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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희의 시시각각] 메르스 바이러스와 김신조

박승희
정치부장
‘적들은 늘 우리의 예상을 앞질렀다. 우리가 친 방어막은 녀석들을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항상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생각해 쳐놓은 방어선보다 더 멀리 가 있었다’.



 1968년 1·21 사태 당시 북한 특수부대를 상대했던 군·경찰의 후일담이다. 지난주 어느 모임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을 화제 삼던 중 누군가가 김신조를 말했다. 하루에 120㎞를 이동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기록까지 등장했다. 정부의 메르스 대응이 1·21 사태 당시 김신조 일당에게 뚫린 군경과 닮았다는 탄식이었다. 메르스가 북한 특수부대였다면 전후방이건 청와대건 할 것 없이 다 초토화됐을 거라면서.



 메르스를 상대한 지난 한 달 우리는 참으로 부끄러웠다. 언론·정부·병원·개인 모두가 메르스 앞에 무력했다.



 메르스 확진환자가 처음 발생한 날 언론은 무지하고 무심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한, 새 총리 후보자 발표,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둘러싼 청와대와 국회의 싸움을 전하느라 ‘메르스 확진환자 발생소식’은 눈에 안 띄게 취급됐다. 어느 신문사는 “WHO(세계보건기구) 총회에서 우리나라가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국제 위상이 높아졌음을 확인했다”는 보건복지부 장관의 인터뷰 기사 밑에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2차 감염자가 나왔다’는 뉴스를 배치하기도 했다. 고백건대 적어도 나는 메르스가 이 정도로 대한민국을 공포에 떨게 할지 짐작도 못했다.



 병원은 10번 환자가 중국으로 출국할 때까지도 병역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고, 메르스가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환자들을 전파할 때까지도 대형병원들은 “우린 괜찮다”며 팔짱을 끼고 있었다. 환자를 마트에 과자 한 봉지 사러 온 사람 취급하느라 익숙해진 큰 병원들의 오만과 무지는 메르스의 좋은 먹이였다.



 ‘나 하나 정도는 괜찮지’라는 무관심, ‘왜 나 혼자 격리란 고통을 짊어져야 해’라는 비뚤어진 시민의식도 메르스에 당했다. 이러는 사이 우리의 부끄러움은 나라 밖으로 유출됐다. 중국 포털에선 한국인을 낙타와 동격으로-바이두(www.baidu.com)에선 ‘낙타와 한국인 출입금지’란 댓글이 쏟아졌다- 취급하고, 유커들은 일본으로 몰려갔다. 의료기술 선진국은 세계 2위 메르스 발병 대국이 됐다.



 부끄러움의 돌연변이는 분노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를 화나게 하는 건 메르스에 뚫리고 또 뚫린 정부다.



 질병관리본부는 축소지향형 공무원의 전형을 보여 줬다. 첫 메르스 발병환자가 생긴 5월 20일, 그들은 매뉴얼에 의존해 ‘신체 접촉자나 2m 이내 공간에 한 시간 이상 머문 사람’들을 관리했다. 2m가 넘는 병동 전체, 그리고 10분간 머문 사람들이 환자로 등장해서야 이 매뉴얼이 성전(聖典)이 아님을 깨달았다. 초기 대응 실패는 두고두고 뼈아프다.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는 군 격언은 앞으로 질병관리본부에도 붙어야 한다.



  일만 생기면 만들어지는 비상조직은 이번에도 많았다. 청와대 긴급대책반, 범정부 메르스지원대책본부, 복지부 장관이 본부장인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즉각대응TF도 생겼다. 하지만 사공만 많았고, 중구난방이었다. 전체를 총괄하고 책임지는 컨트롤타워가 없어서다. 확진환자 발생 한 달이 다 돼 국회 인준을 받은 새 총리가 “내가 지금부터 컨트롤타워”라고 말한 것 자체가 희극이다.



 메르스를 계기로 손봐야 할 건 한둘이 아니다. 전염병 같은 변수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정부조직 모델은 뭔가. 사회부총리란 자리는 뭐 하는 자린가. 보건사회부가 보건복지부로 바뀐 건 복지예산의 증대에 맞춘 시대맞춤형 변화지만 보건 기능을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하지만 걱정스러운 건 메르스가 가져온 불신이란 동행자다. 청와대 사람들이 메르스에 대처하느라 25시간 체제로 일하고 대통령이 밤늦게까지 관련 부처 참모들과 수십 차례 통화했다는 기사엔 어느 개그 프로를 인용해 이런 댓글이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뭐~.



 메르스 이후 가장 먼저 치유해야 할 건 불신이어야 한다.



박승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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