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중앙시평] 수포자를 줄이려면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교육과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상력은 독자를 즐겁게 한다. 그의 에세이집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에는 헬스장에서 필사적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는 사람들의 운동에너지를 모아 발전(發電)을 하면 효과적일 것이라는 하루키다운 발상이 담겨 있다. 필자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수학 공부에 들이는 막대한 노력과 비용을 생산적인 에너지로 연결시킬 수 있다면 하는 안타까움을 가졌다. 요즘 회자되는 수포자(수학포기자)는 학생들에게 통용되는 지역구 용어였는데 이제는 전국구 이슈가 된 듯하다. 수포자를 줄이는 묘책은 없지만 몇 가지 아이디어로 모아 보자.

 우선 선행(先行)에 대비되는 후행(後行)학습을 장려해야 한다. 수학은 위계성(位階性=여러 기초분야를 알아야 다음 단계 학습이 가능)이 뚜렷하기 때문에 한번 생긴 학습 결손은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해의 결핍으로 스위스 치즈처럼 숭숭 뚫린 구멍을 메우지 않으면 그 이후의 공부는 사상누각이다.

교육은 모름지기 상위와 하위 집단을 고르게 보살펴야 하므로 국가의 미래 먹거리를 제공할 영재의 육성도 중요하지만 교육복지 차원에서 부진아 대책도 절실하다. 수학 성적 하위권 학생이 이해의 공백이 시작된 지점으로 돌아가는 후행학습의 기회를 공교육 차원에서 제공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어려운 수학 때문에 수포자가 생기니 교육과정의 내용을 경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의 경우 2000년대 초 유토리(여유) 교육을 표방하며 수학 내용을 줄였지만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에서 순위가 급락하자 내용을 복원시켰다. 이런 인접 국가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물론 내용이 감축되면 개념과 원리를 머릿속에 구겨 넣고 정형화된 풀이 방법을 암기하는 현상이 다소 완화될 수는 있으나 학생의 어려움은 내용 자체보다는 이를 문제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난이도의 인플레이션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내용을 덜어내는 대응보다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은 문항의 수준을 제어하는 것이다. 특히 학생들에게 시험 필독서로 작용하는 문제집은 난이도 측면에서 통제권 밖인데, 문제집도 교과서와 마찬가지로 검·인정도서화나 인증제를 고려해야 한다. 한편 학생과 수학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수학을 실생활 맥락으로 튜닝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학생들은 통계의 신뢰구간을 구하는 어려운 수능 문제는 척척 풀어내지만 여론조사의 표준오차는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소양 차원으로 수학을 리모델링해 유용성을 인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입시에서 수학의 비중을 낮추는 것도 도움이 된다. 수학이 입시의 중핵에서 멀어지면 공부가 편안해질 수 있다. 학생의 수능 수학 등급은 입학 후의 학점이나 취업률과 상관관계가 높기 때문에 대학은 입학전형에서 수학 우수학생을 편애하는 경향이 있다.

서울대 정시의 경우 인문계열도 수학에 1.25배의 가중치를 두고 있어 문·사·철 전공의 합격 여부까지도 수학이 쥐고 있다. 대입의 최대 모순 중의 하나는 수학을 그리 필요로 하지 않는 의대는 수학 지존(至尊)을 뽑아 가고, 수학 의존도가 높은 상경계열은 가벼운 문과 수학만 요구하는 점이다. 수능 수학 점수를 중심으로 수험생을 줄세워 놓으면 대학은 위에서부터 입도선매하는 게 ‘불편한 진실’인 바 대학마다 나름의 지표에 의해 전공별로 학생을 선발하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주변의 요구에 맞추다가 누더기가 된 수능 수학도 손보아야 한다. 수학 평균이 낮다는 비판으로 난이도를 전반적으로 하향조정했지만, 상위권 변별을 위한 만점방지용 문항은 어려워졌다. 수험생 중에는 쉬워진 문제를 신속하게 풀고 남는 시간을 이용해 고난도 문제를 원시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결과 수학적 직관으로 우아하게 풀어낸 학생과, 일일이 경우를 열거해 푼 학생이 동등한 점수를 받게 된다. 실제 2015 학년도 수능의 수학 B형 만점자 비율이 4%를 넘어서면서 비판대에 올랐는데, 다수의 학생이 고난도 문항을 다양한 변칙 방법으로 풀면서 출제자가 비장의 카드로 생각했던 문제가 변별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수능은 ‘상당히 쉬운 다수의 문항’과 ‘지나치게 어려운 소수의 문항’으로 양극화된 상태이므로 전자의 수준은 약간 높이고 후자의 수준은 낮추어야 한다.

 수많은 학생에게 열패감을 안겨주는 수학교육의 현실은 승자의 증가분이 패자의 감소분보다 적은 네거티브섬이다. 전술한 사항들부터 소소하게 실천해 나간다면 학생이 느긋한 마음으로 수학을 대하며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고, 개인적 사고의 수준을 높이면서 국가적으로는 인적 자원의 질을 고양시키는 포지티브섬의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교육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