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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TALK] 미술 감상은 요가다 … 안 쓰던 정신의 근육 움직여줘

『시대를 훔친 미술』 저자 이진숙 미술평론가

이진숙 미술평론가는 “불쾌감을 주는 주는 작품이라도 ‘이게 뭐야’ 화내기보다 ‘왜 이 작가는 이렇게 했지’라고 생각해보면 좋겠다. 예술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훈련이 된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서른 살 문학도
무심코 간 미술관에서의 3시간이 인생 바꿔
인간성 끊임없이 고양하는 일, 그것이 예술이죠



그의 아파트 거실 한쪽 벽은 책들로 가득했다. 빼곡히 들어찬 책 대부분은 미술에 대한 도서였다. 그 앞으로 우람한 나무 책상이 놓여 있었다. 나머지 벽은 미술 작품들 차지였다. 이진숙(49) 미술평론가의 집은 집이라기보다 작업실이라 부르는 게 어울릴 만한 공간이었다. 그는 서울대 독어독문학 석사를 마치고 서른이 넘어 미술에 발을 들였다. 그것도 홀로 찾은 러시아에서 말이다. 그렇게 시작해 20년 가까이 미술평론가로 살아오고 있다. 그간 『러시아 미술사』 『위대한 미술책』 등을 썼고 지난달 『시대를 훔친 미술』을 출간했다. 젊은 문학도는 왜 미술에 빠졌을까.

-독문학 석사까지 마쳤는데 뒤늦게 미술로 방향을 틀었다.

 “한때 정말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인생이 뭔가 재미없었다. 석사 마치고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었다. 국·영·수 가리지 않고 가르쳤다. 뭐든 가르치는 ‘생존 강사’였다(웃음). 외환위기(IMF) 전이라 돈을 꽤 벌었다. 그렇게 1년 정도 버틸 돈을 모아 무작정 러시아에 간 거다. 공부할 생각은 없었다. 나이 서른에 그저 여행 삼아 갔다.”

-어쩌다 미술 공부를 시작했나.

 “러시아에 가면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에 한번 가보라고 하더라. 96년 8월에 갔는데 그 미술관엔 11월에 방문했다. 추위 못 참는 내가 1시간 반을 벌벌 떤 끝에 미술관에 들어갔다. 작품들을 보는 순간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작품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날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3~4시간을 관람했던 거 같은데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몰랐다. 언어로 전달되지 않는 진실이라고 할까. 이때 무모한 공부가 시작된 거다. 러시아어를 못했으니 1년 반 정도 러시아어를 배웠다. 그리고 러시아 국립인문대 미술사학부(3년 과정)에 들어갔다.”

-집이 부유했나 보다. 무작정 떠났다가 5년 동안 머물렀으니.

“처음에는 한국에서 번 돈으로 생활했다. 그 돈 다 떨어지고는 국제학교 다니는 주재원 자녀들 대상으로 국어·수학 과외를 했다. 나는 육 남매 중 넷째다. 당시 아버지는 조그만 사업을 하시다 은퇴하신 상태였다. 부모님은 자식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스타일도 아니시고 아버지는 대학 졸업시켰으니 한 푼도 안 주겠다는 생각이셨다.”

-러시아 미술의 매력은.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다. 실제로 러시아에선 ‘우리는 어떤 나라인가’에 대한 정체성 토론이 끊임없이 이뤄진다. 미술에도 이런 충돌이 녹아 있다. 비잔틴제국에서 러시아 정교회로 이어져 온 ‘동방주의’와 17세기 말과 19세기 말에 급격히 들어온 유럽 ‘서구주의’ 문화가 충돌해 다양하고 독특한 문화를 나타낸다.”

-한국 미술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한국 돌아와 큐레이터로 일했다. 그러다 느낀 게 한국 사람들은 자기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하다는 거였다. 한국 작가라도 해외에서 뜨면 더 인정해주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한국 문화에 대해서 깊이 공부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 미술을 공부했다.”

-뮤지컬이나 연극은 좋아하지만, 미술은 어렵고 잘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다.

 “예술을 운동에 비교하자면 요가와 같다. 요가를 처음 하면 안 쓰는 근육을 쓰니 아프지 않나. 예술도 마찬가지다. 예술은 우리의 상식에만 의존해 있지 않는다. 미술 감상은 우리가 안 쓰던 (정신의) 근육을 움직여 주는 일이다. 어떤 작품은 굉장히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이게 뭐야’라고 화내기보다는 ‘왜 이 작가는 이렇게 했지’라고 생각해 보면 좋겠다. 예술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훈련 방법’이다.”

-미술 감상에 관심을 가지려면.

 “미술관·갤러리를 꾸준히 가라. 발품 파는 게 최고다. 작품이 좋다면 그곳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와도 된다. 대신 왜 그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스스로 설명해봐라. 그런 훈련을 하다 보면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작품에 관해 이야기 나눌 사람이 있으면 더 좋다. 한 미술평론가는 미술 감상을 와인 마시는 일에 비교했다. 좋은 와인이란 개인 취향에 따라 다르지 않나. 비싸면 대체로 좋은 와인이라고들 하지만 틀린 말이다. 비싸지 않으면서 나한테 맞는 와인을 찾는 사람이 고수다. 그 정도가 되려면 마셔보는 수밖에 없다. 미술 감상도 마찬가지다.”

-인생에 큰 영향을 줬던 책이 있나.

 “루카치가 쓴 『소설의 이론』이다. 소설에 대한 책이지만 모든 예술 영역에 적용된다. 루카치는 ‘예술은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nevertheless)’라고 했다. 예술이란 어떤 현실이든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에 대해 더 풍부한 상상을 하는 것이란 의미다. 인간성을 끊임없이 고양하는 일, 그것이 예술이다.”




▶이진숙 미술평론가가 추천하는 예술 도서 4권

한국미술의 탄생
강우방, 솔


새로운 관점에서 우리 미술사를 정립한 책이다. 미술사를 겉으로 보이는 부분이나 기존 사료만을 가지고 해석하지 않았다. 작품에 담긴 철학적 부분까지 설명했다. 고구려 미술을 시작으로 한국 미술의 변화상을 말해주고 있어 한국 고대 미술을 이해하기 좋다. 우리 미술의 본령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면 읽기를 권한다.


김봉렬의 한국건축 이야기 1~3
김봉렬, 돌베개


한국 문화의 뿌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 책이다. 김봉렬은 시대에 따라 건축물을 바라보는 철학이 바뀌면서 그 배치가 달라졌다고 얘기한다. 그가 말하는 ‘집합이론’이다. 도서에 담긴 사진은 건축물 ‘사이’로 보이는 모습을 담았다. 대문 사이로 본당을 보는 식의 사진이다. 건축물 간에 보이지 않는 연결 부분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서양미술사
에른스트 곰브리치, 예경


미술사를 처음 공부할 때 접했던 책이다. 서양미술사 베스트셀러이자 교과서다. 미술사를 다루지만 시대 흐름에 따른 편년체가 아닌 이야기 형식을 띤다. 작품에 얽힌 이야기와 당시 시대 배경, 그리고 다른 작품에 미친 영향을 말해준다. 물론 미술사를 처음 접한다면 내용이 어려울 수 있다. 가끔 궁금한 게 생기면 지금도 찾아 읽어보는 책이다.


예술인간의 탄생
조정환, 갈무리


예술과 삶이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 조정환은 이제 인간은 한 분야의 전문성만 갖출 게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융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남이 만든 트렌드만 좇기보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얘기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자신과 타인에 대한 높은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인간 유형을 ‘예술인간’이라 지칭했다.

글=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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