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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은 부대 잘 모르고 … 병력 절반은 휴가·외박

1950년 6월 11일 전군에 내려졌던 비상경계령이 24일 0시를 기해 해제됐다. 5월 초부터 세 차례 비상 상황이 이어지면서 피로가 누적된 상태였다. 그동안 실시하지 못했던 장병들의 휴가와 외출이 일제히 이뤄졌다. 휴가나 외출·외박으로 근무지를 이탈한 장병이 전체 군의 절반에 달했다.

토요일인 24일 저녁엔 육군본부 내 참모학교 건물을 고친 육군 장교구락부의 개관 연회가 열렸다. 서울과 가까운 일선지구 지휘관과 국방부·육군본부 수뇌가 대부분 참석했다. 채병덕 총참모장을 포함한 참석자들은 밤늦게까지 술자리를 이어 갔다. 6·25 발발 전야의 한국군은 안이하고 느슨했다.

군 수뇌부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주한미군은 48년 9월부터 철수를 시작해 49년 6월 군사고문단(KMAG) 500명만 남기고 모두 떠난 뒤였다. 한국 육군은 8개 사단 10만 명으로 북한군의 절반이었고, 장비 수준도 한참 뒤떨어졌다. 그런데도 군 수뇌부는 북한군의 위협에 대항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다. 채 장군은 6월 10일 대규모 인사를 실시해 일선 사단장을 대폭 바꿨다. 6·25 발발 당시 일선 주요 지휘관들은 부대 실정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사이 북한은 거듭된 정치 공세로 남침 의도를 은폐하고 있었다. 6월 11일엔 조만식 선생(조선민주당 당수)과 간첩 김삼룡·이주하를 교환하자고 제의했다.

  지휘부의 오판과 무기력에 대해서는 북한의 공작 때문일 거란 의심도 제기된다. 개전 때 2사단장이었던 이형근 장군은 회고록(『군번 1번의 외길 인생』)에서 “개전 초기 상황은 군사적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라며 “육군 지휘부 내부에 적과 내통하는 첩자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첩자를 거물 간첩 성시백(50년 5월 체포)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종필 전 총리는 “ 그런 정황은 없었다. 가장 큰 원인은 인민군이 쳐들어올 리 없다는 맹신이었다”고 말한다.

정리=전영기·한애란 기자 c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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