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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 ‘메이드 인 개성’ … 품질은 백화점급, 값은 절반

서울 안국동에서 개성공단 제품을 만나 볼 수 있는 개성상회가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점심시간에는 인근 직장인이, 오후엔 주민들이 많이 찾는다. 북한 근로자들이 만든 제품을 싼값에 살 수 있다고 개성상회 측은 설명한다. [뉴시스, 개성상회]

“법인장(사장) 선생님, 첫 대면인데 거지처럼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계시면 어떡합니까.”

 2012년 개성공단에서 바지를 만드는 K기업의 최석진(가명) 사장에게 북측 근로자가 건넨 말이다. 북한에 자사 제품을 홍보하고 싶어 일부러 청바지를 입고 나타난 그에게 북측 여성 근로자는 “청바지를 입으면 날라리 같으니 입지 않았으면 한다”고 충고를 했다. 웃음이 터진 최 사장은 “알겠습니다”라고 답했고, 그 뒤로는 정장 차림으로만 개성공단을 찾았다고 한다. 김진향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교수가 펴낸 『개성공단 사람들』(내일을 여는 책)의 한 대목이다. 이달 초 발간된 이 책은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문을 연 ‘개성상회’의 인기 아이템 중 하나다.

 개성상회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 중 12개 사가 2000만원씩 갹출해 개점한 개성공단 제품 판매 전문점이다. ‘서울에서 만나는 개성’이란 콘셉트를 내세웠다. 총 면적 132㎡의 2층짜리 건물에 입주한 매장의 입구는 ‘철길’로 꾸몄다. 철길 위엔 ‘철길 따라 세계로’라는 문구도 새겨져 있다.

 이종덕 개성상회 부이사장은 “통일이 된 뒤 우리 제품을 싣고 철길을 따라 유럽까지 진출하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점포 구석구석에는 참여 기업들의 땀과 열정이 배어 있다. 탈의실 커튼으로 걸려 있는 청바지 원단은 기업에서 기증받은 것이고 인테리어 공사도 기업 관계자들이 직접 했다. 개성상회 로고 역시 각 기업의 디자이너들이 직접 고안했다. 월세 부담이 700만원이나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개점 비용을 줄여보자는 절실함 때문이었다.

매장 내부. [뉴시스, 개성상회]
 개성상회는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제품을 유통 마진 없이 판매한다. 그래서 시중가의 절반 정도로 가격이 싸다. ‘100% 캐시미어 코트’에 붙어 있는 가격표엔 ‘29만9000원’이라 적혀 있다. 백화점 남성복 매장에 문의했더니 “100% 캐시미어 코트는 적어도 70만원은 줘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양복 한 벌 가격도 대개 30만원 안팎이다. 부근을 지나다 쇼윈도에 전시된 여성 의류에 마음이 끌려 매장을 찾았다는 신미영(61)씨는 “원단의 질도 좋고 무엇보다 바느질이 꼼꼼하다”며 “특히 가격이 너무 저렴해 놀랐다”고 말했다. 신씨가 둘러본 여성용 상의는 한 장에 1만원이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개점 첫날인 17일 이곳을 직접 방문했다. 그는 “남북 근로자가 함께 만든 개성공단 제품을 우리 국민이 입는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며 개성상회를 “통일을 피부로 체험하는 통일 체감장”이라고 표현했다. “질이 참 좋다”며 의류도 몇 점 구매했다.

 개점한 지 열흘이 채 안 됐지만 단골 고객도 꽤 생겨났다고 한다. 이들 대부분은 이웃 주민이다. 개성상회 옆에서 수퍼마켓을 운영하는 최범진(63) 사장은 “이제부터는 옷을 개성상회에서만 사려고 한다”며 “백화점에서 파는 옷과 질은 비슷하고 가격은 절반도 안 되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했다. 하지만 처음 개점을 준비할 때에는 보수적인 이웃 주민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실제로 한 60대 남성은 “북한과 관련이 있다고 하니 좀 께름칙했다”며 “하지만 막상 개점을 하니 좋은 일뿐”이라며 웃었다.

개성공단 제품은 이미 백화점이나 각종 업체로 납품되고 있다. 그럼에도 입주 기업들이 개성상회를 따로 내기로 한 데는 ‘개성공단=골칫거리’라는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한 의도가 강했다고 한다. 개성공단에서 7년간 의류 제품을 만들어온 제정오 개성상회 운영이사는 “개성과 관련된 어두운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일부러 밝은 흰색 톤으로 매장을 꾸몄다”며 “개성공단 임금 문제는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지만 생산 현장에선 웃음꽃이 핀다”고 전했다. 지난해 북한은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5.18%포인트 올리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했다. 그 뒤 남북 당국 간 대화가 아직 성사되지 않으면서 임금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다. 그러나 제 이사는 “그래도 매일 남북이 하나 되고 있는 유일한 현장은 개성공단”이라고 했다. 『개성공단 사람들』에도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 때나 2011년 12월 11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도 개성공단에서만큼은 서로 따뜻한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북측 근로자들이나 북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총국) 관계자들이 한국 기업 관계자들에게 “이럴 때일수록 밥 더 잘 먹고 집에 전화도 자주 하십시오” “일 없습네다(괜찮다는 뜻)”라고 말했다고 책은 전했다.

개성상회의 향후 계획은 야심 차다. 다음달 6~9일 홍콩에서 열리는 홍콩패션위크 전시회에도 개성상회 마크를 단 제품들이 전시될 예정이다. 하반기에는 전국에 7개 매장을 추가로 연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 부이사장은 “음식 문화로 유명한 전주엔 참기름 등을 판매하고 국립공원 인근 매장에선 아웃도어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 개성상회에서 개성공단까지 거리는 꼭 84㎞다. 제 이사는 “차를 몰고 90분이면 넉넉하게 개성에 도착한다”며 “그럼에도 개성에 마음껏 갈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개성상회가 ‘작은 통일’의 출발점이 되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S BOX] 의류·냄비·시계 등 상품 다양

2004년 12월 15일 서울 시내 한 백화점 주방용품 매장에 줄이 길게 늘어섰다. ‘통일냄비’라는 애칭이 붙은 개성공단의 첫 생산품을 사기 위한 줄이었다. 남측의 기술과 북측의 노동력이 만나 빚어낸 첫 합작품은 ‘대박’이 났다. 이틀 만에 공급 가능한 물량이 모두 팔렸다. 이듬해엔 멕시코로 약 12만 달러에 달하는 ‘통일냄비’가 수출선을 탔다. 개성공단 12년째인 26일 현재 124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으며 이 중 약 60%가 섬유 관련 업체라고 개성공단 입주기업 협회 측은 밝혔다.

 입주기업 중 일부가 뜻을 모아 문을 연 개성상회 1호점의 주력 상품은 현재 양복 등 남성 의류와 내의·양말 등 섬유 제품이다. 그러나 솜씨 좋은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내고 있는 남측 기업의 제품군은 다양하다.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부터 손목시계, 자동차 연료펌프, 보석함에서 기계류까지 폭도 넓다.

 이종덕 개성공단상회 부이사장은 “해외 공장 진출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중소기업에 말이 통하고 숙련된 기술자들이 있는 개성공단만큼 좋은 곳은 없다”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진출해 온 배경이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메이드 인 개성(Made in Gaeseong)’은 생각보다 가까이, 일상생활 속에 녹아들고 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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