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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교 50돌 행사 병풍 글씨 주인공…육영수 여사 묘비 쓴 ‘갈물 이철경’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행사에 나온 병풍은 갈물 이철경의 글씨로 성산별곡이 담겨 있다. 사진은 병풍의 일부. 가족사진 가운데 원 안이 갈물, 오른쪽은 차남인 가수 서유석씨. [뉴시스·중앙포토]

“…도원은 어드매오 무릉이 여긔로다….”

 22일 서울과 도쿄에서 각각 열린 한·일 수교 50주년 기념행사에는 같은 병풍이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모두 이를 배경으로 연설했다. 조선시대 문인 송강(松江) 정철의 가사 ‘성산별곡’을 궁체로 쓴 병풍으로 1965년 12월 18일 서울에서 있었던 한·일 기본조약 비준 때 사용됐다. 본래 12폭인 병풍은 주일 한국대사관과 주한 일본대사관이 각 6폭씩 보관해 왔다. 주한 일본대사관이 보관하고 있던 병풍 뒷면엔 ‘한일협정 비준서 교환식 기념품 이후락 증. 1970.1.26’이라고 조약 비준 이후 일본에 부임한 이후락 당시 주일 한국대사의 서명도 있다. 서지학자 김영복 옥션단 대표는 “12폭 병풍은 길이가 길어 6폭씩 둘로 나눠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표구한 병풍을 증표처럼 나눈 듯하다”고 말했다.

 글씨를 쓴 이는 한글 서예가이자 교육자·여성운동가였던 갈물 이철경(1914~89)씨다. 배화·이화·진명·경기여고 교사, 금란여고(현재 이대부고로 통합) 교장, 대한주부클럽연합회 초대 회장 등을 지냈다. 특히 조선 후기 궁중 한글서체에 가까운 정돈되고 깔끔한 궁체로 이름난 한글 서예의 대가다. ‘신사임당 동상 명문’ ‘육영수 여사 묘비’ ‘유관순 열사 기념비’ ‘독립선언문’ 등을 남겼다. 갈물은 항일 민족주의 교육자이자 국어학자 이만규(1882~1978)씨의 2남4녀 중 셋째 딸이다. ‘갈물’은 부친이 지어준 호로 가을물을 뜻한다. 봄뫼 이각경, 꽃들 이미경 등 세 자매가 한글 서예가로 활동했다. 개성 태생인 갈물은 분단으로 부친, 쌍둥이 언니 봄뫼와 다시 만나지 못했다. 남편은 서정권(1910∼90) 전 서울고 교장이다. 가수이자 방송인 서유석(70)씨가 차남이다.

 박정자 전 갈물한글서회 회장은 “갈물은 보통학교 1학년 때 부친의 서가에서 최초의 궁체 교본인 ‘신편언문체법’을 발견하면서 한글 서예에 눈떴고 58년 갈물한글서회를 설립해 궁체의 맥을 이었다”고 말했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서예부장은 “갈물체는 궁체의 완성이다. 일제 강점기 민족문화 말살의 와중에도 그가 지켜낸 한글 궁체로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 그 상징성이 병풍에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병풍은 갈물이 57년 써 둔 것이다. 낙관과 함께 “정유칠월 신촌 바람산 밑에서 성산별곡을 쓰다 갈물 이철경”이라고 적혀 있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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