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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해는?

[뉴스위크] 역사상 어떤 연도의 가치를 혁명의 범위, 역사의 흐름을 바꾼 우연한 암살과 탄생으로 측정하기도


[일러스트 송혜영]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지난 5월 말 상당한 양의 데이터를 공개했다. 1978년 미국 국무부의 외교 통신문 50만 건이다. ‘카터 통신문 II’로 불리는 이 문서들은 그해 미국이 ‘모든 나라와 주고받은 교신과 그들에 대한 관측’을 추적한다. 그리고 위키리크스의 온라인 ‘미국 외교 공공 도서관’에 속해 있다. 사이트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의 설명이다.

하고 많은 해 중에 왜 1978년일까? 위키리크스는 그때를 지정학상 중요한 해로 간주했다. 이란 혁명의 시작,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의 중성자탄과 관련된 거래,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을 지목했다.

특정 연도가 ‘현재의 세계질서’를 규정 짓는 해로 여겨지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066년이든 1966년이든 특정 연도를 역사상 가장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 해로 파악하는 방식의 이점을 비평가·언론인·학자 모두 오래 전부터 주장해 왔다. 특정한 정치·사회·문화적 변화가 오늘날까지 계속해 우리 문화에 울림과 영향을 준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세계에 변화를 가져오는 해는 정확히 어떤 특성을 갖는가? 역사상 어떤 해의 가치를 측정하는 기준은 혁명의 범위, 그리고 훗날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게 될 우연한 암살과 탄생인가? 문명·자동차·통화의 발달 중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우리가 아는 ‘근대화’의 출발점이 된 것은 어떤 해인가?

역사 교과서에선 영어권 세계에 가장 중요한 해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중 하나로 1066년이 종종 거론된다. 에드워드 참회왕(웨스트민스터 성당을 세운 영국 왕)의 죽음, 헤이스팅스 전투(노르만 정복 전투), 정복자 윌리엄의 잉글랜드 침공 등이 그해에 있었다. 노르만족의 침공은 잉글랜드에서 앵글로-색슨족의 지배를 중단시켰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현재 미국인이 사용하는 언어를 탄생시키고 향후 수년간 유럽 정치기후를 형성하게 된다.

찰스 C 만은 저서 ‘콜럼버스 이전 미대륙의 새로운 사실(New Revelations of the Americas Before Columbus)’에서 1490년이 가장 중추적인 해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해 불과 1년 뒤 컬럼비아 시대 이전 원주민의 삶과 관행을 크게 바꿔놓고 나아가 식민지화와 정복의 서사에까지 변화를 가져왔다.

거기에 혁명적인 정치 변화의 문제도 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유럽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몇 년 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부상으로 절정에 달한다. 미국에선 선거인단 투표에서 조지 워싱턴과 존 애덤스가 각각 미국의 초대 대통령과 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최고의 전환점이 되는 해는 파괴의 시기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미국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과 그 이후 재건(Reconstruction) 시대로부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식된 1945년까지를 망라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세계에 남긴 상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으며, 그 군사기술과 혁신은 전투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전후 1950년대는 산업성장의 시기였다. 1960년대는 패션부터 전문용어에 이르기까지 여러모로 계속 등장하는 산업성장 개념에 대한 반문화적인 조류를 낳았다. 1968년의 중요성을 주제로 한 책은 한둘이 아니다. 그해 커다란 정치적 암살 2건(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존 F 케네디의 동생 로버트 전 법무장관)이 발생했고, 반전운동의 대두, 블랙 파워(흑인 민권운동)의 부상, 제2의 페미니즘 물결, 구정공세(Tet Offensive, 베트콩의 베트남군에 대한 대공세)가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다음 해인 1969년도 중대한 해다. 닉슨의 대통령 취임선서, 우드스톡 음악·예술 페스티벌과 그해 하반기 앨터몬트 페스티벌의 참사(흑인 청년 피살)가 있었다. 그리고 끔찍한 테이트-라비앙카 살인사건(유명인 연쇄살인)은 캘리포니아, 나아가 그 뒤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줬다.

영국 신문 ‘인디펜던트’는 1973년에 주목했다. 욤 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이 불타오르고 워터게이트 스캔들이 비등점에 이르렀다. 뉴스위크는 과거 1979년을 “진정으로 세상을 바꿔놓은” 해라며 외교정책의 붕괴를 근거로 제시했다.

1991년의 울림도 부인하기 어렵다. 어쨌든 옛 소련의 역사적인 몰락이 발생한 해였다. 소비에트 연방의 와해는 그 뒤 수년간 국제관계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계속해서 러시아와 이웃 우크라이나, 그리고 러시아와 미국 간의 긴장 속에 그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한편 W 조셉 캠벨은 저서 ‘1995, 미래가 시작된 해(1995: The Year the Future Began)’에서 그해의 사건들이 우리가 아는 미국을 규정했다고 주장했다. 클린턴-르윈스키 성추문뿐 아니라 OJ 심슨 재판이 대표적이다.

물론 2001년도 있다. 9·11 테러의 비극으로 얼룩진 이 해에 테러 종식을 기치로 내세운 고약한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그에 따라 지정학적 ‘헤쳐 모여’가 무수히 일어났다.

그렇다면 2015년은 어떨까? 인간이 읽는 뉴스 기사를 로봇이 작성하고, 무인기가 적의 공격과 공공기물 파괴에 사용되고, 기후변화가 무시무시한 영향을 초래한다.

종종 순전한 우연으로 한 해에 일련의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기도 한다. 이 같은 사건의 연쇄는 한갓 미물인 우리가 카오스 이론(무질서 속에 질서가 존재한다고 보는 이론) 그 자체인 인간의 삶을 표면적으로나마 통제한다는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사람은 언젠가 죽고, 비극은 불가해하게 일어나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류는 고난 속에서든 환희 속에서든 살아나갈 길을 찾는다.

바울라 메히아 뉴스위크 기자, 번역 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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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