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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고수의 생각법

“나는 바둑 하나밖에 모른다. 만 다섯 살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목포에 있는 유달기원의 문턱을 넘었던 그날부터 환갑이 훌쩍 넘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가 아는 건 오로지 바둑이다. …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인생을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바둑밖에 몰랐지만 그 안에서 뜨거운 열정과 사랑을 경험했고 희망과 절망, 성공과 실패, 음모와 배신까지 경험했다.”

‘바둑 황제’라는 수식어 없이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최고의 승부사 조훈현(62). 어느덧 환갑을 넘긴 그가 지그시 눈을 감고 지나간 시간을 복기(復棋)한다. 그가 세운 세계 최다승(1938승), 세계 최다 우승(160회) 기록은 앞으로도 쉽게 깨지지 않을 전설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승부사의 칼날은 무뎌졌고, 그 역시 제자 이창호를 시작으로 후배 기사들에게 패배의 쓴맛을 맛봐야 했다.

바둑 외에는 좀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던 조훈현이 처음 에세이집을 냈다. 승부의 고수로 살면서 느낀 그만의 생각법을 털어 놓았다. 한평생 바둑판 위에서 바둑돌과 싸워왔지만 그의 이야기는 비단 바둑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바둑판을 투과해 전해지는 삶의 비결은 그만의 깨달음과 울림을 전해 준다. 그는 말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바둑판만 끌어안고 사는 따분하고 고요한 인생이었지 몰라도 내 머릿속만큼은 누구 못지 않게 요동치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조훈현이 말하는 고수의 생각 법칙은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뉜다. 첫째는 ‘생각’이다. 조훈현은 ‘생각 속으로 들어가라’, ‘생각을 크게 열어라’, ‘더 멀리 예측해라’,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만들어라’ 등 네 번에 걸쳐 생각의 힘을 강조했다. 그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바로 ‘생각’이라고 말한다. “세상사를 바둑판으로 생각한다면 풀지 못할 문제는 없다. … 해결할 수 있다는 긍정성, 반드시 해결해야겠다는 의지 등을 포괄하는 개념을 나는 생각이라고 부르고 싶다.”

둘째는 ‘인성’이다. ‘좋은 생각은 좋은 사람에게서 나온다’, ‘사람에게서 배워라’는 법칙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는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정상의 무게를 견뎌낼 만한 인성이 없으면 잠깐 올라섰다가도 곧 떨어지게 된다”며 인품의 중요함을 강조했다. 냉혹해보이는 이 말에는 원칙에 대한 묵직한 무게가 실려 있다. “생각은 나무처럼 가지를 뻗으며 자란다. 한번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를 뻗으면 계속 그 방향으로 자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간단한 일일지라도 원칙과 도덕을 지켜야 한다.”

셋째는 ‘근성’이다. ‘이길 수 있다면 반드시 이겨라’라는 항목은 조훈현의 근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법칙이다. 이 법칙은 언뜻 보면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이길 수 있는 싸움을 지는 바보가 누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살짝만 뒤집어보면 모든 승부에서 ‘이길 수 있다’는 맹목적인 자신감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기기 위해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전의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내가 버텼던 이유는 이겨야 한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라 아직 이길 기회가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판을 정확히 읽고 움직여라’ ‘아플수록 복기해라’는 법칙을 통해서도 그는 억척같이 희망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모두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둑판 위에 서 있다. 돌을 던지고 나가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에겐 보여주지 못한 수많은 가능성이 남아 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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