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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박은선, 방황은 끝났다


박은선(29·러시아 로시얀카)은 꿈같은 월드컵을 치르고 있다.

 박은선은 22일(한국시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2015 국제축구연맹(FIFA) 캐나다 월드컵 16강 프랑스전을 앞두고 후배들이 긴장하지 않도록 다독였다. 대표팀의 대선배이자 간판 공격수지만 그에게도 월드컵은 매순간 가슴 떨리는 무대다. 박은선은 “2003 미국 월드컵 이후 월드컵에 출전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우리 나이로) 서른 살이 됐기 때문에 이번 캐나다 월드컵이 마지막이라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양 발목 통증으로 제대로 뛰지 못했다. 4년 후에 또다시 뛸 수 있지 않을까. 욕심 난다”며 웃었다.

 박은선의 축구인생은 평탄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재능이 뛰어난 대신 마음이 여렸다. 주위에서는 그를 끊임없이 흔들었다. 동산정보고 시절 박은선을 가르친 서정호 전 서울시청 감독은 “은선이는 여자축구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스트라이커였다. 그러나 어디로 튈지 몰라 다루기 힘들었다. 고교 때 은선이가 쓴 자퇴서가 10장이 넘는다”고 털어놨다.

 박은선은 17세 때 미국 월드컵 대표팀 최연소 선수로 발탁됐다. 그가 나타나면 수백 명의 팬들이 함성을 지를 만큼 인기가 높았다. 이때부터 그에 대한 공격이 시작됐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고교 졸업 후 서울시청에 바로 입단했다가 1년간 출전금지 징계를 받았다. 박은선을 데려오지 못한 팀들이 ‘고교 졸업 선수는 대학에 입학해 2년간 뛰어야 한다’는 한국여자축구연맹 규정을 찾아낸 것이다.

성별 논란에 휩싸였던 박은선. 그는 어릴 적 치마가 잘 어울리는 깜찍한 소녀였다. [사진 이종순씨]
 지난 2010년 아버지 박순권씨가 골수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나자 박은선은 “축구를 그만두겠다”며 잠적했다. 잠실야구장 앞에서 응원 도구에 바람을 넣거나 호프집 서빙을 하는 등 1년 반 동안 방황했다. 결국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축구밖에 없다”며 돌아왔다.

 복귀 후 현실은 더 냉혹했다. 2013년 11월 소속팀 서울시청을 제외한 6개팀 감독이 박은선 성별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남자선수 못지 않은 체격(1m82㎝·76㎏)으로 여자프로축구(WK)리그를 평정하자 다른 구단 지도자들이 그를 흔들었다. 각종 대회에서 수차례 신체검사를 받은 그의 성적 정체성을 물고 늘어진 것이다. 논란 자체가 여자로서 커다란 아픔이었다. 어머니 이종순씨는 “평생 씻지 못할 상처를 안고 있다. 아직도 가슴이 미어진다”며 아파했다. 이씨는 박은선이 유치원 때 치마를 입고 깜찍하게 웃는 사진을 보여주며 “참 귀여운 여자애였다”고 말했다.

 숱한 굴곡을 겪은 박은선은 꽤 단단해져 있었다. 성별 논란 속에서도 꿋꿋이 훈련을 이어가며 “괜찮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의 무대인 월드컵에 출전하는 꿈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아시안컵에서 4년 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그는 한국을 4위로 이끌었다. 덕분에 한국 여자축구는 1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그래서 박은선은 더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포지션은 원톱 공격수이지만 마음은 후배들의 응원단장이다. 그는 “내가 골을 넣지 않아도 상관없다. 동생들이 잘해서 여자축구의 부흥을 이끌어준다면 그걸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몬트리올=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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