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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곽경택 감독은 왜 자꾸 1970~80년대로 돌아갈까



1978년 부산에서 일어난 유괴 사건을 스크린에 옮긴 ‘극비수사’(6월 8일 개봉)는 곽경택(49) 감독의 장기가 다시 한 번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그의 영화는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삶의 희로애락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구성지게 그릴 때 가장 재미있다. 그의 영화가 자꾸 1970~80년대로 돌아가는 이유, 그 시대를 통해 그려내는 정서를 짚어봤다.


곽경택 감독이 영화에서 1970~80년대를 그린 건 ‘극비수사’가 다섯 번째다. 그의 세 번째 장편이자 최고 히트작(관객 812만 명)인 ‘친구’(2001)는 1976·81·84년 세 시간대에 걸쳐 부산에서 펼쳐지는 네 친구의 이야기를 그렸다. 곽 감독 자신과 친구들의 실제 이야기를 각색했다. 그 다음에 연출한 ‘챔피언’(2002)은 링 위에서 생을 마감한 권투 선수 김득구(1955~82)의 생애를 다룬다. 그의 삶 중에서도 1971년과 1978~82년 시기를 중점적으로 그렸다. 일곱 번째 장편 ‘사랑’(2007)은 부산에서 함께 자란 두 남녀의 사랑을 풀어낸 멜로다. 두 주인공의 어린 시절과 고등학생 시절을 1980년대 말 부산과, 1995년 부산의 시공간에 담아낸다. 곽 감독 자신의 병영 생활을 각색한 ‘미운 오리 새끼’(2012)는 1987년이 배경으로, 그의 열한 번째 장편이다.

그리고 열세 번째 장편 ‘극비수사’. 이 영화는 유괴당하는 여자아이 은주(황채원), 기동대 소속 공길용(김윤석) 형사, 수사를 돕는 김중산(유해진) 도사를 중심으로 1978년 부산이라는 시공간을 재기발랄하게 스케치하며 시작한다. 이후 영화는 쫄쫄이·화과 등의 먹거리, 흑백 TV 광고,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1975, 김호선 감독) ‘오멘’(1976, 리처드 도너 감독) 등의 손으로 그린 극장 간판, TV 드라마 ‘수사반장’(1971~89, MBC) 등 당대의 볼거리를 곳곳에 전시하며 시대의 분위기를 재현한다.
 

<추억을 재현하는 즐거움>

한국 영화계에서 곽경택만큼 영화에서 1970~80년대를 오밀조밀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감독도 드물다. “1970~80년대 부산에서 유년 시절과 청소년 시기를 보냈다. 그 시대를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 편이다. 내 머릿속에 있는 기억을 촬영장에서 눈앞의 현실로 그려낼 때 ‘억수로’ 신난다(웃음). 그래서 1970~80년대 배경의 영화를 많이 만드는 것 같다.” 곽 감독의 말이다. 한 시대를 그토록 세세하게 세공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어떤 시대를 표현할 때 가장 중요한 건 패션이다. 옷·머리 모양·메이크업 같은 것.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게 자동차다. 그 다음이 로케이션이다.”

그가 강박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극 중 시대를 재현하는 데 완벽을 기하는 건, 그의 시대극이 대개 그 시절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친구’와 ‘미운 오리 새끼’는 자신의 경험담이고, ‘챔피언’과 ‘극비수사’는 실화가 소재다. 여기서 곽 감독이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준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극장 가까이 살아 주말마다 영화를 봤다. 한 번은 ‘007’ 시리즈 11편인 ‘문레이커’(1979, 루이스 길버트 감독)를 보고 친구들에게 영화 얘기를 신나게 해줬는데, 다음 주에 한 친구가 영화를 보고 와서 그러더라. 네가 얘기한 것보다 영화가 재미없다고(웃음).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부터 내가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에 살을 붙여 재구성하는 재주가 있었던 것 같다.”


<불합리와 순수가 공존한 시대>

곽 감독의 영화에서 정교하게 세공된 시대는 볼거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정서를 되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정서란 시대에 대한 비판과 향수의 이중적 태도를 뜻한다. ‘극비수사’ 역시 그러하다. 극 중간 중간 1978년의 사회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끼어든다. 은주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부자와 서민 사이의 계급 갈등이 존재한다는 걸 암시하거나, “경찰은 부자들 똥 닦아주는 놈들”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점, 다른 경찰들이 진급을 위해 수사에 적극 협조하지 않는 것으로 그려지는 모습 등이 그렇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제기는 순간적인 묘사에 그친다. 유괴가 일어나는 시점부터, 부유하게 사는 은주의 가족들은 돈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고, 공 형사와 김 도사는 ‘내 아이가 유괴됐다면’이란 마음으로 그들을 돕는다. 유괴라는 사건 앞에서 빈부 갈등은 사라지고, 부자와 서민은 한마음으로 뭉친다.

이러한 태도는 곽 감독의 시대극에서 되풀이돼 온 것이다. ‘친구’와 ‘사랑’의 1970~80년대 부산은 고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깡패가 설치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우정과 사랑은 평생 간직할 추억으로 남는다. ‘챔피언’이 그리는 1970~80년대의 가난한 시절은 주인공 김득구(유오성)가 가장 순진한 때였다. ‘미운 오리 새끼’야말로 곽 감독이 1970~80년대를 바라보는 시선이 가장 잘 나타난 작품이다.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 뒤 정신을 놓아버린 아버지(오달수), 이혼한 뒤 미국으로 떠난 어머니(김성령), 끊임없이 주인공을 괴롭히는 군대 선임들…. 주인공 낙만(김준구)은 6개월 방위 근무를 마치는 대로 미국으로 이민 갈 생각만 한다. 하지만 그는 결말에서 “이 거지 같은 나라”에 남기로 결심한다. “1970~80년대는 지금보다 훨씬 불합리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그때가 지금보다 더 행복했던 것 같다.” 곽 감독의 이 말은 그가 영화에서 1970~80년대를 그리는 관점을 정확히 요약한다.
 

<곽경택이 ‘극비수사’로 말하고 싶었던 것>

그토록 불합리한 세상이 지금보다 더 행복한 이유는 무엇일까. 곽 감독은 그것이 ‘인정머리’의 문제라 답한다. “‘극비수사’에서 그 시대의 인정머리를 보여주고 싶었다. 비록 극 중 가족과 진급을 위해 뒷돈도 받고 어떤 부분에서 타협도 하지만, 공 형사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인정머리와 소신을 지닌 인물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 사회가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곽 감독은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소신을 지켰지만 당대에는 그 보상을 받지 못했던 공길용과 김중산, 두 분을 이 영화의 결말을 통해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극비수사’에서 보듯 곽 감독의 시대극은 시대에 대한 비판과 향수의 이중적 태도를 거쳐 최종적으로 그 시대를 긍정하기에 이른다. 그 긍정은 시대의 풍파 속에서도 인정과 소신을 저버리지 않았던 소시민의 삶을 향한 것이다.

특급 흥행을 넘어 문화적 현상으로까지 번졌던 곽 감독의 대표작 ‘친구’는 마초적 남성성과 비장미가 폭발한 작품이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곽 감독의 영화 세계를 이루는 전부는 아니다. 곽 감독의 작품 중 ‘친구’ ‘태풍’(2005) ‘사랑’이 비장미의 세계에 속한다면, ‘똥개’(2003) ‘미운 오리 새끼’ ‘극비수사’는 그와 다른 노선에 놓인 작품이다. 후자의 작품에서 곽 감독은 삶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소시민의 삶과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세속의 신념 그리고 인정의 가치를 아기자기하고 따뜻하게 그린다. ‘친구’와 또 다른 지점에서 ‘극비수사’는 곽 감독의 영화 세계의 어떤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글=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사진 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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