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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레이저가 없었다면 대형마트도 없었다

유리를 둘러싼 혁신의 역사는 오늘날 디지털 정보통신기술로 이어진다. 영국의 물리학자 찰스 버넌 보이스는 유리섬유를 뽑아내는 실험에 성공해 광섬유 개발의 초석을 닦았다. [사진 프런티어]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스티븐 존슨 지음, 강주헌 옮김
프런티어, 324쪽, 1만6000원


시력이 안 좋은 이들에게 안경은 퍽 고마운 발명품이다. 그럼 안경이 없던 시절엔 얼마나 불편했을까. 이미 고대 이집트에서도 유리를 만들어냈는데, 왜 안경은 진작에 없었을까.

 이 책의 설명은 이렇다. 서양에선 15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람이 문맹이었다. 수도사 등 몇몇을 제외하면 글씨를, 더구나 작은 글씨를 읽을 기회도, 필요도 없었다. 원시(遠視)인 사람의 대다수는 구텐베르크 이후 인쇄물이 대중화되면서 비로소 자신이 원시라는 걸 처음 깨달았다.

 물론 이런 필요가 안경의 발명을 낳은 건 아니다. 앞서 14세기 이탈리아 유리 장인들은 이집트 등의 색유리와 달리 안경에 쓰일 만한 맑은 유리의 제조기술을 개발했고, 그 덕에 최초의 안경이 등장했다. 구텐베르크 혁명은 그 수요를 폭발시켰다. 이는 다시 렌즈에 대한 광범한 연구·실험을 자극해 현미경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복합적이고 흥미진진한 역사적 전개는 유리만이 아니다. 과학전문 저술가인 저자는 냉기(冷氣)·소리·청결·시간·빛 등 6가지 테마별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이 지금의 결과에 이른 과정, 세상을 바꿔 놓은 과정을 풍부한 사례로 전한다. 레이저의 발명이 어떻게 대형마트의 확산을 낳았는지, 카메라 플래쉬의 등장이 어떻게 가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발했는지, 추운 곳의 얼음을 더운 곳에 갖다 팔겠다는 괴짜 사업가의 구상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등등, 그 자체로 읽는 즐거움을 주는 얘기가 그득하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일방향의 ‘나비효과’ 대신 생물의 공진화(共進化)처럼 전혀 다른 분야의 상호작용이 인과관계로 맞물리는 ‘벌새효과’라고 설명한다. 서로 다른 종, 즉 꽃가루를 퍼뜨리려는 식물의 번식 노력이 식물의 진화만 아니라 꽃의 꿀을 빨면서도 안정적으로 비행할 수 있는 벌새의 날개구조 진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데서 유래한 표현이다. 이 책은 세상을 바꾼 혁신을 어느 천재 한 명의 몫으로 돌리는 대신 네트워크화된 지식을, 기술결정론 대신 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주목한다. 20세기의 온갖 발명에 두루 기여한 미국 벨연구소가 좋은 예다. 이 연구소의 모든 특허를 다른 미국 기업이 무상이나 다름없이 이용하게 된 것은 사회적 힘, 즉 독점적 전화사업자였던 모기업 AT&T가 반트러스트법의 압력을 받아 이뤄진 타협안이다.

 저자가 과한 해석을 하는 게 아닌가 싶은 대목도 있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주변의 사물이 새로이 보일 건 분명하다. 지금은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사물의 쓰임새가 최초의 아이디어에서 당연한 듯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할 수 있다. 미래의 혁신 역시 그렇게 전개될 거라는 점은 이 책을 권하는 의미를 더한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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