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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임금피크제가 막장 드라마 안 되려면

김기찬
논설위원 겸
고용노동 선임기자
극적 반전에 이은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임금피크제 얘기다.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정책 기능과 후진적인 노사 문화가 각색을 거듭하며 보는 사람을 어이없게 해서다. 정년 60세 시행을 불과 6개월여 앞둔 근래 들어 긴장감은 최고조다. 이 드라마는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의 시작은 2003년이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한국노동연구원의 김정한 박사가 주창하면서다. 고령화 문제가 대두되던 때다. 당시 그가 ‘고령화 시대의 선택’이란 세미나에서 발표한 발제문을 보자. “우리나라는 노후생활보장제도가 미흡하고, 조기퇴직으로 인한 부작용이 많다. 퇴직 시점인 50대 중반부터 임금을 좀 깎고 일하는 기간을 늘리는 임금피크제는 중고령자의 고용 보장은 물론 사회의 활력 증대를 도모할 수 있는 현실성 있는 방안이다. 그러나 이는 과도기적 조치다. 일정 시기 후에는 (해가 바뀌면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를 성과에 따라 지급하는 임금체계로 바꿔야 한다.” 구구절절 근로자의 심금을 울렸다.

 노동계도 제법 호응했다. 대한전선 노조는 2003년 회사에 임금피크제를 먼저 제안해 정년을 늘렸다. 신용보증기금을 비롯한 공공부문도 가세했다.

 그런데 정부의 반응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2009년엔 아예 제동을 걸었다. 윤증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전력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려 하자 “정년 연장을 전제로 한 임금피크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마디 했다. 이후 매년 늘어나던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도입은 자취를 감췄다. 월급만 깎으라니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이어지던 드라마 흐름이 현 정부 들어 확 바뀐다.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한 법이 만들어지면서다. 노동계는 환호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을 실천한 정부는 당위성을 역설했다. 그런데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정부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노동계가 여러 차례 주고받았던 합의문 형식의 연애편지를 찢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정년만 늘린 꼴이 됐다. 인건비는 치솟고, 이를 견디지 못한 기업의 해외 이탈이나 실업자 급증과 같은 부작용이 현실로 다가왔다. 대책 없이 정년연장법을 통과시킨 한순간의 정책 불찰이 빚은 참사다. 노동계의 몰염치를 얘기한들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순 없는 노릇이다.

 결국 정부가 자기 식구부터 다잡고 나섰다. 내가 하는데 너(노동계)도 좀 반응하라는 식이다. 모든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토록 하는 건 그 일환이다. 문제는 이로 인해 공공기관은 시쳇말로 멘붕에 빠졌다. 한 공공기관은 올해 말 성과형 임금체계로 바꾸려 했다. 거의 노사 간 서명만 남은 단계였다. 그런데 정부의 명령이 떨어졌다. 선진형 임금체계란 종착역을 앞두고 간이역으로 되돌아가 짐을 풀어야 할 판이다. 윗집의 결별에 아랫집 연애마저 사달이 나자 직원들은 ‘불만 피크’ 상태다.

 더욱이 임금피크제는 위헌 소지를 안고 있다. 능력이나 성과가 아니라 나이를 기준으로 임금을 깎는 건 연령 차별이다. 언론이 거론하는 일본의 임금피크제는 허구다. 일본의 노사, 심지어 학자도 임금피크제란 용어를 모른다. 1980년대 신일본제철을 비롯한 극소수 기업이 도입했다 2년도 안 돼 폐기했다. 근로자가 요코하마 지방법원에서 승소하면서다. 대신 일본 기업은 임금체계를 호봉제에서 역할·성과급으로 바꿨다.

 사정이 이런데 정부가 밀어붙인다고 해결이 되겠는가. 지금 정부가 할 일은 일관성 없는 정책에 대한 과오를 인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한시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애절한 마음으로 호소하고 설득하는 게 맞다. 법 경계를 넘나들며 럭비공처럼 튀거나 노사 자율에 ‘명령’해서는 곤란하다. 그나마 여러 설문조사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데 상당수 근로자가 공감한다. 기업 경영을 걱정할 정도로 근로자들이 성숙하다는 얘기다.

 고(故) 김정한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기업마다 사정이 다르다. 노사 간에 임금피크제 도입에 대한 합의를 하고, 충분한 교육과 심리적 동요를 해소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시행 뒤에는 주기적으로 문제를 발굴하고 개선해야 한다.” 연애의 기본을 얘기하고 있다.

김기찬 논설위원 겸 고용노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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