭄이 경제난을 초래했고, 그 결과 좌절한 이들이 현지 무장테러단체인 보코하람에 가입했다는 해석도 제기된 바 있다.

 기상학자들은 이번 가뭄이 내년 1월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본다. ‘대가뭄(Megadrought)’의 전망도 나온다. 미 애리조나대와 코넬대 공동 연구팀은 미 남서부와 중부 대평원 지역의 경우 2050년까지 최소 35년 이상 지속되는 대가뭄의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하늘에선 비가 안 오는데 땅속의 물은 갈수록 줄어든다. 세계인들이 쓰는 용수의 35%를 제공하는 지하 대수층(帶水層·물을 보유하고 있는 지층)의 3분의 1은 고갈이 진행 중이다. 미 항공우주국이 2003년부터 10년간의 위성 정보를 분석한 결과 캘리포니아 센트럴밸리는 고갈이 빠르게 진행 중인 고위험군에 속했다. 캘리포니아는 용수의 60%를 대수층에 의존한다.

[S BOX] 공기서 물 추출, 오수 재활용, 스마트 관개 … 물 절약 신기술 속출

가뭄을 이기기 위한 기술 마련에 세계가 부심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국토의 60%가 사막인 이스라엘의 가뭄 극복법을 벤치마킹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이스라엘 담수화 기술 등을 캘리포니아에 지원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한 뒤 “샤워도 혼자 하지 말고 두 명이 같이 하라”고 권할 정도로 물이 부족했다. 그러나 57년 ‘사막에 꽃을 피우자’는 생각으로 만들어진 키부츠(집단농장)가 획기적으로 물을 절약하는 관개(灌漑)기술을 도입하자 불모지는 석류·오렌지가 나는 옥토로 바뀌었다. 애니메이션 ‘니모를 찾아서’에 나오는 크라운 피시도 이스라엘에서 양식에 성공했다.

 이스라엘은 해수의 담수화와 오수 80% 재활용, 누수 사전 탐지 등으로 가뭄을 이겨 왔다. 물방울을 똑똑 떨어지게 해 작물에만 물을 공급하는 점적 관수는 이스라엘 농가의 75%가 도입했다. 누수만 잘 막아도 가뭄 극복은 가까워진다. 중동의 누수율은 50%, 영국은 35%인 반면 이스라엘은 10%에 불과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가뭄을 이기고 물을 절약할 신기술로 ▶공기에서 일 평균 7000L의 물을 뽑아내는 풍력 터빈(네덜란드) ▶소변에서 물만 뽑아내 재활용하고 대변은 전기 생산에 쓰는 ‘물 없는 화장실’(미국) ▶기존보다 물을 70% 절약하는 세탁기(영국) ▶센서를 통해 토양 수분을 휴대전화로 체크하는 스마트 관개 농업(스위스) 등을 꼽았다. 스마트 관개로 수확량은 30% 늘었고, 물 사용량은 50% 줄었다고 FT는 보도했다. 중국은 가뭄이 심한 충칭(重慶) 등 16개 도시를 ‘스펀지 시범도시’로 정하고 인프라 투자를 지원키로 했다. 빗물을 스펀지처럼 저장했다가 가뭄 때 쓴다는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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